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경영 효율성? 민영화 신호탄?

코레일 노조 반발 이면엔 근로조건 변경…경영 개선 지속 역량 보여줘야 할 때

  • 엄태호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theom@yonsei.ac.kr

    입력2013-12-16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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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 효율성? 민영화 신호탄?

    12월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수서발 KTX 운영 주식회사 출자’ 의결을 한 코레일 이사진에 대한 배임혐의 고발과 관련해 전국철도노동조합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노조원 및 KTX 민영화 저지 범대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2월 10일 코레일(KORAIL) 이사회에서 수서발(發) KTX 운영을 전담하는 자회사 설립을 결정함에 따라 코레일 민영화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과 시민단체는 수서발 KTX 분할을 철도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간주해 이사회 구성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파업에 들어가고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코레일 이사회는 “KTX 자회사 간 경쟁을 통한 경영효율성 강화 조치”라고 강변한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는 수서에서 출발해 동탄과 평택을 거쳐 영호남으로 내려간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와는 평택에서 만나고, 이후부터는 고속철도 전용선 1개를 공동 사용한다. 고객과 지역민 처지에서는 서울역과 수서역 가운데 주거지에서 가까운 역을 선택하면 되므로 수서발 KTX 자회사는 사실상 지역 내 독점사업자로 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표현한다.

    수서발 KTX 자회사는 코레일이 41%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머지 59%는 연기금 등 공적자금이 투자되는 형태로 설립된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분의 민간 양도를 금지하는 규정을 코레일 정관에 포함하고, 향후 코레일 운영 실적에 따라 지분 확대를 허용하는 등 민영화 논란을 피하려고 전력하고 있다. 이런 지분 구조 또한 KTX의 유효한 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철도노조가 민영화 논란을 부각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국토부가 당초 원했던 경쟁체제는 수서발 KTX 운영을 민간 기업에 맡기는 방식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논의돼 2000년대 초 최종 확정된 ‘철도산업 선진화 방안’에서 국토부는 우리나라 철도산업의 근본 문제점을 오랜 독점체제로 파악하고, 주요 유럽국가에서 도입한 경쟁체제를 정책 목표로 삼았다.

    민영화 논란 부각하려는 이유



    하지만 민영화가 효율성을 상징하는 정책수단으로서 일반인에게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던 1990년대, 2000년대 중반까지와 달리,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예상치 못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복지 논쟁이 주된 사회 의제로 등장하면서 민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4대강사업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친기업적 정책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국토부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실행할 동력을 잃었다.

    그 대안으로 급하게 마련한 경쟁 모형이 독일식 지주회사 제도다. 수서발 KTX 노선은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여객, 물류, 차량 정비, 역세권개발 같은 분야를 각각 별도의 자회사로 분리해 운영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모형의 골자다. 코레일은 서울역발 KTX를 운영하면서 지주회사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사실 지주회사 안은 국토부가 지난 몇 년간 추진했던 원안에서 대폭 양보한 것이다. 더욱이 수서발 KTX 지분의 민간 양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코레일 지분을 매년 10%씩 늘릴 수 있게 했으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코레일이 많은 것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철도노조가 강경 노선을 선택한 이유는 지주회사제도가 노조에 미치는 파장이 민영화 못지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철도노조가 주장하는 경쟁체제와 민영화 주장의 이면에는 양측이 전면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 정부 처지에서는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정서를 고려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되, 민영화 논란으로 확전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수서발 KTX 운영을 민간 기업에 맡기는 등 단계적 민영화를 염두에 뒀던 국토부로서는 민영화 효과를 너무 낙관했다는 비판이 자회사 설립을 통한 경쟁체제 도입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는 게 부담이다.

    반대로 철도노조가 왜 이렇게 강경하게 나서는지는 파업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면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코레일 측이 “현재 철도노조 파업은 근로조건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파업이 확실하다”고 주장하자, 철도노조는 “자회사 설립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므로 정당한 파업”이라고 대응했다. 민영화 주장의 이면에 근로조건이 있는 것이다.

    수서발 KTX의 분리 운영이 코레일 인건비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수서발 KTX가 자회사로 분리되면 기존의 서울역발 KTX 노선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다. 물론 현재 KTX 노선의 경우, 초과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감소폭에 대한 예상은 예측 기관마다 다르지만 감소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코레일 재정구조는 KTX 노선 운영의 흑자로 일반 철도 운영의 적자를 보전하는 형태다. 일반 철도 전 노선이 적자인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KTX 노선을 코레일이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코레일의 경영 실적은 급격히 개선될 테고, 그럼 인건비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개연성이 크다. 이 경우 일반 철도의 민영화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

    경영 효율성? 민영화 신호탄?

    12월 9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서울 용산구 코레일 서울본부 대강당에서 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12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철도노조 파업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코레일 임금 수준, 복리 낮아질 가능성

    또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될 경우 물류 부문이 가진 적자구조가 극명히 드러나게 된다. 여객 부문에 비해 매우 열악한 재정구조를 가진 물류 부문은 지난 5년간 비용이 매출의 200%에 달하고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100%를 상회한다. 다시 말해, 매출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구조다. 물론 공익서비스의무(PSO) 지원금 감소의 영향도 있으나, 근본적인 사업구조 자체의 비효율로 사업 정상화가 어려운 부문이다. 일반 여객철도 부문에 비해 물류 부문은 그동안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자회사 형태로 운영할 경우 본격적인 경영 개선의 대상이 될 테고, 그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다.

    무엇보다 철도노조를 힘들게 하는 것은 수서발 KTX와 서울역발 KTX의 비용구조가 동일선상에서 비교된다는 점이다. 수서발 KTX는 신생 조직으로 일부 필수 인력을 코레일에서 수혈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철도노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 새로운 틀에서 탄력적인 인력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현재 코레일 인력구조는 중간 관리층 비율이 하위직급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 항아리 모양이다. 이러한 인사 적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서발 KTX로의 인력 이동이 불가피한데, 수서발 KTX 노선이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면 기존의 노사협약 사항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므로 직원의 임금 수준 및 복리 후생 수준이 낮아질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국토부가 원하는 경쟁체제 효과는 요금에 앞서 비용 측면에서 먼저 나타날 것이다. 동일 사업을 운영하는 두 회사의 비용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 비교가 가능해지면, 기존 코레일의 인건비 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격히 높아지리라는 것은 당연한 예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 새로 설립될 수서발 KTX 법인도 공기업 운영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적인 경영 개선을 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코레일이 스스로 경영 개선을 수행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많은 부작용에도 민영화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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