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2014.06.09

“더 개혁해라”… 황금분할 민심

국민들 ‘견제와 균형’ 절묘한 선택으로 여야 압박

  • 이종훈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4-06-09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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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개혁해라”… 황금분할 민심

    새누리당 지도부가 6월 3일 오후 충남 천안시 종합터미널에서 정진석 충남도지사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압승은 없었다. 신승(辛勝)과 석패(惜敗)만 남았다. 하지만 신승한 자도 석패한 자도 등골 서늘한 접전을 치러야 했다. 이런 선거가 또 있을까 싶다. 만약 새정치민주연합이 인천시장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완승이다. 하지만 그 한 자리 때문에 석패로 만족해야 했다.

    시간을 세월호 이전으로 돌려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었고, 새누리당의 지지세도 탄탄했다.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의 완승. 그런데 참사가 터졌다. 이후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했고 새누리당은 완패 위기에 몰렸다.

    완패 위기에 몰리면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박근혜 마케팅’을 멈췄다. 이때 완패 조짐이 완연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포장만 바꿔 ‘정권심판론’에 불을 다시 지폈다. 세월호 책임론! 그러나 민심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관련 대처에 실망한 보수는 이미 부동층화했지만 차마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견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심판’은 과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앵그리대디 모은 ‘박근혜 마케팅’



    그 틈새를 노려 새누리당이 선거 막판에 박근혜 마케팅의 불씨를 살렸다. 포장을 바꾼 박근혜 마케팅,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달라’는 읍소론이었다. 이것이 차마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할 수 없었던 ‘앵그리대디’(Angry Daddy)를 다시 여당 쪽으로 불러들였다. 막판 추격이 가능했던 이유다.

    인천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더라도 부산시장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새누리당이 신승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부산 앵그리대디의 합류로 신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물론 이겨도 이겼다고 말하기 어려운 신승이다. 앞으로 부산에서 싹쓸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13곳에서 당선한 것은 보수 후보의 난립도 이유였지만, ‘앵그리맘(Angry Mom)’이 변화를 원한 것도 크다.

    앵그리맘은 ‘대안 없는 심판’보다 ‘대안 분명한 변화’를 원했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성공 사례를 익히 알고 있던 만큼 기회가 오자 주저 없이 그 대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일자리나 복지보다 자녀교육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신승에 만족한 새누리당은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도 한숨 돌리는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긴장하던 때와는 사뭇 딴판이다. 아마 내각 개편과 청와대 인적 쇄신도 속도 조절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7·30 재·보궐선거(재보선)가 곧바로 닥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내심 안도할지 모른다. 완패가 아니라 석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주시장 선거에서 승리했고 부산시장 선거에서 선전했다. 이로써 안철수 공동대표도 기사회생 기회를 맞았고, 7·30 재보선 승리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권심판론’ 따위나 떠들어대다가는 또 석패다. 2012년 총선, 2012년 대통령선거,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 이어 재보선까지 흘러간 옛 노래를 계속 틀어댄다면 국민은 거듭해서 다름 아닌 야당을 ‘심판’할 것이다.

    다행히 야당은 이번 지방선거로 잠룡을 여럿 얻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안희정 충남도지사, 여기에 더해 비록 패하긴 했지만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와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김진표 경기도지사 후보까지 잠룡 대열에 들었다.

    이뿐 아니다. 안 공동대표도 광주시민이 살려내지 않았는가. 기존 대권주자에 이들이 더해져 구룡(九龍)이 이끄는 강철대오를 만든다면, 향후 선거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도 잠룡을 얻긴 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이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그들이다. 반면 유력 대권주자였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를 잃었다는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소득이 적은 편이다.

    안 그래도 2인자를 허락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품 때문에 기존 잠룡들도 몸을 낮춘 상태인데,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의 ‘레임덕 방지 활동’도 이들의 운신 폭을 제약할 공산이 크다. 7·30 재보선을 비롯한 향후 재보선을 거치면서 추가로 잠룡이 등장할 기회는 남아 있다.

    7·30 재보선은 새누리당 정몽준(서울 동작을)과 남경필(경기 수원병),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경기 수원정), 이낙연(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등 10명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의원직을 내놨고, 새누리당 이재영(경기 평택을) 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신장용(경기 수원을) 전 의원은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면서 최대 16곳에서 재보선이 이뤄진다.

    이번 지방선거 표심 그대로 재보선을 치른다면,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전체 300석 중 현재 149석)을 유지할 수 없다. 지방선거 ‘겨우 선방’에 이어 과반 의석 상실은 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 향후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은 2016년 총선까지 정치 이벤트가 없기 때문에 재보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황식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학규, 정동영 상임고문 등 거물급 인사가 대거 출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야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재보선 혈투’가 예상된다.

    “더 개혁해라”… 황금분할 민심

    6월 3일 광주에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왼쪽).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와 김진표 경기도지사 후보가 5월 26일 오전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7·30 재보선에 쏠린 눈

    지방선거의 표심 ‘황금분할’은 여야 지도부에도 묘한 여파를 미칠 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완패했다면 지도부 책임론이 일면서 비상체제로 들어갔을 것이다. 당연히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임하면서 친노(친노무현)계가 전면에 등장했을 개연성이 높았다. 하지만 광주시민은 안철수를 살리기로 했고 친노계를 견제하고자 했다.

    두 공동대표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테지만, 과제가 없는 건 아니다. ‘새 정치’가 정말 무엇인지, 이제 제대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 때 성과를 내지 못한 개혁 공천도 속도를 내야 한다. 새 정치를 세력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광주시민조차 안 공동대표를 외면할 것이다. 잠룡에서 탈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7월 14일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맞는다. 새로운 당대표, 이번에도 친박(친박근혜)계 인사가 될지, 아니면 비박(비박근혜)계 인사가 될지 관심사다. 이번 지방선거 경선 과정에선 비박계 인사가 선전했다. 더욱이 선거 종반 읍소론을 선도하면서 신승을 이끌어냈고, 위기에 처한 친박계 후보를 살려내는 데 김무성 의원 등 비박계 인사가 기여한 측면도 크다. 새로운 비박계 잠룡의 등장도 무시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로서는 마뜩지 않은 상황일 수 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다. 따라서 청와대는 결국 당청(黨靑) 관계 변화 요구를 수용하고, 비박계 대표라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통도 열심히 해야 또 다른 대형 인재를 막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비박계 대표의 선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는 정책 이슈가 미약하다 보니 막판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렸다. 특히 후발주자들이 초조함에 ‘묻지 마 의혹’을 제기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지지세력 규합과 추격은 가능했지만 반전은 의외로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네거티브 선거전을 끝까지 거부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은 오히려 그 점을 인정받아 좋은 결과를 낳았다. 어쭙잖은 네거티브 선거전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뿐더러, 스스로 정치생명을 끊어버리는 후폭풍을 낳기도 한다.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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