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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따로 또 같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부품업체와 완제품업체 최고 경쟁력

  • 이서원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wlee@lgeri.com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독일 뮌헨 BMW그룹 본사 전경. 자동차의 4기통 엔진을 형상화한 높은 빌딩이 본사 건물이다.

독일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혁신’이 작동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개인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혁신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말을 다소 부적절한 조합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의 혁신 흐름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혁신 생태계 등 개인과 개별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혁신의 원천이 강조된다. 이러한 혁신의 다양한 흐름 한가운데 독일 경제의 특징이라 할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적 혁신의 전통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자동차 전장(電裝)표준 AUTOSAR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의 힘에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특성을 결합한 것이다. 혁신에서 보이는 사회적 전통 또한 마찬가지다. 개별 기업의 혁신 성과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이들이 한계에 부딪칠 때 사회적 혁신의 힘으로 시장을 창출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독일식 사회적 혁신은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부품업체와 완성품업체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두 업체가 협력해 시도하는 표준화 노력, 부품업체와 소재업체의 시장 혁신이 완제품업체에 전해지는 박람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협업의 장이 그 사례다. 이 밖에도 정부 조정에 힘입은 다양한 산업 부문 간 협업, 유통업과 제조업 간 협업 등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부품업체와 완제품업체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적 혁신을 살펴보자.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전자장비(전장·電裝) 부문에서 표준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표준에서 협력하고 적용에서 경쟁한다’는 모토로 추진하는 ‘AUTOSAR’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간 협력은 물론, 완성차업체 간, 부품업체 간 경쟁을 가속화함으로써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폴크스바겐, 다임러벤츠, BMW 등 쟁쟁한 완성차업체 못지않게 보쉬, 콘티넨탈, 헬라, 게트락 등 부품업체의 위상도 높다.



독일 자동차산업은 2000년대 중반 위기를 겪었다. 당시 이른바 글로벌 ‘톱4’ 혹은 ‘톱5’ 자동차기업만 2020년대 시장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자동차시장의 독과점화 전망이 유력한 상황인 데다, 독일 기업 가운데 판매 수량 기준으로 폴크스바겐이 4위,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병한 다임러벤츠가 5위권에 자리할 뿐 BMW는 15위권에 머무는 등 전반적으로 독일 자동차 기업의 생존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고객 만족 부문에서는 문제가 더 컸다. 독일의 자동차 소비자단체인 ADAC에 따르면, 2005년 최고 품질을 보증하는 차량 톱10 가운데 9개 차종을 일본 기업이 차지하는 등 독일 자동차의 품질이 일본 자동차에 뒤떨어졌다. 당시 독일 자동차 결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일반 전기부품의 문제가 지적됐다. 일본에 비해 뒤처진 독일 자동차의 전자부품 문제가 전체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존 기계 구동 부문보다 자동차 부품 간 신호전달에서 미흡한 점이 다수 발견되면서 고객들도 독일 자동차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독일 자동차업계 및 부품업계에서는 공통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게 됐다. 독일 자동차업계는 2002년 8월경 BMW,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업체들과 보쉬, 지멘스 VDO, 콘티넨탈 등 부품업계가 공통으로 AUTOSAR를 설립한다. 전통적으로 엔진 컨트롤 및 전장부품에 강한 보쉬가 중심이 돼 각 전기·전자 부품의 호환성과 자동차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연합이 탄생한 것이다.

주방가전 혁신의 확산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독일 바이에른 주 잉골슈타트 시 외곽에 자리 잡은 아우디 본사와 공장 전경. 아우디는 200만㎡ 터에 본사 사옥과 공장은 물론 박물관, 콘서트홀, 전시장, 극장 등을 짓고 지역 주민과 외지 관광객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이 연합은 독일 자동차 기업 간 협력과 경쟁 기반을 확대했다. 공통의 규격 제정을 통해 부품업체들은 차체 제어, 파워트레인, 텔레매틱스 등 여러 부분에서 경쟁과 협력이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간 일대일 협력을 통해 매번 해당 모델에 대한 개발을 개별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이를 조정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기반에서 호환 가능한 제품 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부품업체들로선 특정 완성차업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전체 시장을 염두에 둔 제품 개발이 가능해지고, 완성차업체들도 여러 부품 업체 가운데 최적의 파트너와 협력이 가능하게 됐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AUTOSAR를 통해 지금까지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미국의 권위 있는 시장조사기관 JD파워 기준으로 브랜드 만족도 1위는 메르세데스 벤츠(벤츠), 공동 5위는 BMW와 폴크스바겐이었으며, 제품 만족도는 1위 벤츠 A 클래스, 3위 벤츠 E 클래스, 공동 5위 아우디 A6와 폴크스바겐 골프, 7위 벤츠 C 클래스, 8위 폴크스바겐 파사트 CC였다. 이렇게 최근 소비자 만족도나 결함 통계 등에서 나타나듯, 자동차 신뢰성 제고에 성공한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 순위를 끌어올려 2011년 현재 폴크스바겐 2위, BMW 13위를 차지하는 등 매출에서도 성장했다.

