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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중·일 충돌 시나리오

‘제2 청일전쟁’ 파고 한반도까지 덮치나

양국 패권싸움 동중국해 긴장…우발충돌과 국지분쟁 배제 어려워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제2 청일전쟁’ 파고 한반도까지 덮치나

수호이(Su)-30. 냉전 막바지였던 1989년 12월 31일 옛 소련이 초도 비행에 성공해 93년 파리 에어쇼에서 공개한 복좌형 전투기다. 항속거리 3000km, 최대속도 마하 2.35. 흔히 미국 F-15와 비견되는 이 기종은 이후 옛 공산진영과 비동맹국가들의 대표적인 항공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월 31일 설날, 중국에서는 춘제(春節) 연휴 첫날이던 이날 오전 9시 35분 중국 해군 동해함대 소속 Su-30 2대가 동중국해 상공에 긴급 발진했다. 지난해 11월 선포한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일본 전투기를 추격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급상승, 급강하, 좌우 회전이 이어진 공중 대응전.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의 조우는 이튿날 ‘중국해군망(中國海軍網)’을 통해 상세히 공개됐다.

전투기가 맞부딪치는 상황

통상 각국 초계비행은 무력 사용보다 증거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다른 나라 항공기가 사전 통보 없이 자국 영공이나 ADIZ에 들어왔음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조종사 외에 사진촬영을 담당할 인원이 추가로 탑승할 수 있는 복좌형 전투기가 이 임무에 주로 투입되는 이유다. 상대 비행기에 최대한 접근해 식별부호 등을 찍은 뒤 갖가지 위협기동으로 ‘몰아내는’ 방식이 활용된다. 1, 2차 서해교전 당시 한국 해군이 북측 함정을 상대로 전개했던 이른바 ‘차단기동’과 유사하다.

거꾸로 다른 나라 영공이나 ADIZ에 진입하는 경우에는 정찰기나 정보수집기를 투입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다. 하늘을 맞댄 나라끼리 상대 경계수준을 확인하려 수시로 군용기를 날려 보내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다만 최소 수준의 무장만을 갖추거나 움직임이 둔한 항공기를 투입함으로써 ‘전투의사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가능한 한 우발적 충돌을 피하고, 만에 하나 일이 터져도 비판 여지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2001년 중국 영공에 진입했다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불시착했던 미국 EP-3E기 사건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 P-3C 해상초계기를 개조해 주변국 통신과 레이더 등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이 정찰기는 길이 35m에 달하는 큰 몸집에 최고속력은 746km/h에 불과하다. 일본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6시간의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정찰기는 중국 해군 항공대 J-8 편대와 마주쳤고, 그중 한 대와 충돌해 중국 측 조종사가 사망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중국에 억류된 탑승원과 기체를 돌려받으려 지난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동중국해에 드리운 중국과 일본의 긴장 수위는 이제 이 선마저 넘어섰다. 기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1월 31일 중국 ADIZ에 진입한 항공기는 전투기였다고 중국 측은 특정했다. 그간 지켜오던 암묵적 합의가 무너지고 전투기와 전투기가 직접 공중에서 맞부딪히는 상황에 이른 것. 더욱이 이날 출격한 자국 전투기는 실탄을 장착한 상태였다고 중국 측은 밝혔다. ‘다시 전투기를 보내면 쏘겠다’는 경고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베링 해를 무대로 연출하던 대치 국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일회성 해프닝일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ADIZ가 영토분쟁의 주 무대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하늘에 고스란히 겹쳐 있는 한, 앞으로도 두 나라 전투기는 끊임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다. Su-30은 1980년대 초반 완성된 Su-27을 개조한 전투기로, 중국이 수입한 물량만 100대에 가깝다. 공교롭게도 소련 Su-27은 87년 바렌츠 해에서 노르웨이 정찰기와 충돌해 외교적 분쟁을 낳았던 기종. 탁월한 공중기동 순발력을 자랑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밀성이 부족한 기술적 특성상, 공중 대응전이 반복될 경우 충돌사고 여지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전쟁 때 승리 능력 구축

‘제2 청일전쟁’ 파고 한반도까지 덮치나
양국의 무력충돌이 경제적 측면이든 안보적 측면이든 전혀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한 번의 충돌사고로 전면전이 벌어질 개연성은 높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첫 충돌에서 더 큰 피해를 입은 측이 다시 우발을 가장한 기획충돌을 일으켜 ‘복수’를 꾀하는 시나리오는 얼마든 가능하다. 역시 1, 2차 서해교전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벌어졌던 일 그대로다. 이후 하늘은 더는 평범한 하늘이 아니며, ‘동료의 피로써 지킨 창공’은 아무리 큰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로 돌변한다. 전쟁의 먹구름을 감수하게 만드는 감정적 충돌, 그야말로 파국으로 가는 길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구조와 안보정책 결정 과정이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진다는 큰 그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굴기(屈起)하는 중화(中華)의 전력 강화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세부 내용은 더욱 염려스럽다.

