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7

2014.03.03

北 외화벌이 탄소배출권 속도전

연 100만 달러 수익 예상 김정은 체제 새로운 돈줄로 등장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4-03-03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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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CDM). 언뜻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이 긴 단어가 북한의 새로운 돈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낡은 산업시설이나 발전설비를 에너지 효율 시설로 교체한 개발도상국에게 탄소배출권(Certified Emission Reductions·CER)을 지급하는 게 그 골자다.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선진국 기업은 국제시장에서 CER를 사들여야 공장 증설 같은 신규 탄소배출사업을 허가받을 수 있다. 이 비즈니스에 북한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청정에너지 시설 자체 건설

    2월 초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스티븐 해거드 연구위원은 북한이 CDM을 주관하는 국제기구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보고한 자료를 분석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총 6개 사업을 가동해 매년 확보하는 탄소배출권은 20만CER. 유럽 시장의 최근 거래가격 기준으로 100만 달러 내외다. 금액 자체는 전 세계 탄소배출권의 0.2%에 불과한 미미한 수준이지만, 내역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한 당국이 향후 이득을 노려 이 사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노후한 화력발전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한의 열악한 에너지 사정은 잘 알려진 사실. 1994년 UNFCCC를 비준한 북한은 2005년 교토의정서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는 게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차적으로는 노후 발전시설 교체를 위한 해외 원조를 기대하는 목적이 컸지만,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북측 인사들은 이때부터 이미 청정에너지 시설을 자체적으로 건설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국제기구를 통해 확인되는 북한의 CDM 사업 현황은 수력발전소 건설에 집중돼 있다. 2012년 3월 등록한 함흥1호 발전소를 시작으로 같은 해 7월 등록한 금야강2호, 백두산선군청년2호, 예성강청년4호 발전소, 8월 등록한 예성강청년5호, 10월 등록한 예성강청년3호 발전소가 그것이다. 모두 유속이 빠른 강 상류에 댐을 쌓아 만든 10~14MW 규모의 소규모 발전설비다. 당초 북한은 총 9개 사업소를 심사해달라고 UNFCCC 사무국에 신청했지만, 평양방직공장과 함흥2호 발전소, 조선남동전력회사의 재생에너지사업은 실사단 방북 조사 결과 최종 타당성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 이후 조선인민군 노동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본격화한 이들 댐 건설 사업은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통신 같은 북측 관영매체를 통해 집중적으로 선전됐다. 뒤집어 말해 CDM을 통한 외화벌이 사업은 한창 속도를 내고 있는 김정은식(式) 경제개발 프로젝트의 또 다른 중요 창구라는 뜻이다. 2009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현재의 화력발전소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로 대체하는 작업을 본격화할 경우 예상되는 CER 판매수입은 10년간 1억2000만~1억57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와 별도로 산업용 보일러 효율개선 사업을 통해서도 10년간 1억5400만 달러의 CER 판매수입을 얻을 수 있다.

    北 외화벌이 탄소배출권 속도전

    평양 시내 한 화력발전소가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기억해둘 것은 2008년 3월 남북이 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CDM 프로젝트를 공동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막후협상을 벌였다는 점이다. 친환경에너지 시설을 건설하는 작업에 남측 기업이 참여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나눠 갖는 ‘윈윈(win-win)게임’ 구상이었다는 게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회고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구상과 맞물려 탄력을 받았던 협상은 2009년 1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북한 조림사업’ 발언 등으로 이어졌지만, 곧이어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좌초했다.

    이후 북측이 선택한 사업파트너는 체코 에너지기업인 토픽에네르고사(社). CDM 사업을 국제기구에 등록하고 실사작업 등을 대신 진행하는 한편 확보된 CER를 구매할 상대를 물색하는 중개역이다. 북한 사업을 담당하는 이 회사 고위관계자는 2012년 3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CER 구매자를 찾으려고 다양한 상대와 접촉해왔으나 미국의 대북(對北) 금수조치 위반을 염려해 30여 개 기업이 협상에서 빠졌고, 이후로는 유럽에 생산설비가 있는 중국계 대기업과 주로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주변국 핵 폐기 설득 ‘당근’ 될 수도

    이렇듯 북한의 CDM 사업 역시 핵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은 명확해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CDM 사업에서) 국가 몫은 시장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뿐이고, 북한의 CER를 구매할지 여부는 개별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탄소배출권이 금수조치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명확한 유권해석이 없다는 게 정설이지만, 다국적기업의 경우 이렇게 흘러 들어간 자금이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에 쓰일 것이라 염려하는 미국 측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향후 6자회담이 다시 열리고 핵 협상이 본격화될 경우 북한에 핵 폐기를 설득할 ‘새로운 당근’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담 참가국 공동으로 CER 거래시장을 만들고 이곳에 자국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노후시설 교체비를 대주는 길이 열리기 때문.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식이 경수로 건설이나 중유 지원 등 그간 핵 폐기 반대급부로 논의돼왔던 다른 방안에 비해 장점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각국 정부예산은 거의 필요 없는 데다 참여하는 기업 역시 CER 구매로 이익을 얻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제1차 북핵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 논의 과정에서 참가국들은 경수로 건설비 분담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한국이 대부분을 떠안는 것으로 귀결된 바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성사를 필두로 북측이 ‘성의’를 보이기 시작한 2월 하순,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각국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2월 21일 북한과 중국은 회담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고, 2월 25일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나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2월 14일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의 방중(訪中) 당시 두 나라가 회담 재개에 합의한 것 같다는 관측도 나왔다. 과연 북한이 찾아낸 ‘새로운 외화벌이 창구’는 간만에 불어온 훈풍에 촉매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북한 CDM 사업이라는 작은 그릇에 담긴 결코 작지 않은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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