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2014.06.09

학자금 대출, 시한폭탄 되나

6개월 이상 연체 2012년 4만 명…청년·고용 악화로 상환에 어려움

  •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hoym@lgeri.com

    입력2014-06-09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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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금 대출, 시한폭탄 되나
    “크게 늘어난 학자금 대출 빚 때문에 미국 경제 회복에 빨간 불이 켜졌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다. 2013년 말 미국의 학자금 대출액은 1조800억 달러, 우리 돈 1100조 원에 이르렀다. 10년 동안 미국의 전체 가계부채 규모가 1.6배 늘어나는 사이 학자금 대출액은 4.5배 늘어난 것. 그 결과 학자금 대출은 미국 가계에 주택담보(모기지) 대출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대출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등하던 다른 대출의 연체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데 비해 유독 학자금 대출 연체율만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기지 대출의 연체율은 2010년 1분기 8.89%에서 2013년 말 3.93%로 낮아졌다. 반면 학자금 대출의 연체율은 같은 기간 8.66%에서 11.51%로 높아졌다. 그에 따라 학자금 대출의 연체율은 가계대출 중 전통적으로 가장 연체율이 높다는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보다 높아졌다. 모기지 대출이라는 빚 때문에 위기에 몰렸던 미국 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막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학자금 대출이라는 또 다른 빚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경기 회복 발목 잡을 수도

    눈여겨볼 것은 한국에서도 교육비 관련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2013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교육비 관련 부채는 1년 동안 12.3%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 6%의 2배가 넘는 증가 속도다. 특히 정부 재원으로 이뤄지는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의 경우 2012년 말 대출 잔액은 11조3000억 원으로 7년 만에 23배나 늘어났다. 2012년 181만 명을 기록한 이용 학생 수 역시 7년 만에 10배가 됐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처럼 우리나라 학자금 대출 역시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의 연체율은 2010년까지 3%대 초반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2011년 이후 빠르게 높아져 2012년 말 5.21%까지 높아졌다. 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학생 수도 2012년 말 4만 명을 넘었다.

    예전보다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 부모의 자녀 대학 학비 부담률은 미국의 2.2배에 달한다. 2012년 미국 부모는 자녀 대학 학비의 36%만 부담한 반면, 우리나라 부모는 80%를 책임졌다. 문제는 경기 부진, 부동산시장 냉각, 조기 퇴직 확산 등으로 자녀의 대학 학비조차 대지 못할 만큼 경제적 상황이 악화한 부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재조정을 신청한 50대 이상 신청자는 2만2131명으로 전체 채무 재조정 신청자의 30% 수준으로 높아졌다. 대학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이 늘어나는 이유다.

    학자금 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20대 고용 악화로 청년층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를 비교했을 때 실업률 상승과 고용률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 유일한 연령대가 바로 20대다. 이러한 청년층 취업난은 학자금 대출의 정상적인 상환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학자금 대출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 대학 학자금은 채무자인 대학생의 취업과 미래 소득 창출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대학 학자금 대출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대출’이라는 점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등록금 전액을 빌릴 수 있고, 원리금 상환은 대학 졸업 후 취업해 상환 기준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까지 미룰 수 있는 형태의 대출이다. 2010년 23만2000명, 2011년 30만4000명, 2012년 51만 명에 달하는 학생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대출을 받았다.

    우려되는 대목은 이렇게 빠르게 늘고 있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대출 원리금 상환 의무가 올해부터 본격화한다는 점이다. 2010년 시작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대출을 대학 입학 시점에 받았던 4년제 대학 학생이 본격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소득이 발생하는 첫해가 바로 2014년이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 시한폭탄 되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든든학자금’ 대출이 시행된 2010년 2월 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장학재단 창구가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려는 학생과 학부모로 붐비고 있다.

    상품 다양화 등 효율성 높여야

    이들이 악화한 고용 상황으로 제대로 취업하지 못할 경우, 원리금 상환 시기만 뒤로 미뤄질 뿐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 원리금 규모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설령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상환 기준 소득을 초과하는 소득의 20%를 국세청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식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한다.

    대학 교육비와 관련한 부채의 급증과 부실화는 많은 경제적 문제점을 유발한다. 부모가 부담한 교육비 관련 부채는 중·장년층의 소비를 위축하고 이들의 노후 대비를 부실하게 만들 수 있다. 학생 본인이 부담한 교육비 관련 부채는 청년층의 미래 소비를 위축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들이 제대로 취업하지 못할 경우 부실화한 학자금 대출은 청년층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로서도 정부 학자금 대출에 투입된 막대한 재정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이처럼 학자금 대출 관련 리스크가 높지만 청년층이 빚을 내서라도 대학 교육을 받으려 하는 이유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커지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연령대인 25세부터 29세까지 고졸자와 대졸 이상자의 급여 수준을 비교해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그 격차가 더 확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나 가계 사정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면 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대출 상품을 다양화하고 학자금 대출 관련 교육과 컨설팅을 강화해, 학생이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대출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쉽게 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이와 함께 가계의 대학 교육비 부담을 낮춰 학자금 대출 수요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비에 과다하게 쓰이는 교육비 지출 구조를 효율화하고 대학 교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활성화해, 고급 인적자원 육성과 관련한 경제적 부담을 학교, 지역사회, 국가 등 다양한 사회 주체가 가계와 나눠 진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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