독일 ‘사회적 혁신’ 기업을 뛰게 한다

폴크스바겐의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왼쪽).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보쉬 자동차사업부 생산라인에서 디젤엔진용 고압펌프를 생산하는 직원들의 모습.

이와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부품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통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협력의 길을 모색했고, 그 결과 독일 자동차업계 전반의 품질 향상 및 시장 확대가 가능했다.

독일의 주방가전산업에는 밀레, 지멘스, 보쉬, AEG, Neff 같은 완제품업체 못지않게 쇼트 등 소재 부문의 강자와 EGO 등 부품 부문의 강자가 있다. 밀레 등 완제품업체들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어준 1등 공신은 이와 같은 소재, 부품 부문의 강자들이라 할 수 있다.

주방가전에서 가장 최근 일어난 변화는 인덕션(전자기유도) 방식의 레인지(쿡탑)가 확산된다는 점이다. 가스나 전열기에 의한 직접가열이 아니라 조리기구 자체의 전기저항을 통해 음식을 가열하는 인덕션 방식의 쿡탑은 AEG, Bosch/Siemens(BSH), 밀레, 파고, 일렉트로룩스, Neff 등 주로 유럽 전자기기업체들이 확산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 가운데 스페인의 파고,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등을 제외하고는 주로 독일 기업이 인덕션 방식 쿡탑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쇼트는 최초로 유리세라믹을 쿡탑용 상판에 도입한 기업이다. 이후 쇼트는 기존 핫플레이트 방식의 전기 쿡탑 외에도 가스 쿡탑과 할로겐 쿡탑의 상판 등 쿡탑 대부분에 유리세라믹 상판을 도입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리세라믹 상판을 인덕션 방식의 쿡탑에도 도입하면서 주방기구 소재에서 혁신을 주도해왔다.

부품 분야의 EGO 그룹은 각종 쿡탑 종합가전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쿡탑 조작에서 터치 컨트롤 기술을 도입했으며, 쿡탑에서 조리기구를 옮기면 자동으로 열원이 차단되는 조리기구 인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업 또한 인덕션 방식 쿡탑 부품 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5%를 넘어선다.

또한 인덕션 방식 쿡탑은 주방 조리기구 부문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전자기유도 방식을 사용한 인덕션 방식 쿡탑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과거의 직접 가열방식(가스나 전열선 혹은 할로겐 방식)의 조리기구들을 전자기유도 방식에 적합한 조리기구들로 대체해야 한다. 많은 조리기구업체가 인덕션 방식의 조리기구 사용에 적합한 프라이팬과 냄비를 제공하게 됐고, 특히 독일 조리기구업체인 휘슬러, WMF, Silit, Elo 등이 강세를 보인다.

이들은 최초의 쿡탑 혁신이 조리기구에 미칠 영향과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박람회 등을 통해 확인하고, 기존 조리기구에서 한걸음 더 발전시켜 과거 조리방식에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인덕션 방식 주방기기에서도 사용 가능한 조리기구들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이러한 범용성을 조리기구 밑면 등에 알기 쉬운 심벌로 표기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나타냈으며 사용 가치도 높였다. 이처럼 부품업체에서 시작된 인덕션 방식의 기술 혁신이 공유, 확산됨으로써 주방가전은 물론 조리기구 부문으로도 이어져 시장을 넓혀갈 수 있었다.

독일식 혁신 전략이 시장을 만나는 방식

혁신 전략에서 독일식 전략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이른바 미국식 ‘창고 혁신’ 대신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혁신이 활성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독일의 고유한 사회적 시장경제 바탕 위에서 기업 간, 산업 내, 이종산업 간, 국가와 산업 간 협력이 가능했고,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독일 기업들의 혁신을 꽃피우게 한 것이다.

독일은 우리와 산업성장 배경이 다르고 사회·문화적 차이도 크다. 그만큼 독일식 방법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테고 독일식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쟁 못지않게 협력과 상생이 중시되는 이때, 다양한 차원에서의 사회적 협력에 기반을 둔 독일식 혁신 사례들은 혁신에 대한 우리 시야를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13.07.29 898호 (p43~45)

이서원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wlee@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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