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3

2014.01.27

뭐든 다한다, 책을 팔 수 있다면

출판계 최악의 불황 탈출 안간힘…팟캐스트·저자 낭독회·북카페 등 통해 책 노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1-27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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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든 다한다, 책을 팔 수 있다면

    출판사 문학동네가 서울 서교동에서 운영하는 ‘카페꼼마’ 전경. 고객 누구나 책을 뽑아 읽을 수 있게 만든 대형 서가가 눈에 띈다.

    ‘생산은 정체, 판매는 감소, 소비는 약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13년 12월 펴낸 ‘출판산업동향 보고서’ 내용이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출판산업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월평균 서적 구매비는 최근 2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2013년 1분기(1∼3월)만 해도 2만5449원이던 것이 3분기(7~9월)에는 1만7857원에 그쳤다. 전체 오락문화비에서 책 구매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8년 20.6%에서 2013년 12.5%로 감소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최근 발표한 1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1위에 오른 것도 출판계 실태를 잘 보여준다. 2009년 번역 출간한 이 책의 지난 5년간 판매량은 1만 부 수준. 그러나 1월 초 SBS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잠깐 등장한 뒤 판매량이 급등했다. 보름 만에 5만 부 넘게 팔렸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취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사람들이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으니 ‘뜨는 책’ 한두 권에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드라마에 책을 노출하려면 간접광고(PPL) 비용으로 억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데, 이번 일로 마케팅 비용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뜨는 책 한두 권에 쏠림 현상 심화



    그러나 볼멘소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책을 팔 수 있다면 뭐든 다한다’가 요즘 출판계 정서기 때문이다. 출판사 휴머니스트 위원석 주간은 “지난해 7월 우리 출판사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조조록) 20권을 완간한 뒤 총력 마케팅을 위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휴머니스트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다한다’는 내용으로 전사적 결의를 다진 뒤 세 가지를 진행했다. 조조록 탄생부터 완간까지 과정과 각계 반응 및 의의를 알리는 다큐멘터리 제작, 특별신문 10만 부 발행, 조조록에 대한 온라인 팟캐스트 방송 등”이라고 소개했다. 출판기념회와 각종 이벤트 등 책 출간 후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 행사도 다 했다.

    이처럼 노력한 결과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조록 누적 판매량이 최근 100만 부를 넘어섰고, 팟캐스트 누적 다운로드 건수도 90만 건을 돌파한 것. 위 주간은 “새로운 팟캐스트를 올릴 때마다 꾸준히 듣는 이용자가 1만5000명 정도 된다. ‘팟캐스트를 듣고 책 내용에 흥미를 느껴 구매했다’는 댓글도 꾸준히 올라온다”며 “독자들이 ‘듣는 책’에 호응하는 만큼, 조조록 개정판을 낼 때는 책장에 내용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QR코드를 넣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휴머니스트는 ‘식탁 위의 조선사’ 등 자사에서 펴낸 다른 책들까지 팟캐스트 방송을 확대했고,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바탕으로 한 미학 팟캐스트를 만드는 것도 추진 중이다.

    온라인 팟캐스트를 도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출판사는 이 밖에도 많다. 2012년 5월 우리나라 출판사 가운데 최초로 팟캐스트를 개설한 위즈덤하우스의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지난해 말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1600만 건을 넘어섰다. 영화평론가로 고정 팬을 확보한 이동진 씨가 좋은 책을 골라 소개하는 형식의 이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면서 출판사 자음과모음(북끄북끄), 문학동네(문학동네 채널1), 창비(라디오 책다방) 등도 팟캐스트 제작을 시작했다. 현재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소개 팟캐스트는 1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뭐든 다한다, 책을 팔 수 있다면

    출판사 휴머니스트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뒤 출판 기념회를 비롯해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 온라인 팟캐스트 방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와 소통을 시도했다.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 진행 모습. 출판사 다산북스가 운영하는 북카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위부터).

    독자 소비 유도 다양한 모색

    출판사들이 이곳에서 직접적으로 책을 광고하는 건 아니다. 저자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책 출간 뒷얘기를 들려주고, 좋은 문장을 선정해 낭독하는 등 책을 소재 삼아 청자와 ‘소통’할 뿐이다. 윤병선 다산북스 홍보마케팅팀장은 “최근 출판계 마케팅 키워드는 ‘부드럽게, 간접적으로’”라며 “저자와 도서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독자와 책을 만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마포구 일대에 크게 늘고 있는 북카페도 이런 마케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요즘 서울지하철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상수역 인근에서는 출판사 직영 북카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학동네의 ‘카페꼼마’와 후마니타스의 ‘책다방’, 문학과지성사의 ‘문지문화원 사이’, 자음과모음의 ‘자음과모음’, 창비의 ‘인문까페 창비’ 등이 유명하다. 다산북스도 2013년 여름 ‘24시간 운영’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더한 북카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나흰)를 열어 북카페 열기에 힘을 보탰다.

    이 카페들의 특징은 대형 서가에 책을 가득 꽂아두고 카페 고객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꾸며놓은 점. ‘카페꼼마’의 경우 한쪽 벽 바닥부터 천장까지 15단 규모 책장으로 채우고, 그 앞에 천장까지 닿는 사다리를 놓았다. 서가에 있는 책은 전부 문학동네와 자회사가 발간한 것들이다. 윤병선 다산북스 팀장은 “최근 출판사들은 책을 펴내도 독자 앞에 노출시키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다. 동네 서점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기회가 크게 줄었고, 대형 서점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책을 두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직영 북카페는 우리가 만든 책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다. ‘나나흰’을 통해 사람들이 책을 친숙하게 여기고, 우리 출판사와 우리가 만든 책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 ‘인터파크’가 2013년 9월 시작한 ‘인문 프리미엄 라운지’ 서비스도 새로운 도서 마케팅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인터파크가 인문학 도서에 관심 많은 독자를 대상으로 개발한 이 상품은 매달 9900원을 내고 가입하는 멤버십 프로그램이다. 회원에게는 월 4회 인문 전문 에디터가 작성한 인문도서 추천 e메일을 발송한다. 책 소개 팟캐스트의 ‘글’ 버전이다.

    회원 전용 혜택도 있다. 가입 즉시 1만2000원 상당 적립금을 주고, 도서 할인 이벤트도 연다. 최근엔 2013년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책 ‘총균쇠’를 회원에게만 절반 이하 가격에 판매했다. 임채욱 인터파크 문학인문팀장은 “책은 대표적인 롱 테일(long tail) 상품”이라며 “좋은 책을 원하는 독자들만 그룹으로 묶어 질 좋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출판사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고 협조해 다양한 할인 상품을 함께 준비한다”고 밝혔다.

    인터파크의 실험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월가입자 수는 2000명 수준, 매달 재가입율도 80%에 이른다. 멤버십 가입이 도서 구매와 직결되는 점도 눈에 띈다. 임채욱 팀장은 “지난해 10월 ‘인문 프리미엄 라운지’ 회원의 도서 구매 패턴을 분석해보니 도서 구매액이 미가입 때와 비교해 2배 늘고, 특히 인문 카테고리 구매액이 730%가량 급증했다”고 소개했다.

    출판계 불황을 돌파하려는 출판사들의 노력은 다방면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윤병선 팀장은 “소비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됐고, 무료 콘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출판 경기가 급속히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독자에게 좋은 콘텐츠를 알리고, 그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 소비를 유도하려는 모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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