지난해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잠수함 능력을 폭로한 심층기사를 게재했다. 이 무렵 중국이 공개한 092형 핵잠수함은 사거리 2500km 수준의 JL-1A 탄도미사일 12기를 탑재하는 수직발사장치를 장착했다. 유사시 은밀히 상대국 수도에 접근해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 잠수함을 가리켜 ‘적들을 벌벌 떨게 할 암살자의 철퇴’라고 불렀다.

일본의 전력 강화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해병대다. 센카쿠 열도가 속한 오키나와와 규슈를 관할하는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대 소속 부대를 해병대로 재편한다는 게 그 골자. 전통적으로 해병대는 적국 영토에 상륙해 점령하는 작전에 투입되는 전력이다. 일본이 미군에 의존해온 이제까지의 흐름을 깨고 독자적인 상륙작전 수행능력을 갖추겠다는 뜻이다. 육상·항공자위대 수송기와 해상자위대 함정 수량을 감안하면 이미 대대급 상륙작전을 수행할 능력은 갖춰 놓았고, 수륙양용차량과 오스프리 수직이착륙 항공기 도입 등을 통해 자위대의 상륙전력 규모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게 한국 국방부 정보본부의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은 두 나라의 군사력 증강 목적이 단순히 방어능력을 키우는 게 아님을 시사한다. 그동안은 상대의 전쟁 결심을 억제(deterrence)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최근 들어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승리하는 데 필요한 능력(war-fighting capability)를 구축하는 것에 힘을 싣고 있다는 뜻이다. 두 나라 모두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을 때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권력을 나눠 가졌던 집단지도체제에서 국가주석 한 사람의 위상을 독보적으로 강화한 1인 체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창설이 결정된 국가안전위원회를 시 주석이 이끌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독주가 확연한 일본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과 야당 등 견제 정치세력의 유명무실화는 정확히 그 대칭점에 서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두 나라 모두 ‘한 사람만 결심하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국가’가 돼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센카쿠 열도까지 거리는 대략 1000km, 아직은 ‘남의 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중·일 영토분쟁의 와중에 미국이 유보적 태도로 중재자를 자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한국 나름의 구실 고민해야

나진항. 한반도 동북쪽 끝자락, 동해로 나가는 창구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은 이 항만의 조차권(租借權)을 확보하려고 사활을 걸었다. 2010년 나진항 4, 5, 6호 부두를 중국 자본이 건설한다는 데 합의한 북한은 그 대신 50년간의 사용권을 양보했다. 러시아에 막혀 있던 중국이 일본 앞바다로 진출하는 우회로가 열리는 것이다. 자국 상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국 해군이 나진에 상주한다면, 이제 두 나라 사이 군사적 대치선은 동중국해를 벗어나 동해로 북상한다. 한반도권역을 무대로 두 나라가 맞부딪히는 제2 청일전쟁 시나리오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중·일 사이 전선이 한반도를 관통하면 워싱턴도 더는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다. 2만8500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이 고스란히 중국에 포위되는 형세가 만들어지기 때문. 거꾸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평택 주한미군 기지의 입지는 중국을 향해 꽂은 비수가 된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서해에 항공모함을 진출시켰던 미국의 ‘장군’과 나진항 건설 이후 동해에 진출하는 중국의 ‘멍군’이 교차하는 셈이다.

동해에서 중·일 해군함정 사이에 우발충돌이 벌어지고 미국의 개입으로 이어진다면, 이 상황에 주한미군 전력이 동원된다면, 워싱턴이 동맹국인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결정하라’며 지원을 요청한다면? 얽히고설킨 동맹관계로 주변국 전체가 원치 않는 분쟁에 휩쓸리는 그림은, 사라예보의 총성이 인류 최대 비극으로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 확전 경로 그대로다.

“전쟁이라는 유령이 동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2월 1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이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안보회의 석상에서 남긴 말이다. 그 끝이 핵전쟁 같은 극단적 결과가 아니어도, 이어지는 우발충돌과 국지분쟁 과정에서 한국이 잃을 것은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것이 100년 전 전쟁과 120년 전 전쟁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고, 그 복판에 놓인 한국이 그 나름의 구실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국제사회에서 힘을 얻는 배경이다. 어쩌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다.



주간동아 2014.02.17 925호 (p48~50)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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