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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원유 수출 ‘0’이지만 정제유 수출 폭증…‘북 정유시설 고장’이 더 설득력 높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외곽에 있는 바싼(八三)유류저장소. 북한과 송유관으로 연결돼 있고 철도로 운반하는 유류도 이곳에서 출발해 ‘북한의 숨통’이라 부른다. 삼엄한 경비로 일반인 접근이 차단돼 있어 택시 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0의 미스터리.’ 지난 6개월간 정부 당국자들과 북한 연구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질문이다. 중국 정부가 집계, 발표하는 무역통계에서 대북 원유 수출 항목이 1~6월 내내 제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 중국이 북한에 매년 50만t 안팎의 원유를 공급해왔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도 25만1000t을 수출했던 것에 비하면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0의 행진’이 이어지면서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북 원유 수출 중단을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주요 증거로 지목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냉전 이후 한 번도 없었던 강경자세”로 “‘북한을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 중이라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가 하면, “북한군이 기름이 떨어져 훈련 때도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고 연대장급 지휘관들도 차를 세워놓고 다닐 정도”라며 북한의 조기 붕괴가 임박했다는 ‘대북소식통’발(發) 기사도 줄을 이었다. 과연 북한과 중국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에너지 밸브가 잠긴’ 북한 경제는 조만간 붕괴하는 것일까.

시야를 넓히면 실마리를 풀 단초는 의외로 쉽게 눈에 들어온다. 중국 해관총서(우리의 세관)의 대북 유류 수출 통계 세부항목별 자료가 그것이다. 먼저 이 자료에서도 2013년 전체 원유 수출이 6억 달러에 가깝고, 가솔린 등 정제유가 1억 달러를 조금 넘었던 것에 비해 올해 6월까지 원유 수출 항목이 ‘0’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다른 에너지 제품 수출 급속 증가

그러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진실’은 이 기간 가솔린 등 정제유 수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일반 자동차 연료로 쓰는 가솔린의 경우 4월에만 1200만 달러어치, 물량으로는 1만3000t 안팎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갔다. 항공유로 쓰는 등유의 경우 이전에는 거의 수출되지 않았지만, 3월에는 1400만 달러어치가 북한에 수출됐다. 군용트럭에 주로 사용하는 디젤도 전에는 거의 수출되지 않다 4월 들어 7000t 이상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뿐 아니다. 중국이 그간 북한에 수출해온 전력은 매월 10만~20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3월에는 87만5000달러, 4월에는 100만 달러 이상을 넘겨줬고, 4월과 5월에도 전년도에 비하면 훨씬 많은 양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결론적으로 말해, 원유 수출이 중단된 것만 빼면 올해 들어 다른 에너지 제품 대부분의 대북 수출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정제유와 전력 등의 수출 증가분이 원유 중단을 완벽히 상쇄할 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부족분을 상당 수준 보충해주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원유 공급이 줄면 가솔린 등 정제유 수출량도 거의 같은 패턴으로 감소하곤 했던 이전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여기에 항공기용 등유와 트럭용 디젤이 주로 군사장비에 활용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북한군이 극심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전언은 사실과 다를 공산이 커 보인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원유 중단을 끊었다고 보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는 “중국이 원유 수출 중단을 보충해줄 다른 형태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며 “수출이 아닌 무상지원의 경우 해관총서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통계를 앞뒤로 살펴보자. 2000년대 초 연간 1억 달러 안팎에 불과했던 유류 수출은 2005년 처음으로 2억 달러를 넘었고, 계속 증가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7억 달러 이상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대북 석유 수출이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는 뜻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이 0을 기록한 것이 드문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월별로 따지면 2000년 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74개월 가운데 원유 수출이 전무했던 달이 총 43개월, 평균 넉 달에 한 번씩 반복돼온 일이다. 2개월 이상 연속으로 0을 기록한 경우도 2000년 1~4월부터 2013년 7~8월 등 올해 이전에만 모두 다섯 차례 있었다. 중단 기간이 6개월까지 길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4~5개월 수준의 중단은 이전에도 있었던 것.

