주간동아 962

2014.11.10

의원들 튀는 질문과 정치쇼 사이

달라진 국감·대정부질문…돌쇠형·탐정형·꿀벌형 등 급이 달라

  • 전예현 내일신문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4-11-10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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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들 튀는 질문과 정치쇼 사이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29회 국회(정기회) 11차 본회의 모습.

    “쇼는 못 하네. 아니 안 하겠네.”

    몇 년 전 당시 민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청바지 소동’이 일어났다. 서울 명동에서 투표 독려 행사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이 청바지 입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고 양복 차림 아저씨들과 ‘명동 스타일’을 보여줄 수는 없어 담당자들은 진땀을 흘렸다.

    결과는 청바지의 승리였다. 아니, 명분론의 승리였다. 평소 점잖기로 소문난 문재인 의원이 청바지를 입고 행사에 나서면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불만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치인들이 젊은이에게 눈높이를 맞춰 먼저 다가서자’는 행사 취지를 강조했고, 문 의원은 이 명분에 공감해 청바지를 입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정치쇼는 대중정치인에게 불가피한 요소인가, 근절해야 할 문화인가. 유권자의 관심을 먹고사는 정치인들도 뚜렷한 답을 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도 ‘쇼’는 고민스러운 숙제다.

    굳이 효과를 따지자면, 정치쇼는 인지도 상승과 대중적 관심 끌기에 도움이 된다. 반면 ‘정치쇼’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 일부 정치인은 국정감사(국감) 준비가 부실한 것을 모면하고자 과장된 행동과 호통으로 카메라 조명을 받거나, 선거 직전 ‘알바 대학생’을 잔뜩 고용해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튀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청바지 소동’처럼 이미지와 명분이 결합할 때 대중은 튀는 정치인에게 관심과 더불어 박수를 보낸다. 이런 점에서 올해 국감과 대정부질문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목격됐다. 이는 ‘튀는 데도 급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나올 때까지 파고 또 파는 ‘돌쇠형’

    올해 국감 중 튀는 뉴스는 ‘8억 파스타의 비밀’이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이 국책연구기관의 법인카드 명세를 분석한 결과, 특정 파스타 전문점에서 수년간 8억 원이 결제된 사실을 밝혀낸 것.

    연구기간에서 법인카드로 회식하거나 연구원들이 밥을 먹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세수 부족과 재정 문제가 지적받는 상황에서 법인카드로 특정 식당에서 8억 원을 결제한 것은 거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카드깡’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무조정실의 감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번 감사로 김 의원은 ‘국감에서 튀는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그는 최근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결혼 발표로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른 것. 1973년생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유명 방송인과 결혼까지 하게 됐으니, 그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정작 이번 국감에서 그는 ‘돌쇠’였다. 피감기관에 요청한 자료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줄 때까지 요구하고, 의심이 드는 부분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는 것. 김 의원은 “무식할 정도로 국감을 파고 또 팠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가 다른 의원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을 짚을 수 있었던 데는 ‘돌쇠팀의 우직함’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실 한 관계자는 “정책보좌진들이 국책연구기관에 법인카드 사용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두루뭉술한 답변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자세한 엑셀 파일 분류 답변 양식을 미리 보냈다”고 말했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묻고, 의심되면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파는 ‘돌쇠 정신’이 ‘8억 파스타’를 밝혀낸 비결인 셈이다.

    # 증거 들이대는 예리한 ‘탐정형’

    의원들 튀는 질문과 정치쇼 사이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왼쪽)과 이상일 의원.

    일반적으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여당은 정부정책을 옹호하고, 야당은 질책하는 성향을 보인다. 특히 외교, 안보, 통일 분야의 경우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 이런 성향이 더 강해진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외교안보 라인의 ‘소통과 투명성 문제’에 대해 야당 의원 못지않은 송곳 질문을 던진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의 ‘탐정형’ 활동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질의에 앞서 해당 부처와 국회 출입기자 1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이를 근거로 해당 부처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번 조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 통일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란 평가가 52.3%(58명), ‘긍정적’이라는 평가는 절반에 못 미치는 22.5%(25명)에 그쳤다는 점도 공개했다.

    더불어 이 의원은 업무수행 능력 평가에서 ‘꼴찌’를 한 통일부와 ‘거짓말 논란’으로 지탄을 받는 국방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시절 캠프 대변인 등을 역임한 인물. 대통령 최측근으로 일했지만, 대정부질문에서는 정권 핵심으로 불리는 국방부와 통일부를 상대로 날카롭게 질의했다. 그는 심지어 현 정부의 외교, 안보, 통일 정책에 대한 취재진의 평가 점수가 낙제점 수준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의 질의 방식은 ‘영리한 탐정형’”이라고 해석했다. 정부정책과 부처에 대해 막연하게 질의할 경우 청와대가 불쾌해할 것을 예상해 사전 수집한 ‘증거’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 차근차근 집 짓듯 ‘꿀벌형’

    의원들 튀는 질문과 정치쇼 사이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왼쪽)과 서영교 의원.

    이 밖에도 이번 국감과 대정부질문에서는 ‘꿀벌형’이 주목받았다. 재료를 꾸준히 모아 집을 짓는 꿀벌처럼, 경험과 장기간 자료 수집을 활용한 사례다. 보수 및 진보 언론 모두에서 호평받은 실험은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의 ‘e메일 국감’이다. 홍 의원은 이번 국감을 준비하면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관 공공기관 임직원 7만6000여 명에게 정책과 조직문화에 대해 묻는 e메일을 보내, 6500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주관식 질의에도 2000여 명이 참여해 정책 제안을 했고, 부당한 조직문화나 임직원 비위행위에 대한 제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이런 국감 방식은 ‘벼락치기 호통 질의’와 대조를 이뤄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또 피감기관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도 방대한 자료 분석과 해외 사례 비교로 눈길을 끌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감에서 최근 논란이 된 ‘사이버 감청’에 대해 “검찰은 연간 100여 건 정도의 감청영장이 발부됐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2009년부터 5년간 3만7453건의 유선전화와 e메일, 카카오톡 아이디 등에 대한 감청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감청 결과 보고서가 공개되는 일본과 미국을 예로 들면서 감청 명세 공개에 대한 검찰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두 의원의 이런 ‘스타일’은 현장에서의 바닥 경험과 국정 핵심 분야에서 근무한 경력이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 홍 의원은 젊은 시절부터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용접공’ 출신. 대우자동자 노동조합위원장을 역임했고 참여정부에서는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일했다. 서 의원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시절부터 ‘사회운동과 비판의식’으로 주목받았던 ‘여걸’이다. 참여정부 시절 춘추관장을 역임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국정의 큰 그림을 공유하고 세계를 순회하며 언론인들과 접촉한 경험이 최근 국감에서 자산이 됐다는 후문이다.

    결국 이번 국감과 대정부질문에서는 ‘튀는 데도 상급’이 되려면, 어쭙잖은 쇼 대신 이미지와 정책, 그리고 경험이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 증명됐다. 돌쇠형, 탐정형, 꿀벌형 의원들은 본인도 ‘튀면서’ 입법부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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