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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최의 ‘남자, 여자, 그리고 섹스’

다가갈수록 밀쳐내는 놀라운(?) 능력자

가장 가슴이 아픈 남자 ②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다가갈수록 밀쳐내는 놀라운(?) 능력자


친밀한 관계란 무엇일까. 무엇인가 속내를 보여주는 관계다. 내담자들은 보통 한두 번이면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이는 상담자인 내 능력에 대한 평가는 한편으로 밀어놓고라도,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자기 비밀을 털어놓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마치 자유나 해방의 욕구와도 흡사해, 자기 안의 은밀한 죄를 고해성사하고 죄의 사함을 받고자 하는 심리와도 유사하다.

나씨와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가 영 힘들었다. 그가 자기 아내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므로 나는 상담 진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곧 제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시시껄렁한 농을 하는 횟수가 늘고 상담시간도 길어졌지만…. 그는 자기 일에 대한 회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꾸준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할 수 있다면 조심스럽게 조언도 했다. 그는 내 조언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당최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사람에게 마음을 닫아 왔으면 그렇게 의심이 많고 마음 열기가 힘들까 싶다가도, 진을 쪽쪽 빼는 그가 미워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심정으로 나씨를 떠났겠구나 싶어지고, ‘나마저 그러면 그는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겠지’란 생각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그와의 상담은 지지부진 이어졌다.

“엄마가 왔다 가셔서 참 긴장했던 한 주입니다.”

그가 안부를 묻기에 나는 그대로 대답해줬다. 그러자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왜 어머니가 오시는데 긴장하느냐”고 물었다. 자분자분 그날 이야기를 풀어냈다.



스스로 스트레스 받는 스타일

“저거 바닥에 깐 거 치워. 엄마 오시기 전에.”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인도 닭커리(카레)를 휘저으면서 바닥 물걸레질을 하는 파트너에게 말했다.

“왜? 카펫인데.”

“카펫 같은 소리 한다. 엄마가 보면 어디서 넝마 주워다가 깐 줄 알고 카펫 사서 깔라며 돈 준다고!”

파트너가 부리나케 바닥에 깐 러그를 잡아챈 뒤 방 안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반찬 없이 된장찌개 하나만 있어도 맛있다며 먹지만, 색감과 질이 떨어지고 어울리지 않는 러그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만은 그냥 못 봐 넘긴다. 코멘트도 신랄하다.

“주워 와도 좀 색이 맞는 걸로 주워 와라.”

그러니 “산 건데”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돈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진 않아도 인색한 것은 못 봐주고, 센스 없고 미감 떨어지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는 엄마를 잘 모르는 사람은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재래시장에서 태양초를 직접 사다 빻아 고추장을 손수 담가야 하는 옛날식 엄마인데, 밖에 나가면 “왕년에 여배우였느냐”는 말을 듣는다. 돈 아까워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 않는 엄마지만, 어디서 사 입는지도 모를 옷으로 코디하고 나가면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사는 귀부인 모양새다. 옷은 땡처리로 사도 액세서리나 구두, 스카프는 진품만 쓴다. 말 트면 소박하고 철없고 바보 같고 웃긴데, 무관한 옆 사람이 당하는 꼴을 보지 못해 실속 없이 나서서 수시로 싸워대니(봐주는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으며, 남 눈치도 안 보니 싸울 때 얼마나 무섭겠는가) 사람들은 엄마와 거리를 둔다. 일명 ‘종잡을 수 없는 인간여자’인 것이다. 엄마를 보면 인생 참 고달프겠다 싶다. 까탈진 취향에 소박한 성격, 불의를 못 참는 데다 남의 일에 밥 먹듯이 간섭하는 성정을 지녀 종합적으로 보면 첨단의 불협화음 인간이니까.

“꿩 잡는 매로군.”

그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선생님이 어머니와 똑같으시잖아요. 그런데 어머니가 더하시니, 선생님을 잡을 사람은 세상에 어머니밖에 없는 듯하다고요.”

“상담자가 내담자를 사랑하니?”

나는 그의 관찰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뒤로 그는 내게 아주 친밀하게 행동했다. 인사말을 하고 내빼는 경우가 없어졌고, 제법 진지하게 자신이 하는 일이 곤궁에 빠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아내로부터 도망쳐 허술한 집에서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는데, 주 수입원이 그림 그려 팔기라고 했다.

‘그토록 돈 많은 아내를 버려두고 왜 나와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러다가도 다시 ‘모두 속되구나’란 생각이 밀려왔다. 왜 사람은 모든 것을 물질로만 결정지으려 할까. 나 역시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돈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자 의문을 제기한 셈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먼저 버리지 않으면 나씨를 정확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의심이 많고 사람도 믿지 않는다. 내가 오락가락하면 영락없이 상처받고 나가떨어질 게 틀림없었다.

무조건 믿고 수용하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밀쳐내는 교묘한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려던 사람들이 죄다 제풀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더 많이 상처받으면서 상대에게 모멸감을 줘 떨어져나가게 하는 ‘끝내주는’ 재주를 가진 사람.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남자였다. 저 사람을 어떡하면 좋을까. 끝끝내 내게 마음을 열지 않을 참인가. 가을이 시작되고 고민은 깊어졌다.

나는 그가 동성연애자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그리 여자를 믿지 못할까. 그때 친한 친구가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내담자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나는 스스로 내담자가 돼 바다같이 넓은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그녀는 내 말을 끝까지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사랑하는 경우도 있니?”

나는 눈이 둥그레졌다(계속).



주간동아 2013.09.30 906호 (p40~41)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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