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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남재준을 어쩌나” 청와대 깊은 고민

증거조작 관련 후임자 인선 난망…‘통일 대박론’과 맞물려 인적 쇄신 분위기도 감지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남재준을 어쩌나” 청와대 깊은 고민

“남재준을 어쩌나” 청와대 깊은 고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13년 12월 6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려고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3월 31일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국가정보원(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 과장과 협조자 김모 씨를 구속 기소했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부 당국자들의 관심은 다음 수순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바로 남재준 국정원장의 거취 문제다. 당초 청와대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남 원장이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

특히 처음 사태가 불거진 2월 중순 국정원이 “조작이 아니며 우리는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로 작성했던 청와대 보고의 상당 부분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교체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상황의 엄중함 자체도 문제지만, 내부조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에 실패한 것은 남 원장의 조직 장악력에 한계가 있다는 뜻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기류가 미묘하게 바뀐 것은 3월 22일 국정원 대공수사국 권모 과장이 검찰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을 기도하면서다. 조직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권 과장의 돌발 행동으로 국정원이 술렁이면서 원장 교체도 늦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계산과 맞물리면서 아예 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

한 안보부처 당국자는 “원장 교체 문제가 이렇듯 갈피를 못 잡는 이유 중 하나는 후임 인선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무적으로만 따지면 인사청문회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이미 정부 안에 들어와 있는 인물이 적격이지만 국정원장 자리의 무게를 생각하면 꼽을 수 있는 카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뜻이다.

국정원장 후보군 많지 않아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내부 승진. 그러나 현 국정원 수뇌부 가운데 내부 출신은 한기범 1차장과 이헌수 기획조정실장뿐이다. 경찰대 학장을 지낸 서천호 2차장은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지휘선상에 있었다는 점에서 고려대상이 아니고, 김규석 3차장은 남 원장과 마찬가지로 군 출신이라 후보군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것. 한 차장과 이 실장의 경우도 ‘박근혜의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 한계다. 역대 국정원장 인사에서 차장이 곧바로 승진한 경우는 김만복 전 원장뿐이라는 점만 봐도 내부 승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 내부의 다음 인재풀로는 주요국 대사가 꼽힌다. 권영세 주중대사의 경우 대통령선거 과정에서의 기여도나 대통령의 신임,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낸 경력 등을 감안하면 후보 1순위로 꼽기에 손색없지만, 지난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정상회담 대화록 파동의 당사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인사청문회가 전쟁터가 될 게 뻔하다는 것.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원장 후보로 심도 깊게 거론된 바 있다는 이병기 주일대사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김영삼 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을 지낸 이 대사는 1980년대부터 정치권과 정부를 오간 경력이 한계로 꼽힌다. ‘국정원 정치화’가 문제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마땅한 카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수평이동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회자된다. 상황의 엄중함이나 직위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정도 중량급 인사여야 여론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김 실장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부터 국정원장 하마평에 유력하게 거론돼왔고, 김 장관의 경우 그간 업무수행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받은 신뢰가 강점이다. 다만 안보실장의 경우 후임 인선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 걸림돌. 일각에서 김장수 국정원장, 김관진 안보실장이라는 ‘연쇄 이동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방부 장관의 경우 김 장관의 재임기간이 길어지면서 그간 후임 인선이 광범위하게 검토되어 후보군이 넉넉한 편”이라고 말했다.

“남재준을 어쩌나” 청와대 깊은 고민

3월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돌려 막기’가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맞느냐는 문제는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안보라인 인사 폭이 커지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쉽게 말해 어느 하나 ‘딱 떨어지는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박 대통령 본인이나 인선문제를 조언할 핵심 참모들의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안보부처 핵심 당국자의 말이다.

“사실 남 원장 교체는 단순히 국정원장 바꾸기가 아니라 안보라인 전체의 세력 재편의 단초에 해당한다. 그간 남 원장이 대북원칙론이나 강경기조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하다 보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보라인 내부에 일종의 ‘힘의 공백’이 만들어진 게 사실이다. 애초 북한 붕괴 가능성과 급변사태 대비 차원에서 시작된 ‘통일 대박론’이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강화로 귀결된 것 역시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 깊다. 차제에 원장 교체를 시점으로 이른바 ‘대화파’가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

최대석 교수 이름 자주 거론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이름이 최근 당국자들 입에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대북정책 좌장으로 불렸던 최 교수는 지난해 1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돌연 인수위원직을 사퇴해 ‘최대석 미스터리’라는 말을 낳았던 인물이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4월 중순 출범하는 통일준비위원회의 민간 부위원장에 최 교수를 임명해 안보라인의 균형추 노릇을 맡길 것이라는 예측이 전문가와 당국자 사이에서 제기된 지 오래. 기획운영단장을 겸임하는 민간 부위원장이 사실상 위원회를 총괄하게 될 것이라는 그림이다.

공교롭게도 최 교수는 3월 28일 제주평화연구원 개원 8주년 기념 세미나, 4월 1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개최한 국회 세미나 등에서 사회를 맡는 등 그간 자제해온 대외활동을 재개했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는 “최 교수의 낙마는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전 정부 국정원의 ‘플레이’에 당한 것이라는 데 정부 내부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국정원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그의 복권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를 국정원장에 임명해 개혁 작업과 인적 쇄신을 위한 메스를 맡기는 그림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통일준비위원회의 기능이나 부위원장의 위상은 실제 운영이 시작돼야 명확해지리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2014년 박근혜 정부 안보라인의 지형도가 큰 폭으로 요동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선택은 대통령 본인 몫이라 해도 물밑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마지막 남은 변수는 북한의 태도다. ‘드레스덴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평양의 최근 행보가 박 대통령의 흉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가 관건이다. 북한의 연쇄 도발로 안보라인 전체가 강성기조로 돌아섰던 지난해 2~4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간첩사건 증거조작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다양한 쟁점과 맞물려 어디까지 번질지 청와대와 안보부처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22~23)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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