평균 넉 달에 한 번씩 ‘0’ 반복

더욱이 이들 장기 중단은 모두 6자회담이 순항 중이거나 양국 고위층의 상호 방문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시점에 나타났다. 북·중 관계 냉각 여부와 관계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의미다. 이때마다 국내외 언론은 ‘중국 대북정책 변화의 징후’나 ‘북·중 관계 악화 신호탄’이라는 보도를 쏟아냈지만 원유 수출은 이내 재개되곤 했고, 그 다음 달에는 거의 어김없이 원유수출량이 평균치의 2배 가까이 뛰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부족했던 원유를 보충해주기 위해 수출량을 늘렸거나 아예 집계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을 뒤늦게 한꺼번에 정산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단 하나의 예외는 2009년 8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4개월간의 원유 수출 중단이다. 이때가 의미심장한 것은 그해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기 때문. 북한의 도발과 원유 수출 중단이 시점상 맞닿아 있는 유일한 경우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다른 원유 수출 중단 기간과 달리 이 시기에는 정제유 수출도 똑같이 0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원유와 정제유를 동시에 끊음으로써 실제로 ‘징벌’을 가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해 7월부터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조장을 맡은 외사영도소조가 소집되는 등 중국 권력층 내부에서 북·중 관계에 관한 검토 작업을 진행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앞서 본 것처럼 다른 에너지원을 통한 대규모 보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모든 유류제품이 동시에 끊긴 2009년과 같은 성격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통계 흐름만 놓고 보면 2000년이나 2004년 등 기술적 문제 때문에 수출 중단이 나타났던 경우에 가까운 패턴이라는 뜻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 등을 제어하려고 중국이 수출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일각의 분석에 동의하기 힘든 두 번째 이유다.

대북 에너지 밸브 중국, 잠그지 않았다

유류 1700t을 실어나를 수 있는 북한 유조선 유종3호. 1975년 건조된 낡은 배지만 최근 러시아 연해주 유류저장소 인근 항구와 나진항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유시설에 이상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한다. 중국 단둥 외곽의 원유 저장소로부터 원유를 넘겨받아 가솔린과 등유, 디젤 등 정제유로 만드는 평안북도 피현군의 봉화화학공장은 1978년 건설돼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정유시설인 나선지구의 승리화학공장은 2009년 아예 가동이 중단됐다. 커티스 멜빈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NK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유일한 정유시설인 봉화화학공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정제를 끝마친 완제품을 공급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유류 사정과 관련해서도 국내외 전문가들은 “안 좋은 것은 맞지만 국가 차원의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전한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한 외국 학계 인사는 “북한 측 인사들이 ‘기름값이 많이 올랐다’고 불평하긴 했지만, 시내 교통 사정이나 차량 운행 등에서 심각한 장애를 느끼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유류 수입이 완전 중단됐다면 북한 경제 전체가 올스톱 상태에 놓여야 할 텐데, 실제 상황은 경미한 수준에 가깝다는 것. 최근 수개월간 육·해·공군별 대규모 기동훈련이나 화력 시범이 오히려 크게 증가한 것 역시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베이징의 ‘마지막 카드’

국제해상운송 교통정보를 살펴보면 최근 수개월간 북한 유조선 삼마2호(1000t)와 유종3호(1700t) 등이 러시아 연해주 유류저장소가 자리한 슬라뱐카와 나진항을 빈번하게 오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중국으로부터의 정제유 수입 증가로도 벌충하지 못한 유류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고 있는 셈. 실제로 올해 1분기 북한과 러시아 간 유류 교역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배 증가한 7200t 안팎이었다. 원유 수입 중단의 어려움을 여러 경로를 통해 그럭저럭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국의 대북 석유 공급은 1961년 체결된 북중동맹조약(정식 명칭은 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의 합의사항 중 하나로,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부속 합의에 담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급량 자체는 양측 합의에 따라 수정된 적이 있지만, 아예 끊는 것은 동맹 자체가 폐기되지 않는 한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최근 원유 수출 중단을 대북정책 변화의 증거로 삼거나,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보기는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0의 미스터리’를 둘러싼 논란은 허수에 가까워 보인다. 기초통계에서 정제유 등 다른 에너지의 대북 수출 항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관계기관과 이전에도 늘 반복돼온 일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몇몇 전문가, 희망 섞인 기사를 양산해온 일부 언론이 만들어낸 악순환의 결과물인 셈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말이다.

“많은 언론이 중국 측 전문가를 인용해 ‘대북정책 변경’을 기정사실화하지만, 대북정책은 중국 외교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 국제부 소관 사항이므로 이른바 ‘친한파(親韓派) 전문가’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최근 들어 이들은 한국 언론보도를 그대로 반복하거나, 한국을 향한 중국 정부의 구애에 장단을 맞추려는 경향마저 있다. 세미나와 칼럼을 통해 중국 관변학자들이 쏟아낸 말만으로 북·중 관계를 진단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주간동아 2014.08.18 951호 (p48~50)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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