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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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심각한 결핍과 왜곡

‘나’보다 ‘우리’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부족… 공공목적 위해 협력하는 자산 키워야

  •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아시아 중소기업학회 회장 kckim@catholic.ac.kr

    입력2014-05-07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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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자본 심각한 결핍과 왜곡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승객을 구조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9세기적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여러 리스크가 보이는데도 모두 눈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처에 진화하지 못한 시스템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지속가능한 진화 노력을 하기보다 표가 되는 복지, 이른바 공짜 정책 내놓기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주 가설(entrenchment hypothesis)’ 속에서 미래 위험요소가 배양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리스크에 무감각한 사회에서 발생한 ‘배양된 재앙(incubated disaster)’의 전형이다.

    안주 가설은 참호 속에 가만히 있으면 편안하지만 시간은 시스템을 진부하게 만들고, 시장이 고립되며, 관료화가 진행된다는 데서 연유한 말이다. 기업이 만든 제품은 시간이 흐르면 범용화되고, 기존 시장은 새로운 틈새시장 등장으로 점차 고립화되며, 기존 역량은 점차 관료화한다. 그래서 결국 미래 언젠가 ‘현재의 저주(curse of incumbency)’로 나타난다.

    과거부터 유야무야한 개혁

    ‘현재의 저주’와 ‘안주 가설’을 극복하려면 혁신으로 관료화를 탈출해야 한다. 참호 속에 갇힌 기존 역량, 기존 시장, 기존 제품에서 탈출해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편안한 참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 변화는 대한민국 개조라는 이름으로 총체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번에 대한민국 개조는 가능할까.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금융 시스템 개혁에 실패했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인 저축은행 사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유야무야됐다. 한국인은 감성적 감수성이 큰 반면 이성적 감수성은 낮아 충동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번에도 감성에 이끌려 울기만 하다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벌써부터 국민은 변호사들이 세월호 사건 책임자들을 살려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한국은 ‘나’보다 ‘우리’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 국민 간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이 낮은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 관계적 자본을 형성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반면, 공공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공중도덕적 자본은 약하다. 그 결과 관계적 자본의 폐해가 나타난다. 사건 책임자와 법조인의 끈끈한 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개조가 가능하고 ‘현재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후진적 시스템과 자기 존재 이유(mission)에 대한 고민이 없는 관료화한 조직이 만든 ‘배양된 재앙’이다. 아래에 지적한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라도 제거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 첫째 배를 설계대로 만들었는지 점검했다면, 둘째 화물적재량을 제대로 점검했다면, 셋째 배의 평형수를 제대로 점검했다면, 넷째 배에 실은 짐이 움직이지 않는지 점검했다면, 다섯째 ‘청지기 정신’이 있는 선장이 제대로 운행했다면, 여섯째 문제 발견 후 해양경찰(해경)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일곱째 선내 안내방송에서 모두 빨리 선실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면, 여덟째 해경과 헬리콥터가 도착 즉시 배 안으로 들어가 구출작전을 했다면, 아홉째 선장과 선원이 재빨리 대피를 도왔다면, 열 번째 귀신 잡는 해병이 제구실을 했다면, 열한 번째 우리나라 선박 전문가들이 창조적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배에 물이 들어가면 선실 문을 안에서 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창조적 해결책을 제안하지 못한 해양 전문가도 이번 사고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런 문제를 모두 관리하고 점검하는 어느 조직이라도 원칙을 지켰으면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구조현장에 전문가는 없고 빨리 구조하라는 컨트롤타워의 독촉만 있는 대한민국 리더십에 문제가 많은 것도 물론이다. 어떻게 단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관련기관이 존재 이유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관료화하고 있다. 국가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경찰에 대한 신뢰는 1996년 47.5 수준에서 2007년 24로 급락했다. 이제 귀신 잡는 해병도 무서운 군대에서 불쌍한 존재로 바뀌고 말았다.

    법과 규정 엄정하게 집행을

    사회적 자본 심각한 결핍과 왜곡

    해양경찰이 4월 28일 공개한 영상에는 4월 16일 오전 9시 30분께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이 탈출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시스템은 사회라는 생태계에 존재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한번 만들어지면 사회 진화 속도만큼 끊임없이 진화하게 해야 한다. 이 유기체는 ‘ASK’를 먹고 자란다. 즉 태도(Attitude), 기술(Skill), 지식(Knowledge)이다. 이번 사고는 국민 모두의 공분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조용히 우리 주변의 관료화에 대한 질문을 해봐야 한다. 여러분의 조직과 시스템은 태도, 기술, 지식 측면에서 과연 진화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바탕으로 이번 사고를 다 함께 참여하는 투명한 국가개조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제도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가야 한다. 각 기관 지도자는 이 일을 계기로 기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점검에 들어가야 한다.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 없이 살아가는 조직은 관료화한 조직이다.

    그렇다면 무너진 제도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까. 먼저 법과 규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게 필요하다. 모든 조직은 관료화하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엄격한 규정을 만들고 무관용을 실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전문가와 관련 기관은 존재 이유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영혼을 가진 조직이 만들어진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무엇보다 ‘조직의 존재 이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측면에서 위대하다.

    ‘손자병법’에는 싸우기 전 계산해야 할 다섯 가지 항목, 즉 오사(五事)가 있다. 구체적으로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제도(法)가 잘 돼 있어도 훌륭한 장군(將)이 없으면 전투에서 이기기 어렵고, 장군이 있어도 지리적(地) 강점이 없으면 또한 어렵고, 지리적 강점이 있어도 환경적(天) 도움이 없으면 어렵고, 지와 천이 다 있어도 도(道)가 없으면 이기기 어렵다고 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도는 바로 전쟁을 해야 할 명분, 즉 전쟁 존재의 이유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존재 이유, 즉 미션이다. 전쟁의 명분을 갖지 못하면 사람을 얻지 못하고 전쟁에서도 이길 수 없다.

    지금 많은 국민이 한국을 개조해야 한다고 한다. 명분이 있는 이때가 아니면 한국 개조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개조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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