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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IS와 미국 딜레마

초기 칼리프 국가 재건 IS는 어떤 전략을 썼나

알카에다 하부조직서 출발, 테러조직 뛰어넘어 군대 수준 역량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초기 칼리프 국가 재건 IS는 어떤 전략을 썼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반군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IS)가 전 세계 지하드(성전)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하드를 주도해온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뛰어넘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알카에다 하부조직으로 출발한 IS가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 주에서 이라크 북동쪽 디얄라 주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사실상 ‘국가’가 됐다는 것은 이슬람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IS는 6월 29일 시리아 북부 라카에서 칼리프가 통치하는 ‘칼리프 국가’(Caliphate) 창설을 공식 선포했다. 이로써 최고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3)가 칼리프가 됐다.

칼리프는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리는 최고통치자다. 무함마드가 632년 세상을 떠난 이후 슈라(원로회의)에서 칼리프 4명을 차례로 선출했고, 이런 방식의 선출제도는 661년까지 계속됐다. 무함마드 사후 제4대 칼리프까지 시기를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부른다.

이후 칼리프의 정통성을 놓고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된다. 칼리프 제도는 이슬람권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특히 오스만튀르크 군주인 술탄이 칼리프의 지위를 차지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제국이 해체됐고,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1924년 칼리프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이렇듯 이슬람 역사에서 사라진 칼리프 제도를 21세기 세상에서 부활시키고 칼리프가 통치하는 국가까지 세운 주체가 바로 IS다. 자신들이 알카에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지하드를 벌이면서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공동체를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2011년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빈라덴이 일생 동안 이루고자 했던 꿈을 알바그다디가 실현했다는 의미다. 알바그다디의 이름인 ‘아부 바크르’는 초대 칼리프 이름과 똑같다. 무함마드 사후 최초의 칼리프가 바로 무함마드의 오랜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573∼634)였다.

아부 바크르는 이라크와 시리아 정복에 착수한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였고, 공교롭게도 IS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북부를 영토로 삼고 있다. 이전 명칭인 ISIL(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과 ISIS(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도 이들 지역 이름에서 나왔다. 레반트는 지리·역사적으로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통합해 지칭하는 명칭으로 중동의 역사적 중심지에 해당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IS는 2003년 요르단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만든 ‘자마트 알타우히드 왈지하드’(일신교와 성전)에서 출발했다. 알자르카위는 2004년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우리나라 군납업체 가나무역의 직원 김선일 씨를 납치해 참수하는 등 각종 테러를 저질러왔다. 알자르카위는 같은 해 빈라덴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알카에다 하부조직이 되면서 자신이 이끌던 조직 이름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로 바꿨다.

2006년 미국의 강력한 소탕작전으로 알자르카위가 사살되자 AQI는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이름을 바꾸고 겨우 명맥만 이어갔다. 그러다 시아파가 주축인 이라크 정부가 수니파를 탄압하면서 수니파 젊은이들이 ISI에 합류했고, 이후 서서히 부활하게 된 것이다. 특히 2011년 3월 발생한 시리아 내전이 결정적 계기였다. 내전이 발발하자 ISI는 시리아 진출을 결정했고, 알바그다디는 심복인 아부 모하마드 알골라니를 시리아로 보내 알카에다 지부인 알누스라 전선을 만들게 했다.

알바그다디는 2011년 말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ISI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치하에서 일했던 수니파 장교들이 주요 영입 대상이었다. 알바그다디는 2013년 4월 알누스라 전선이 ISI에서 파생된 조직이며, 두 조직을 ISIL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통합을 거부한 알누스라 전선의 지도자 알골라니는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알자와히리는 “알바그다디는 이라크에, 알골라니는 시리아에 집중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알바그다디는 이를 거부하고 같은 해 5월 알누스라 전선의 본거지인 시리아 북부 도시 라카를 점령했다.

