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검찰 소환에 잠적 후 버티기…‘세월호 참사’ 과실치사 혐의 적용 검토

  • 최우열 동아일보 기자 dnsp@donga.com

    입력2014-05-19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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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5월 13일 검찰 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염곡동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 씨 자택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 뒤 인터폰 카메라에 체포영장을 보이고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회사 지분을 1주도 가진 게 없고 경영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1997년 세모그룹 부도 이후) 유 전 회장은 사진을 촬영하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에 경영을 할 시간도 없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지목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자, 유 전 회장 측이 내놓은 첫 해명이다. 사고 다음 날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죽을죄를 졌다”고 사과한 것도 유 전 회장이 아니라 김한식(72·구속) 청해진해운 대표였다.

    그러나 검찰은 유 전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에게 회사 경영상의 배임 및 횡령 혐의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 수사에 집중했다. 사고를 초래한 숨은 배후를 찾는 것이 300여 명 희생자의 원혼을 달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유 전 회장 일가가 빼돌린 수천억 원대 재산을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과 사고 수습비로 환수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사를 시작한 지 3주 만에 검찰은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을 실질적으로 경영한 인물이 유 전 회장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세월호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수사총괄 안상돈 광주고등검찰청 차장)는 압수수색 등 청해진해운 수사 과정에서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회장’으로 표기된 문서 2건을 발견했다.

    유병언, 직제표 ‘청해진해운 회장’



    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인 4월 15일 작성된 ‘청해진해운 인원 현황표’에는 유 전 회장이 ‘회장’으로 명시돼 있다. 여기엔 유 전 회장의 사번 ‘A99001’도 표시돼 있다. 이 사번은 청해진해운 설립일인 1999년 2월 24일 유 전 회장이 가장 먼저 입사해 1번을 부여했다는 의미다. 또 청해진해운의 비상연락망에도 ‘유병언 회장’으로 표기돼 있었다. 지분을 모두 버린 채 사진만 찍는다는 당초 유 전 회장 측 해명과는 상반된 증거가 속속 나타났다.

    게다가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방검찰청(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경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와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회장이 차남 혁기(42) 씨와 박승일(55·구속) 아이원아이홀딩스 감사, 김동환(48·구속) 다판다 감사 등 이른바 ‘부회장단’을 통해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에 경영 지시를 내린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특히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에서 ‘자문료’ 형식으로 매달 1000만 원 이상 받아온 것도 실질적인 경영자에 대한 급여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검경합동수사본부가 확보한 지난해 초 청해진해운 임원회의 회의록에 ‘복원력 저하로 최고경영자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는 내용이 포함돼 유 전 회장이 사고 위험성까지 인식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세월호 매각 결정과 이를 번복한 뒤 계속 운항한 과정에서도 유 전 회장이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정황이 속속 나왔다.

    이런 증거들을 확보한 검찰은 김한식 대표는 물론, 세월호의 실질적인 선주이자 청해진해운 최고 경영책임자인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침몰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김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체포한 곳이 경영 비리를 조사하는 인천지검이 아니라 사고 원인을 수사하는 검경합동수사본부라는 점도 검찰의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당초 김한식 대표는 인천지검 측에서 회사 돈을 빼돌려 유 전 회장에게 몰아준 혐의(배임)로 구속하려 했지만 대검찰청 지휘부가 검경합동수사본부에 김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를 먼저 구속한 뒤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로 결정한 것이다.

    검찰은 유 전 회장에게 배임 및 횡령뿐 아니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도 적용해 형사처벌을 하기로 하는 등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5월 13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에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 씨 집에 강제 진입한 인천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이 건물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대균 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철수했다(오른쪽).

