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2013.10.07

日 작곡가 사무라고치와 환상 호흡

피아니스트 손열음

  • 조이영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lycho@donga.com

    입력2013-10-07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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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작곡가 사무라고치와 환상 호흡

    피아니스트 손열음(위)과 일본 작곡가 사무라고치(아래 왼쪽).

    18호 태풍 ‘마니’가 일본을 강타한 9월 16일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홀에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27)의 일본 투어 첫 연주회가 열렸다. 연주회에 참가했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는 “무척이나 궂은 날씨에도 성황을 이뤘다”고 전했다. 이날을 시작으로 손열음 연주회는 10월 13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10월 26일 나고야 아이치현 예술극장 콘서트홀로 이어지며 일본 전역에서 50여 차례 펼쳐질 예정이다.

    이 장대한 프로젝트는 손열음과 ‘일본의 베토벤’ 사무라고치 마모루(佐村河內守·50)의 합작품이다. 손열음은 4월 요코하마에 있는 사무라고치 집을 방문했다. “일본 작곡가가 자신이 앞으로 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찾고 있다.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일본 기획사의 제안에 별 생각 없이 응한 길이었다.

    사무라고치는 손열음의 연주 DVD를 보면서 한 손을 커다란 스피커 위에 얹어놓았다. 그는 후천적으로 청각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작곡가였다. 흐르는 선율 대신 손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통해 음악을 느낀다고 했다. 사무라고치는 손열음에게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을 들려줬다.

    손열음이 영어로 말하면 일본 매니저가 일본어로 통역했고, 일본어 수화통역사가 수화로 작곡가에게 전달했다. 손열음이 피아노를 치면 사무라고치는 피아노 건반 옆 부분에 손을 대고 음악을 ‘들었다’. 사무라고치는 손열음의 열정적인 연주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난 프랑스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에게도 고개를 가로저은 까다로운 작곡가였다.

    사무라고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해 작곡한 10분 길이의 ‘레퀴엠’을 모티프로 삼아 40분짜리 피아노 소나타를 새로 썼다. 작곡가는 이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손열음에게 헌정했다. 사무라고치는 “손열음은 나의 곡을 가장 잘 표현해 관객에게 전해줄 것이며,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라고 말했다. 손열음은 7월 도야마현 시민회관에서 사무라고치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2번을 녹음했다. 이 음반은 10월 23일경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발매될 예정이다.



    사무라고치는 한국에서 게임음악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스타 작곡가다. 2011년 일본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매한 80분짜리 대작 교향곡 1번 ‘히로시마’ 음반은 지금까지 20만 장이 팔렸다. 올해 3월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NHK 다큐멘터리 ‘영혼의 선율:소리를 잃은 작곡가’가 방영됐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입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0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7세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청각장애가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37세에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사무라고치는 고교 졸업 후 음악대 작곡과에 진학하지 않고 육체노동자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조성(調性)을 거부하는 현대음악 작법이 싫어서였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자 생활을 하고, 도로 청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 궁핍한 생활을 하던 1990년대 말 게임 ‘오니무샤’의 배경음악 ‘심포니 라이징 선’으로 주목받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된 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썼던 교향곡 12곡을 모두 폐기했다. 2000년부터 장애 어린이를 위한 시설에서 자원봉사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이 시설의 한 여자아이에게 영감을 얻어 2003년 작곡한 것이 교향곡 1번 ‘히로시마’다. 그의 대표작인 이 곡은 말러와 브루크너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파풍으로, 전 세계 비핵화를 향한 희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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