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깜깜이 해외투자 ‘역시나 쪽박’

2004년 이후 7년간 8조 원 손실 초라한 성적표

  •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st@lgeri.com

    입력2014-11-03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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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깜이 해외투자 ‘역시나 쪽박’
    우리 국민의 해외펀드 투자 잔액이 9월 말 현재 53조 원(금융투자협회 통계 기준)을 넘어섰다(그래프1 참조). 520억 달러 규모다. 1998년 국가부도에 몰려 장롱 속 금붙이까지 모아야 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운 숫자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해외투자에서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 민간 부문의 해외증권 투자 성과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는 뜻(그래프2 참조). 이제부터 그 초라한 성적표를 하나하나 숫자로 확인해보자.

    10년 전인 2004년 해외펀드 투자 규모는 6000억 원, 2006년 말까지만 해도 3조8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해외증권 투자 붐은 2007년 시작됐다. 그 한 해 동안 10조 원이 늘었고, 2008년에는 총투자 원금 잔액이 40조 원으로 불었다(그래프1 참조). ‘펀드 러시(fund rush)’였다. 90% 이상이 주식에 몰렸던 이 투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른바 브릭스(BRICS)로 흘러들어갔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은행 통계로도 확인된다. 2007년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 거래금액 525억 달러 가운데 절반인 266억 달러가 중국, 중남미로 향했다.

    투자 원금 잔액 9월 말 현재 53조 원

    급격히 증가하던 해외투자는 2009~2011년 크게 줄었고, 3년간 주식투자는 50억 달러에 그쳤다. 다시 회복기로 돌아선 2012~2013년에는 연간 260억 달러 내외까지 늘었고, 주식 일변도에서 채권과 주식이 반반씩 차지하는 구성으로 바뀌었다. 특히 브라질과 터키 등 신흥국 채권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다. 요컨대 최근 7년간 해외투자는 ‘주식 일변도 투자→투자 동결→채권투자 증가’의 흐름이었다는 얘기다.

    이제 수익률을 살펴보자. 2007년 이후 국제 금융시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측불가능’이었다. 2007년에는 물가가 상승하면서 금리가 올랐지만, 2008년 이후엔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가 터졌고, 지난해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로 신흥국 금융 불안이 엄습했다. 그만큼 수익률 관리는 어려웠다. 실제로 2007~2013년 성적을 단순 평균해서 보면 해외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연평균 3.4%, 채권형은 -5.3%로 저조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큰 시기였던 만큼 투자 시점에 따라 수익률 차이도 컸다. 2007년 주식형에 가입한 경우 연평균 수익률은 -5.6%, 즉 총 30%가량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반면 2008년 말이나 2010년 말에 투자한 경우 연평균 수익률은 10%였다. 2008년 중 큰 손실을 본 투자자가 환매하지 않았다면 순자산이 61% 정도 늘어났으리라는 의미다.

    그러나 해외주식형 펀드의 투자 금액은 2008년 9월 40조 원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지난해 말엔 18조8000억 원으로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많은 이가 수익률을 만회할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반면 채권형의 경우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이어졌던 2007년을 제외하곤 손실이 없었으나 수익률도 미미했다. 어느 시점을 잡더라도 수익률이 0%에 그친 것. 원금의 1~2%에 달하는 수수료를 감안하면 실제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해외채권형 펀드에 투자하기보다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편이 낳은 투자전략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국부펀드인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수익률은 다른 내국인의 해외펀드 투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2006~2013년 수익률은 주식투자 -1%, 채권 5.13%였다. 특히 주식이나 채권의 성과를 비교할 때 활용되는 모건스탠리지수(MSCI)나 바클레이채권지수(BGAI)보다 1%p 이상 수익률이 높았다. 그러나 원화로 환산한 국내투자에 비하면 오히려 낮은 수치다. 환율 변동 위험까지 고려할 경우 성과가 좋다고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2008년 이후에도 해외증권 투자를 꾸준히 늘렸기 때문에 2009~2010년 자산 가격 회복기에 손실분을 만회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투자자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차원에서 따져봐도 성적은 마찬가지다. 투자 시점과 자산이 집중돼 있는 데다 수익률까지 크게 변동해 해외증권 투자의 전체 손익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략적인 수치를 얻기 위해 금융투자협회의 해외투자 펀드 통계 중 펀드 설정 금액이 전월 대비 감소했다면 환매된 것으로 보고, 평가 금액 일부를 안분계산한 후 배분해 실현된 손익과 평가손익으로 나눠 추산해봤다.

    깜깜이 해외투자 ‘역시나 쪽박’
    투자자 보호 제도적 장치 필요

    그 결과, 2004년 이후 해외투자 펀드에서 발생한 손실은 투자자들이 투자 금액을 회수해 확정된 손실만 5조1500억 원이었다. 실현되지 않은 평가 손실은 2조8500억 원. 7년 동안의 손실 규모가 8조 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열심히 수출해서 번 돈을 투자로 고스란히 까먹은 셈이다. 투자 시점과 투자 자산 편중,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초래한 결과다.

    해외증권 투자는 투자 대상국의 거시경제적 위험뿐 아니라 원화와 해당국 통화 간 환율까지 고려해야 하는 지극히 복잡한 의사결정이다. 과연 한국 투자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인지했을까. 물론 해외펀드 투자에서 나오는 이익은 투자자에게 귀속되므로 손실 책임 역시 투자자에게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2008년 말 환매하지 않았다면 손실 규모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실을 본 후 원금이 회복되면 투자를 회수하는 것은 재무행동학에서 말하는 투자자의 기본 속성이므로 투자자를 탓하기도 어렵다. 2006~2007년 무렵 정책당국은 급격히 증가한 경상수지 흑자를 해외로 퍼내려고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와 해외투자 관련 규제를 해제한 바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 하락으로 이어져 수출이 악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투자 경험이 없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려 노력했는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시기 금융업계는 투자 위험을 숨기고 수익만 강조하는 판매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해외투자 인력의 전문성이나 네트워크가 취약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해외투자를 유치한 측면도 있다.

    국내 경제의 성장 둔화와 저금리를 고려하면 해외증권 투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해외투자는 포트폴리오 효과를 통해 투자 위험 대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7년간의 초라한 성적표는 지난 실패 경험을 검토해 이제부터라도 관련 규제와 투자 행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국부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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