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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예술가의 초상

두 달간 동거 고흐는 이미 미쳐 있었다

고갱이 그린 고흐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두 달간 동거 고흐는 이미 미쳐 있었다

서양 초상화 중에는 유명 화가가 또 다른 유명 화가나 작가, 학자, 정치가를 그린 작품이 많다. 이런 초상화는 당대 지성의 교우관계를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영국 글래스고대에서 문화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원경 작가가 초상화를 통해 탁월한 지성들, 예술가들이 나눈 교류와 영향력의 정도를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두 달간 동거 고흐는 이미 미쳐 있었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92cm

고갱과 고흐. 수없이 많은 예술가가 서로를 좋아하거나 미워하고, 서로를 존경하거나 갈등을 겪었지만 이 두 사람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실로 없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동료 화가로 만난 두 사람은 곧 엇비슷한 이방인의 위치, 즉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온 외국인이었고 고갱은 증권거래일을 하다 뒤늦게 화가로 전업한 덕에 서로 동료애를 느꼈다. 도시 생활에 지친 고흐는 1888년 2월 홀연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에 정착했다. 프로방스의 환한 햇살과 넉넉한 인심에 반한 고흐는 셋집을 하나 빌려 화가들과의 공동생활을 꿈꾸며 고갱을 아를로 초청했다.

이해 10월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면서 두 사람은 고흐가 빌린 셋집에 나란히 아틀리에를 꾸미고 ‘화가들만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격렬하고 극단적인 성격의 고흐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고갱은 작품 세계에 대한 견해 차이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만인 이해 12월, 마침내 다툼으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고흐가 면도날로 자신의 귀를 잘라내는 자해를 함으로써 공동생활은 끝나고 만다.

사건이 터진 날 저녁에도 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웠고, 고갱은 집을 나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피투성이가 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고흐를 발견한 고갱은 즉시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연락한 뒤 짐을 챙겨 아를을 떠났다. 두 사람은 2년 후 고흐가 피스톨로 가슴을 쏴 자살할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훗날 고갱은 고흐와의 공동생활에 대해 “비록 서로 맞지 않는 점들은 있지만, 고통과 병마에 시달리며 도움을 바라는 선량한 친구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이 갈등한 원인은 색채를 사용하는 데 대한 견해가 판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차이를 넘어서기에는 두 사람의 성격이 너무 극단적이었다.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 수 없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갱이 고흐 모습을 그린 이 초상은 그런 운명적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1888년 여름 아를에서 고갱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흐는 해바라기 그림을 여러 장 그렸다. 해바라기 그림으로 고갱의 방을 꾸밀 생각이었다. 아를에 도착해 방 벽에 걸린 해바라기 그림을 본 고갱은 이해 11월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모습을 그렸다. 이처럼 서로 그림을 주고받으며 자극을 주고 격려하자는 것이 원래 고흐가 원했던 화가들의 공동생활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초상화를 본 고흐가 자신과 고갱 사이의 견해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는 데 있다. 아니면 그는 단순히 고갱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고갱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이건 분명히 나다. 그런데 미쳐 있는 나인 것 같다.”

정말로 이 말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고흐는 정신착란 속에서 자신의 귀를 잘랐다. 그는 즉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아를에 도착했던 1888년 봄의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71~71)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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