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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초상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

‘위대한 거장’이라 지지해준 친구 변함없는 우정 화폭에 담아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

‘에밀 졸라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 1868년, 캔버스에 유채, 146 × 114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초상화는 ‘나나’와 ‘제르미날’을 쓴 소설가이면서, 유대인 드레퓌스 중위의 무죄를 주장한 글 ‘나는 고발한다’로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당대의 지성 에밀 졸라(1840~1902)를 그린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작품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네와 졸라는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사실 졸라는 ‘풍기 문란한 그림을 그린다’고 늘 가혹하게 비평받던 마네를 지지하고 변호해준 몇 안 되는 비평가 중 한 명이었다.

화가 세잔의 중학교 동창이던 졸라는 프랑스 파리의 신문과 팸플릿에 미술 비평을 즐겨 썼다. 그는 아카데미파와 인상파로 양분된 당시 파리 화단에서 늘 후자 편에 섰다. 그런 그의 눈에 유난히 띄었던 작품이 마네의 그림들이었다.

기성 화단에서 인정받고픈 마음 때문에 후배 모네, 르누아르와 피사로 등이 조직한 인상파전에 출품하기를 거절했던 마네였지만, 아카데미파는 마네에 대해 싸늘하기만 했다. 견디다 못한 마네는 1867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이때 전시회 팸플릿에 마네를 변호하는 글을 써준 이가 졸라다. 졸라는 마네에 대해 “과거의 전통을 집약해 미래를 여는 위대한 거장”이라며 “가까운 미래에 그의 그림이 루브르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1865년 발표돼 엄청난 악평을 받은 누드화 ‘올랭피아’에 대해서도 졸라는 “말 그대로 화가의 살과 피를 담은 걸작”이란 찬사를 보냈다.

악의 가득한 혹평만 받던 마네에게 졸라의 호평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로 그는 졸라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자청했다. 그림 속에서 검은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말쑥하게 갖춰 입은 졸라는 한쪽 다리를 포갠 채 ‘화가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왼편과 오른편에 각기 일본 병풍과 에도시대 목판화(우키요에)가 걸려 있다. 졸라와 마네는 모두 19세기 후반 파리 예술계를 사로잡았던 선구적이고 이국적인 취향, 즉 저포니즘(일본풍)에 푹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은 센 강변에 막 문을 연 ‘중국 항구’라는 동양 물품 판매점에 자주 들러 우키요에를 사들이곤 했다.

그 옆으로는 마네의 ‘올랭피아’ 복사본이 걸려 있다. ‘올랭피아’ 바로 밑에 보란 듯이 배치해놓은 깃털 펜은 그림 모델이 작가임을 강조해준다. 펜 뒤에 보이는 푸른색 소책자는 마네의 개인전시회 당시 졸라가 우호적인 서문을 써준 팸플릿이다. 그리고 ‘올랭피아’ 뒤에 무심히 겹쳐져 있는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바쿠스’의 목판화본이다. 마네와 졸라는 모두 일본풍에 심취한 동시에 스페인 예술에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 이 무심한 듯한 배경 배치를 통해 마네는 자신과 졸라가 공통된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마네가 이 초상화를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졸라의 변함없는 우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 자신과 졸라가 공통으로 가진 선구적이며 예술적인 취향, 그리고 거듭된 실패에도 여전히 마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1868년 살롱전에 입선했다. 아마 초상화의 전통 공식을 따르면서도 졸라의 개성을 잘 드러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호감을 산 모양이다. 살롱전에 걸린 그림을 통해 대중은 마네와 졸라의 막역한 관계, 그리고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트렌드를 리드하는 세련된 감성’을 새삼 깨달았다. 초상화를 통해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의 열망까지도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마네의 천재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주간동아 2014.07.14 946호 (p63~63)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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