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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제자 조희룡 난 그림 토대로 위조…허련의 글씨도 추사체로 둔갑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1 1860년 오은의 ‘화림초존’ 필사본. 2 김정희의 ‘치원의 시고에 대한 후서 초고’.

우리 느낌에 아름답고 친근하면 ‘진짜’이고, 낯설고 추하면 ‘가짜’일까. 그렇지 않다. 진짜와 가짜는 느낌만으론 알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느낌만으로 판단하려 든다면 어떨까. 당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터. 정확한 사실을 충분히 검증한 후 올바르게 판단하길 요구할 것이다.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다. 가끔 내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하지만 이를 말과 글로 표현할 경우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거짓 정보는 요즘 미국 드라마에서 뜨는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Zombie)와 비슷하다. 썩은 좀비가 계속 나타나기만 한다면 세상은 어떨까. 미술품 진위 감정의 목적은 좀비를 없애는 일과 같다.

특정 시기 추사체 배운 허련

필자는 ‘주간동아’ 896호에서 추사 김정희(1786~1856) 가문 사람들의 글씨와 ‘본래 위조할 목적 없이 김정희의 글씨를 베낀 필사본’이 그의 작품으로 둔갑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서책 ‘화림초존’(그림1)이 전해오는 과정에서 만약 위조자나 사기꾼을 만났다면 김정희 작품으로 둔갑했을 것이다.

1860년 호가 오은( 隱)인 사람은 청나라 진문술(陳文述·1771~1843)의 ‘화림(畵林)’을 초록한 김정희의 친필 서책을 베끼고, 이런 사실을 ‘화림초존’ 마지막 쪽에 밝혔다. ‘그림1’을 충남 예산군에 있는 김정희 종가가 소장한 보물 제547호 ‘예산김정희종가유물’ 가운데 김정희의 ‘치원의 시고에 대한 후서 초고’(그림2)와 비교하면, ‘오은의 추사체’는 자연스럽지만 ‘김정희의 추사체’에 있는 특정 필획의 강약을 따라 하지 못했다.



김정희의 친밀한 제자인 소치 허련(1808~1893)의 글씨도 김정희 작품으로 둔갑했다. 순천대 박물관이 소장한 ‘공란최난’(그림3)은 김정희가 아닌 허련의 작품이다. ‘공란최난’은 1853년 봄에 쓴 김정희 작품이라고 알려졌다. 이를 김정희 원작의 목판수인본(그림4) 및 판각 탑본(그림5)과 비교하면, ‘그림3’은 허련이 1853년 추사체가 아닌 ‘1839 ~1843년 추사체’로 쓴 것이다. 김정희의 추사체는 생전에 끊임없이 발전했지만, 허련은 특정 시기 추사체만 배웠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3 허련의 ‘공란최난’. 4 김정희의 ‘공란최난’ 목판수인본. 5 김정희의 ‘공란최난’ 판각 탑본. 6 허련의 ‘영해타운첩’. 7 김정희의 ‘나가묵연’.

이 밖에 ‘허련의 추사체’가 김정희 글씨로 둔갑한 예가 더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소장한 김정희의 ‘영해타운첩’은 허련의 필사본이다. 하지만 미술사가인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완당평전3’에서 ‘영해타운첩’을 김정희 친필로 알고 “이 간찰첩은 초의가 완당에게 받은 편지를 모은 것이 아니라 완당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를 따로 필사해둔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영해타운첩’은 김정희가 초의선사(1786~ 1866)에게 보낸 편지 10통을 허련이 필사한 것이다. 김정희의 친필 원본 편지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정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모음 ‘나가묵연’에 모두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완당전집(권5)’에 실린 1849년 음력 11월 10일자 ‘영해타운첩’(그림6)과 ‘나가묵연’(그림7) 편지를 비교하면, ‘그림6’은 허련의 글씨다. 이는 ‘1839~1843년의 추사체’를 배운 허련의 추사체로, ‘그림7’을 베껴 쓴 것이다.

허련은 ‘속연록’에 1876년부터 1879년까지 4년간 자신의 행적을 기록했다. 1877년 그는 전북 남원과 전주에서 김정희의 서예작품을 나무에 새기고 탑본을 만들거나, 모사하고 표구했다. 허련의 이러한 작업은 일차적으로 스승을 기리는 일이었지만, 제작된 김정희 글씨를 판매해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했다. 이는 또한 김정희의 가짜 서화작품을 만드는 위조자나 사기꾼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정희의 ‘반야심경 탑본첩’은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나온 파생상품으로 가짜다.

가짜로 태어났으면 가짜 작품

추사체를 배운 글씨는 많은 데 반해, 김정희의 난(蘭) 그림을 배운 그림은 적다. 김정희는 난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따라서 위조자들은 미술시장의 수요를 충족하려고, 김정희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운 조희룡(1789~ 1866)의 난 그림을 토대로 김정희의 가짜 난 그림을 위조했다.

김정희의 ‘향조암란’(그림8)은 바로 조희룡의 난 그림을 본받아 위조한 가짜다.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희룡의 ‘묵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조희룡의 ‘묵란’(그림9)과 비교하면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그림8’을 ‘완당평전2’와 ‘김정희 :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에서 “완당의 난초 그림 중 공간 구성의 멋이 최고조로 구사된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평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완당의 그림 중 정법(正法)이 아니라 파격의 묘가 근대적 세련미로 나타난 작품으로는 단연코 ‘향조암란’을 들 수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서 대각선으로 한 줄기 난엽이 삼전법으로 뻗어 내리고, 소략하게 잎 몇 가닥과 꽃 두어 송이만 그린 이 담묵의 난초 그림은 여백의 미가 일품인 데다, 오른쪽에 짙고 강한 금석기의 해서체로 쓴 화제가 그림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명품이다. 참으로 현대화가가 그린 작품보다도 더 현대적인 감각이 나타났다고 할 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조희룡이 김정희로부터 난치는 법을 배웠지만, 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김정희는 아들 김상우(1817~1884)에게 쓴 편지에서 예서 글씨 쓰듯 난을 치는 자신과 다르게 조희룡이 그림 그리듯 난을 그린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정희는 문인화가의 서법(書法)으로, 조희룡은 직업화가의 화법(畵法)으로 난을 그린 것이다.

서화작품의 진위는 ‘어떻게 태어났느냐’의 문제다. 가짜로 태어났으면 가짜고, 진짜로 태어났으면 진짜다. 전해오는 과정에서 작가가 바뀐 것은 원작가를 찾거나 창작한 때를 찾아 그 작가나 그때의 진짜로 감정한다. 작품의 진실은 작품에 있다. 감정가는 작품에 담긴 태생의 비밀을 밝힐 뿐이다.

유홍준 극찬 ‘향조암란’ 추사 작품 아니다

8 김정희의 가짜 ‘향조암란’. 9 조희룡의 ‘묵란’.





주간동아 897호 (p62~63)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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