    검찰 ‘높낮이 모임’ 실체 확인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계열사를 장악하려고 활용한 부회장단과 사장단 회의, 즉 ‘높낮이 모임’의 핵심 인물 10명을 확인한 것으로 5월 9일 알려졌다. 검찰이 이른바 ‘유병언 사단’의 실체를 확인함에 따라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을 포함한 수많은 계열사의 최고 경영책임자였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 전 회장이 부회장단 3명과 사장단 6명 안팎으로 구성된 ‘회의’를 통해 경영을 총괄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차남 혁기 씨와 박승일, 김동환 감사가 부회장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장단은 김한식 대표, 변기춘(42·구속) 천해지 대표, 고창환(67·구속) 세모 대표, 송국빈(62·구속) 다판다 대표, 이재영(62·구속) 아해 대표, 신재직(59·피의자) 전 천해지 공동대표 등 6명이다. 김혜경(52·체포영장 발부) 한국제약 대표와 김필배(76·체포영장 발부) 전 문진미디어 대표는 사장단 등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최측근 참모 라인이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부회장단과 사장단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지시를 내리면 일사불란하게 지시가 이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 전 회장 중심의 사장단 회의는 1997년 세모그룹 부도로 유 전 회장이 외관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막후 경영’을 위해 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까지도 주요 의사결정을 이 모임에서 내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부회장단과 사장단을 배임 혐의 등으로 전원 구속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를 구속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불안한 조짐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미국에 머무르며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던 차남 혁기 씨가 국내의 유 전 회장 측 관계자들과도 연락을 끊어 사실상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검찰 관계자는 “혁기 씨가 국내에 있는 일가는 물론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회사 관계자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검찰이 법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이라는 연락을 유 전 회장 측으로부터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혁기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한편, 대검찰청 국제협력단과 함께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의 협조를 받아 소재 파악과 강제소환에 나섰다.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5월 13일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 씨의 체포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경기 안성시 금수원(기독교복음침례회 안성교회)에서 교인들이 입구를 막은 채 “종교 탄압을 하지 마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4월 17일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혁기 씨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한미 당국 공조로 여권을 무효화하면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범죄인인도청구 재판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추방될 수 있다. 검찰은 회사 돈 수백억 원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혁기 씨가 핵심 구실을 했고 범죄 수익금도 가장 많이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다. 유 전 회장은 장남보다 차남을 경영과 신앙의 계승자로 점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5월 12일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던 장남 대균 씨조차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해버렸다. 검찰 내부에선 “금수원을 소도(蘇塗·죄인이 도망가도 잡아갈 수 없는 신성 구역) 삼아 숨어 있으면 국가 형벌권도 다 피할 수 있다는 얘기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핵심 피의자인 혁기 씨와 장녀 섬나(48) 씨,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인 김혜경 대표가 미국에 머무르며 세 차례에 걸친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한 데 이어 국내에 있는 장남마저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유 전 회장 측은 검찰이 소환을 통보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총본산인 금수원으로 찾아간 검사들을 문전박대하면서 만나주지도 않았다. 유 전 회장의 ‘세모 왕국(王國)’이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은 체포에 앞서 설득 작업부터 하기로 하고 정순신 특별수사부장을 포함한 검사와 수사관 7명이 오후 3시경 경기 안성시 금수원을 찾았다. 검찰이 출입문으로 몰려나온 금수원 관계자들에게 “유 전 회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이들은 “안에 없다”고 받아쳤고 “(최측근인) 이석환 씨라도 불러달라”고 하자 “병원에 갔다고 한다”고 응답했다. 검찰이 “그 밑의 책임자라도 불러달라”고 하자 “(검찰에) 다 소환되지 않았느냐”며 검찰 측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이들은 “유 전 회장을 만나려면 약속하고 오거나 사전에 허락을 받고 오라”면서 “여기는 교회”라고 했다.

    장·차남 사법 절차 무시

    정 부장검사는 “모든 관계자가 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체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만나서 조사 일정을 정하고 접점을 찾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정문 관리 책임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유 전 회장을 본 사람 있느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고 모두가 “본 적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검찰은 아무런 성과 없이 15분 만에 전원 철수했다. 이튿날 검찰은 서울 서초구 염곡동 대균 씨의 자택 문을 뜯고 들어가 체포영장 집행에 착수했다. 그러나 대균 씨는 집에 없었다. 검찰은 소환에 저항하는 자녀들을 제외하고 곧바로 유 전 회장에게 직접 소환을 통보하는 강수를 뒀다.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유 전 회장에 대한 소환 통보로 수사는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검찰이 이기느냐 유 전 회장이 이기느냐는 5월 안에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1개월, 검경 수사는 계속된다

    이준석 선장 등 선원 4명 살인 혐의 기소…23명은 구속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법’을 우습게 아는 유병언 일가

    5월 15일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한 불법사안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합수부)는 참사 한 달째인 5월 15일 선장 이준석 씨와 선원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 중 선장 이씨를 비롯해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 기관장 4명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승객들에게 탈출 명령을 할 수 있는 장비와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법령에 규정된 구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다. 나머지 선원 11명에겐 유기치사와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합수부는 세월호 구명벌 검사를 허위로 한 혐의로 이미 구속된 한국해양안전설비 대표 등 3명과 화물 과적을 지시하거나 묵인한 혐의로 구속된 김한식 대표 등 청해진해운 임직원 5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를 준비 중이다. 한편 합수부는 4월 15일 인천항에서 세월호가 출항할 때 화물을 제대로 동여매지 않은 혐의로 물류업체 우련통운 본부장 문모 씨와 현장 책임자 이모 씨를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합수부는 1년여 동안 지속된 것으로 드러난 세월호의 과적 운항, 부실한 화물 고박(고정), 증톤(증축)의 적정성, 운항 허가 등 사고의 구조적 배경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 ‘가려진 공범’을 모두 찾아낸다는 방침이다. 일단 세월호의 복원성 검사를 맡은 한국선급 팀장 이모 씨도 입건해 조사하고 있으며, 세월호 증축 설계와 시공을 맡은 조선소 대표도 잇달아 불러 조사했다. 합수부는 이들의 혐의가 입증되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합수부는 한국선급이 해양수산부 관료들에게 조직적으로 뇌물을 상납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합수부는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장과 운항관리자가 세월호 출항 전 선장 이씨 등이 허위로 작성해 제출한 안전점검 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운항 허가를 내준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사고 이후 수색, 구조 상황에서 초동 대처 미흡과 직무유기, 세월호 증축과 과적에 대한 관리감독 등 해양경찰의 불법 사항을 수사하려고 합수부와는 별도로 검찰 차원의 수사팀을 따로 꾸리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부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증거가 속속 나옴에 따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종 책임을 유 전 회장에게 묻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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