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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김정은 잔혹사의 서막 01

개혁 쪽박을 깬 막가파

장성택 처형으로 공포정치에 짓눌린 경제…핵과 경제 병진 모순과 한계 노출

  •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bellkey1@hanmail.net

개혁 쪽박을 깬 막가파

개혁 쪽박을 깬 막가파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피로로 가득한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권력을 물려받은 지 만 2년이 지났다. 그간 벌어진 일 가운데 최대 사건으로 당연히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을 꼽아야 할 것이다. 체포 나흘 만에 전격 처형해버린 일련의 과정은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된 ‘유일체제의 잔혹(殘酷)한 역사’가 3대째 이어지는 북한 인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속전속결 결행한 장성택 처형이 29세 젊은 지도자의 유일영도체제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2인자 제거로 개혁·개방의 리더십과 세력의 근거지를 초토화한 인적 손실의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부족경제를 더 심화한 2년

사회주의 경제는 부족경제(shortage economy)라는 숙명적 특성을 지닌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쌀밥과 고깃국, 비단옷과 기와집’을 공언한 사실은 거꾸로 이러한 현실을 여과 없이 방증한다. 부족경제에서 탈피하려면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간 군사·경제 병진 노선이라는 이름하에 군사 부문을 우선시하면서 자원을 낭비했다. 그 결과 김일성의 군사·경제 병진 노선은 실패했고, 국방공업을 우선시하던 김정일의 ‘선군의 실리사회주의’도 부족경제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그간 북한 경제의 병진 노선은 ‘인민생활 향상 포기’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 교훈을 무시한 채 김정은은 핵 우선의 핵무력·경제개발 노선으로 발전(?)시켰다. 문제는 핵 개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반면, 경제는 상호의존의 개방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상호모순이라는 뜻이다. 국제사회로부터 문을 닫아건 채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병진 노선에 내재한 이러한 상충관계(trade-off)는 부족경제의 문제를 심화하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김정은이 병진 노선을 채택한 배경에는 경제 발전을 통해 인민생활을 향상하겠다는 정책적 고려보다 유일체제를 계승한다는 정치적 의도가 먼저 엿보인다. 주체·선군사상 계승자로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경로 의존적 제약’의 틀과 인민 생활 향상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북한 주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경로 규정적 제약’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인민 생활이 실질적으로 나아졌음을 체감하게 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해왔다. 경공업 부문에서 생산을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연출해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북한이 11월 발표한 13개 경제개발구(우리의 경제특구와 같은 의미) 계획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함으로써 이를 통한 국내 정치적 효과를 기대한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개방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북한이 이를 동시에 개발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나 경제 논리상으로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경제라는 메커니즘의 바탕에는 참여 주체에게 이익을 되돌려주는 상호의존성이 깔렸다. 개방성을 통해 부(富)를 창출하고 국민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그 기본 작동 원리다. 반면 유일영도체제는 이러한 상호의존성이나 개방성과 대치된다. 경제 분야에서의 독점적 권력은 국가의 모든 이득을 수탈하는 구조를 정착한다. 기득권을 활용하는 이러한 수익구조를 경제학에서는 ‘외래지대 의존경제(rentier economy)’라 부른다. 여기서 지대란 생산성 증대를 통한 소득창출이 아니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획득하는 수익을 의미한다.

중국으로부터 투자도 끊길 듯

개혁 쪽박을 깬 막가파

2012년 10월 11일 오후 중국 단둥 압록강 맞은편의 북한 신의주의 한 공장에 생산을 독려하는 구호가 걸려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경제는 이러한 외래지대 의존경제 국가의 특성이 뚜렷하게 목격돼왔고, 그러한 추세는 김정은 체제 2년의 경제 정책 뒤에도 고스란히 깔렸다. 북한 권력층이 지하자원(석탄과 철광석) 수출권을 확보하려고 물밑경쟁을 벌이는 것이나, 13개 경제개발구 가운데 5~6개가 관광을 주요 개발 사업으로 포함한 사실도 외래지대 의존경제의 속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북한이 지난해 발표한 ‘6·28방침’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내각 중심의 경제운용을 위해 군부의 경제 개입을 축소’하고 ‘공장, 기업소 및 협동농장의 경영 권한을 현장으로 이관’하는 조치를 골간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6·28방침의 기본 틀은 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고 제한적으로 시장적 요소를 도입한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따지고 보면 북한은 농상공업 협동화를 완성한 시점인 1958년 이미 농민시장을 허용했다. 이는 북한 체제가 배급 기능이 원만히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시장을 보완적으로 활용하곤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이러한 방침이 탄생한 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변화한 현실을 추종한 결과물일 뿐, 최고수뇌부가 가진 개혁 의지 산물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장성택 처형이 그간 개혁·개방이 발붙일 수 있던 공간의 싹을 제거했다는 점은 ‘6·28방침’의 성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성택 처형의 함의를 복기해보면 스스로 경제 발전 기반을 날려버린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장성택은 북한 지도부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개혁·개방 대표주자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처형은 북한 체제가 개혁·개방이 자리 잡기 매우 힘든 환경으로 퇴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정권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경제 발전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개혁·개방 조치가 필연적이다. 그러나 공포정치의 현실이 전 세계에 공개된 지금 선뜻 투자할 해외 자본이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특히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유도 정책의 상대를 잃었다는 점에서 향후 이들로부터 투자를 유인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장성택 처형은 지난 2년간 김정은 체제가 대대적으로 과시해온 경제정책 속에 어떠한 모순과 한계가 내재했는지를 고스란히 폭로한 셈이 됐다. 회복하기 쉽지 않은 상처다.



주간동아 918호 (p10~11)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bellkey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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