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자유학기제’ 1년 교실은 헷갈려

‘꿈과 끼’ 진로탐색 취지 좋으나 현실은 ‘성적’ 최우선 교육 여전

  • 김정아 객원기자 picesgirl@hanmail.net

    입력2014-05-19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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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학기제’ 1년 교실은 헷갈려

    4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The-K서울호텔에서 열린 2014년도 자유학기제 희망학교 학교장 연수 특강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과 자유학기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입시 경쟁이 중학교로 내려온 것 같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나오는 말이다. 특수목적고(특목고) 또는 자사고→대학→취업 순서로 이어지는 경쟁 고리가 한창 꿈을 가꿀 시기인 중학생마저 내신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직장인 L씨는 지난 겨울방학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려던 계획을 갑자기 수정하고 홍콩으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중3인 딸이 학원을 일주일 이상 빠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특목고에 합격한 상태였고 고교 선행학습을 해야 해 중학교 마지막 방학도 쉴 수 없었다. L씨 딸은 장래희망이 아직 없다. 가고 싶은 대학만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정해둔 상태다.

    대학생 한지영(가명) 씨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그는 오전에는 정규 수업을, 오후에는 예체능 수업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요리를 학교에서 배우며 자연스럽게 요리사의 꿈도 갖게 됐다. 꿈과 끼를 살려주고 진로탐색을 도와주는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



    교육부가 지난해 42개 시범학교에 도입한 자유학기제는 바로 그런 취지에서 나왔다. 이 제도는 중학교 6학기 중 한 학기 동안 오전에는 주요 과목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진로탐색 수업을 받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도를 모델로 우리 현실에 맞게 만들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공약이던 ‘진로탐색 시범학교’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던 ‘자유학기제’는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과연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느냐다. 현실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지난해 자유학기제와 같은 맥락인 진로탐색 시범학교의 담당자였다. 그는 “진로탐색 시범학교를 할 당시 사전에 매뉴얼이 내려오고 그것이 실현가능한지 점검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큰 방향만 내려주고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고, 진로탐색이라는 같은 주제로 올 2학기에는 자유학기제를 하는데, 아직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보낸 대전의 중학생 J양은 “처음에는 몇 주 오후에 예체능 수업을 했는데 얼마 안 있어 원래 시간표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J양은 한 달에 한 번 외부행사를 단체로 참관하곤 했는데, 행사 내용이 ‘자유학기제란 무엇인가’ ‘마이스터고란 어떤 곳인가’ 같은 것이어서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연예인 초청 행사가 열리는 다른 전시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학부모의 반응은 다양했다. J양 어머니는 자유학기제 기간에 비수기를 골라 가족끼리 유럽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 K씨의 견해는 달랐다. 자녀의 학교가 2학기 자유학기제 실시를 앞두고 있어 얼마 전 교육청 설명회에 다녀온 그는 학교가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자유학기제에 관한 홍보 동영상이 끝나자마자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화면에 나온 과학자, 예술가 같은 전문가가 우리 아이 학교에도 올 수 있느냐, 더 구체적인 수업 계획을 말해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학교 담당자에게 계획을 묻자 ‘해본 적이 없으니 현재로선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아직 내려온 매뉴얼도 없고 연수도 못 받았다’고 하더군요.”

    K씨가 언급한 학교의 담당 교육청에 자유학기제 준비 내용에 대해 문의하자 관계자는 “5월 말 교원을 위한 연수 계획이 있다. 큰 방향은 주고 학교별로 학교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알아서 준비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프로그램’과 함께 아이들 성적도 걱정이다. 대전시교육청 장학사 A씨에 따르면 자유학기제라 해도 형성평가를 정기적으로 치름으로써 학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는 학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특목고는 중학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4학기 내신을 반영하는데, 자유학기제를 도입한 학교는 3학기 성적만으로 내신을 산출하니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산술적으로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고, 2016년 전국 중학교가 이 제도를 실시하기에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 1년 교실은 헷갈려

    서울시교육청은 3월 17일 예원학교에서 올해 ‘자유학기제 및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시행하는 150개 연구학교 운영을 위한 발대식을 가졌다(왼쪽). 진로탐색을 위한 자유학기제를 운영하는 경기 안산 신길중 ‘요리(보고) 조리(하는) 반’ 참여 학생들이 부스에서 과자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좋은 프로그램 마련이 필수

    학부모의 우려를 이해하는 교육 현장에서는 자유학기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걱정이다. 지방은 서울보다 인프라가 열악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학교 측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광주의 한 중학교 교감 K씨는 “자유학기제는 교육 본질에 충실하기 때문에 현 정부의 교육 정책 가운데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정책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수업이 재미없어 ‘딴짓거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K씨는 자신의 학교도 현재 청소년수련관, YMCA와 협력해 자유학기제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범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어나가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자유학기제 시범학교에는 3000만~4000만 원이 지원되고, 교사에게 승진가산점 인센티브를 주며, 희망 학교에는 교사 인센티브 없이 2000만 원을 지급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를 대하는 교육 주체의 마음가짐이다.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은 물론 의지도 필요하다. 지난해 시범학교였던 학교 교사와 올해 준비 중인 학교 교사들도 아이들의 수업 흥미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학기제가 1979년 실패로 돌아간 ‘자유학습의 날’처럼 되지 않으려면 좋은 프로그램 마련이 필수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자유학기제가 잘 운영된 지역은 경기 안산과 울산, 경북 문경 등 사교육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높은 곳이다. 안산 신길중은 학부모들이 교육 기부까지 해 더 큰 성과를 거뒀다. 현장 교사들은 7차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처럼 학교, 가정, 학생이 삼위일체가 돼야 이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진 제도라도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중요하다. 30년간 교단에 몸담았던 김용택 씨는 제도 따로, 사회 따로인 세태에서 자유학기제가 보여주기 식 정책이 될까 걱정이다. 그는 “입시경쟁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제도만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취지와 매뉴얼보다 실효성이 관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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