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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노메달, 울지 마! 02

“닥치고 운동이나 해”?

승리지상주의에 ‘선수 인권’ 여전히 뒷전…폭력과 성폭력 발생해도 ‘쉬쉬’

  • 김한범 서울대 체육교육과 박사과정 snubum@gmail.com

“닥치고 운동이나 해”?

“닥치고 운동이나 해”?
소치 겨울올림픽은 끝났지만 6월엔 브라질 월드컵, 9월엔 인천 아시안게임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잇달아 열린다. 이처럼 큰 대회가 열릴 때면 참가하는 스포츠 선수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도 회자된다. 하지만 대중은 스포츠 선수가 좋은 성과를 내려고 가졌던 힘든 훈련과 인내의 시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정작 선수가 경험해야 했던 비정상적인 엘리트 체육 환경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도외시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선수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면에 숨은 선수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성과는 계속되기 힘들다. 그동안 선수들은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승리지상주의’ 문화 때문에 자신이 가진 ‘기본 권리’를 온전히 주장할 수 없었고, 선수 인권은 ‘승리’라는 절대적 가치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았을 뿐이었다.

운동부 조직의 집단적 폐쇄성

“닥치고 운동이나 해”?

2006년 4월 쇼트트랙 국가대표선수 가족과 대한빙상경기 연맹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다.

‘스포츠 인권’이란 모든 선수가 인간 존재의 보편적 가치로서 지니는 기본적 자유와 동등한 권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그중에서도 ‘신체적·성적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스포츠 인권의 핵심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지도자와 선수 대부분은 폭력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정신력을 강화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단체생활을 많이 하는 스포츠 선수는 훈련 및 생활공간 등 모든 장소에서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며, 운동부 조직의 집단적 폐쇄성 탓에 외부에 이런 피해사실이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피해자도 자신에게 돌아올 보복과 2차 피해의 우려 때문에 관련 기관에 신고하는 것을 꺼리며, 권위적인 운동부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자신이 당한 폭력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선수라면 응당 겪어야 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한다. 최근 선수 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인권 의식이 성숙하면서 선수에 대한 물리적 형태의 폭력은 상당 부분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지만, 욕설 같은 언어폭력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선수 성폭력’은 지위와 힘 차이를 이용해 선수가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도록 강요, 위압, 유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선수 폭력과 마찬가지로 선수 성폭력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훈련 중 신체접촉이 생길 수 있는 스포츠 특성상 성적 접촉과 지도를 위한 접촉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대부분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스포츠 선수와 지도자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은 비교적 낮은 편이며, 이를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스포츠 인권 향상, 특히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려고 수차례 대규모 실태조사를 했다. 대한체육회 주도하에 2005, 2010,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2005년 체육과학연구원(현 스포츠개발원)과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대규모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대한체육회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2005년에는 폭력을 경험한 선수가 응답자의 78.1%로 아주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뒤인 2010년에는 45.6%로 감소했고, 2012년 조사 결과는 28.6%로 나왔다. 그간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스포츠 인권이 지속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아직도 선수 28.6%가 폭력, 9.5%가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선수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이를 위해 2012년 대한체육회에서 실시한 선수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선수 폭력과 성폭력 현황 및 문제점을 짚어보려 한다.

첫째, 선수 폭력과 성폭력은 주로 지도자(코치, 감독)나 선배 선수에 의해 발생했다. 폭력의 경우에는 코치(64.0%), 성폭력의 경우에는 선배 선수(54.4%)와 동료선수(26.3%), 코치(22.8%)가 주된 가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이 지도자뿐 아니라 선배와 동료선수에 의해서도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스포츠 현장에서 언어적 형태의 성희롱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낮은 인지 수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선수는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권위주의적 운동부 조직문화, 그리고 폭력 필요성을 인정하는 문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구타 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1.9%, ‘성희롱 경험 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7.1%로 나타났다. 이를 개선하려면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선수 및 지도자의 인식을 제고하려는 노력과 함께 선수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언제든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인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선수와 지도자는 폭력 근절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다. 선수의 경우 22.6%가 ‘구타 후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응답했으며, 지도자의 경우에도 21%가 ‘구타 후 선수의 운동수행능력이 향상된다’고 응답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승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승리지상주의 문화가 그들 안에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닥치고 운동이나 해”?
인권침해 예방 노력 강화 절실

과거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조사를 비교해봤을 때 선수 폭력과 성폭력 같은 인권침해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선수가 인권침해를 당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28.6%(폭력 경험), 9.5%(성폭력 경험)라는 결과는 현재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 수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설문조사 특성상 피해를 경험한 많은 선수가 피해를 있는 그대로 기술(응답)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수치보다 더 많은 선수가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과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스포츠 인권 향상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고,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선수를 둘러싼 구조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선수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과 동시에 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물론, 스포츠 선수가 인권친화적인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문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주간동아 927호 (p16~17)

김한범 서울대 체육교육과 박사과정 snubu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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