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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뭐, 지구가 텅 비어 있다고?

“맨틀 내부 거대 지하도시” 황당한 주장…질긴 음모론은 일종의 종교 형태

  • 고호관 과학동아 기자 ko@donga.com

뭐, 지구가 텅 비어 있다고?

뭐, 지구가 텅 비어 있다고?
최근 갑자기 지구공동설이 화제가 됐다. 미국 정보기관이 전 방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폭로한 전직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 때문이다. 스노든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지구 속에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종족이 살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노든이 링크한 관련 글은 러시아 한 매체의 기사로, 맨틀 내부에 레이저로 새긴 듯한 거대한 지하도시가 나타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트위터 계정은 누군가 스노든을 사칭해 만든 것이다. 맨틀 내부에 지하도시가 있다는 기사를 실은 곳도 정식 언론이 아니라 흥미 위주의 가십성 글을 싣는 패러디 매체였다. 일각에서는 스노든이 폭로한 내용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고 누군가 스노든을 사칭해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뿌리고 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과학 발달해도 음모론 여전

정말 그런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을 가능성이 있다. 처음 기사 제목을 본 기자도 ‘스노든 역시 결국 허튼소리나 지껄이는 음모론자였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21세기에 지구공동설이라니, 허황돼도 너무 허황됐다. 지구공동설은 지구 내부가 비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가설이다.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은 이를 토대로 1864년 ‘지구 속 여행’이란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150년이 지난 요즘 우리는 지구 속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아직까진 맨틀 속으로 직접 들어가본 사람은 없지만 지진파 같은 간접적인 수단을 동원해 연구하고 있다. 게다가 속이 비어 있다면 지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두께가 평균 수십km에 불과한 지각은 중력을 이길 만큼 강하지 않다.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최소화하려면 행성이나 별은 모두 속이 꽉 찬 공 모양이어야 한다.



현대 과학이 ‘맨틀 내부에 레이저로 새긴 듯한 지하도시’라는 표현이 먹힐 만큼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온도가 수백 도에서 수천 도에 달하며, 암석이 녹을 만한 온도임에도 압력이 너무 커서 고체 상태로 남아 있는 곳에서 어떤 생물이 살 수 있을까.

과학이 발달하면 오래된 음모론이나 사이비과학 따위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만, 이들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이번에 화제가 된 지구공동설도 해묵은 사이비과학이다. 지구공동설만 있을까. 달의 속이 텅 비었다는 달공동설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속이 텅 빈 달은 누군가 갖다 놓은 인공물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외계인이 이미 지구에 와 있으며 외계인과 모종의 협약을 맺은 정부 또는 비밀 권력집단이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 역시 신선할 게 없다.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있다고? 미국 대통령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누가 어느 비밀기지에 UFO를 숨겨뒀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심심찮게 비행기나 기구, 새, 인공위성 등을 UFO로 오인한다. 2006년 영국 국방부는 UFO 목격담 대부분이 대기현상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큐리오시티 같은 탐사선이 화성에서 돌아다니는 지금도 화성 사진을 보면서 동물이나 고대문명의 유적 따위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가 멀거나 흐릿해서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지형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듯 모호한 영상에서 특정한 모양을 찾아내는 심리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뭐, 지구가 텅 비어 있다고?

미확인비행물체(위)나 달착륙은 음모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대표적 사례가 화성의 인면암(人面巖)이다. 1970년대 화성탐사선 바이킹 1호가 찍어서 보내온 사진에 사람 옆얼굴처럼 보이는 지형이 담겨 있었다. 영화 ‘미션 투 마스’는 이 인면암이 우주의 다른 종족이 남긴 시설이라는 기본 얼개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과연 이게 정말 외계인이 남긴 흔적이었을까. 2001년 마스글로벌서베이어가 찍은 고해상도 사진을 보면 이 지형은 사람 얼굴과 전혀 닮지 않았다. 과거 카메라 성능이 떨어지던 시절의 흐릿한 사진 때문에 상상의 여지가 있었을 뿐이다.

요즘 들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음모론은 아폴로 계획이 가짜라는 것이다. 미국이 실제로는 우주인을 달에 보내지 못했으며, 특별히 만든 스튜디오에서 달 탐사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이다. 음모론자들은 당시 미국은 인간을 달에 보낼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방사선을 막을 기술이 없었다고 한다. 우주인이 방사선대를 뚫고 살아서 달까지 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영화나 소설 단골 소재로 활용

언뜻 생각하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방사선 양을 계산하면 인체에 크게 위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방사선대를 이루는 고에너지 입자는 얇은 알루미늄 판도 잘 뚫지 못한다. 1960년대라고 해도 이 정도 방사선은 막을 수 있었다.

몇몇 사진도 근거로 제시한다. 달에 세운 미국 국기(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느니,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느니, 낮에는 섭씨 150도까지 올라가는 달 표면에서 필름이 녹지 않은 게 이상하다느니 등등 열거하자면 많다.

물론 해명은 모두 나와 있다. 미국 국기는 철사를 달아 펼쳐놓았는데, 시차를 두고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보면 구겨진 모양이 똑같다. 펄럭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깜깜한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햇빛이 강하기 때문이다. 달에서는 낮에도 하늘이 까맣게 보인다. 게다가 희미한 별빛은 장시간 노출을 주지 않으면 카메라에 잘 찍히지 않는다. 필름은 고온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했고, 온도가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을 골라서 착륙했다.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음모론을 쓰는 경우는 많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모론이나 사이비과학을 진실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건강과 의학 관련 분야의 음모론이나 사이비과학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요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한 책의 사례를 보자. 이 책에는 현대의학의 치료 방법이 의사와 제약회사가 꾸며낸 음모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책이 팔리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음모론을 단순한 재미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과학은 왜 음모론과 사이비과학을 박멸하지 못할까. 과학자들은 애초에 허황된 주장에는 대응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괜히 대응했다가 더 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음모론자들이 원하는 바다.

진흙탕 싸움에 빠지기도 쉽다. 음모론자들은 대개 아무리 과학적으로 반박해도 못 들은 척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그건 조작된 것이고 너도 속고 있다”고 주장하면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음모론은 일종의 종교다. 인간이 우주로 진출해 둥근 지구의 모습을 목격했음에도 아직 세상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들과의 싸움은 앞으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13.07.29 898호 (p50~51)

고호관 과학동아 기자 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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