이후 ISIL은 시리아에서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알누스라 전선을 흡수 통합할 움직임까지 보였다. 2월 알자와히리는 ISIL 측에 알누스라 전선과의 통합을 중단하고 시리아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했지만, ISIL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알자와히리는 ISIL은 알카에다 조직이 아니라고 파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알카에다에서 쫓겨난 ISIL은 오히려 한층 더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고, 시리아 북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한 ISIL은 6월부터 이라크 제2 도시 모술 등 북부 지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초기 칼리프 국가 재건 IS는 어떤 전략을 썼나
모든 수단 동원 ‘샤리아’ 시행

그렇다면 IS와 알카에다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두 조직의 목표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로 통치하는 초국가적 이슬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무함마드 사후 건설된 초기 칼리프 국가의 재건을 뜻한다. 알카에다는 국제적 네트워크 운동을 벌였지만 칼리프 국가를 세우지는 못했다. 반면 IS는 중동 핵심 지역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영토를 차지하고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IS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슬람주의 국가 건설을 준비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의 연구원 앨릭스 빌거는 IS가 2012년 초부터 단순 테러조직을 넘어 군대 수준의 역량을 갖췄다고 지적했다. 특히 철저하게 수니파를 앞세우는 기본 전략을 수립했다는 것. 이는 알자르카위가 작성한 ‘신(新)이라크 전략’이라는 문건에 기초한 것으로, 그는 이 문건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큰 틀의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이라크에서의 저항활동을 시아파에 집중하고 수도 바그다드와 종교적으로 각 분파가 혼재된 지역을 공략할 것. 둘째, 수니파 주민을 선동해 시아파를 상대로 종파전쟁을 일으키고 정부를 전복하거나 적어도 그 기능을 약화할 것. 한마디로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IS 최고지도자 알바그다디는 이 전략을 이라크에 국한하지 않고 시리아까지 확대해 철저히 이행했다.

전략과 전술 측면에서도 IS는 알카에다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두 조직 모두 샤리아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은 같지만, IS는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샤리아를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IS는 점령 지역에서 음악 등 모든 세속적 관행을 금지하고 있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여성과 어린아이를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여성이 집 밖에 나갈 때는 눈만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가린 니캅이란 베일을 써야 하며, 학교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 이에 복종하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을 경우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체를 절단하거나 채찍질하면서 공포감을 고조한다.

그 연장선에서 IS는 포로가 된 이라크 정부군은 물론 소수민족과 시아파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등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참수 등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고 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기까지 한다. 알카에다도 시아파를 반대하긴 하지만 시아파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반대해왔다. 오죽하면 알카에다가 직접 나서서 IS의 행동에는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빈라덴의 ‘오른팔’로 불리던 아부 카타다도 IS를 ‘지옥 불구덩이의 개(dogs of hellfire)’ ‘살인과 파괴 기계들’이라고 비난했다.

가장 부유한 테러조직

이외에도 IS와 알카에다는 운영방식과 형태, 구성원 등 다양한 면에서 적잖은 차이가 있다. 알카에다는 점조직으로 활동하며 테러를 자행하지만, IS는 영토를 장악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마치 군사조직과 비슷하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IS를 “테러리스트와 군대가 결합된 조직”이라고 분석한 이유다. 알카에다 조직원이 대부분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출신인 반면, IS는 중동 출신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국가는 물론 러시아, 중국 등 총 80여 개국 출신의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당초 알카에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부였던 빈라덴의 재산에 의존해왔지만 그의 사망 이후 인질 몸값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반면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를 장악하면서 유전 10여 곳을 확보했고 여기서 나오는 석유를 불법판매해 수억 달러를 챙겼다. 모술의 은행을 접수해 현금 5억 달러를 탈취하는 등 현재까지 20억 달러 상당의 재원을 확보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조직’이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IS는 알하야트 미디어센터 등을 설립해 첨단 디지털 기법과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알카에다는 IS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데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양새다. 알자와히리가 얼마 전 인도에 지부를 창설했다고 선언한 것도 IS를 의식한 결과다. 한마디로 알카에다가 지는 해라면 IS는 뜨는 해다. IS의 칼리프 국가 선언으로 빈라덴의 꿈은 일정 부분 실현됐지만, 정작 그의 자취는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955호 (p50~52)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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