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사로 본 법률상식

“애 낳겠다”가 공갈죄의 협박일까

혼외정사 낙태와 50억 원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애 낳겠다”가 공갈죄의 협박일까

“애 낳겠다”가 공갈죄의 협박일까
혼외정사 낙태 대가로 50억 원을 받았다면 공갈죄가 성립할까. 필자가 변호사이면서도 며칠 전 나온 기사 제목을 보고 판결 결과가 자못 궁금했다. 사건 담당 재판부의 부장판사와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의견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세대차이에 의한 이견이라는 평가도 있다. 결과는 1심과 항소심 모두 무죄였다.

사건은 수천억 원대 자산가와 내연관계였던 여자가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뒤 이를 숨기다가 수개월이 지나 고백하면서 시작됐다. 내연녀와 남자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이를 원치 않던 남자는 여자에게 낙태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대가로 금전적인 보상을 하겠다는 암시까지 했다.

남자의 낙태 종용에 화가 난 여자는 “그러면 100억 원을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했다. 실랑이 끝에 여자는 50억 원 정도면 낙태하겠다면서 남자의 제안을 수락했고, 이 돈을 두 차례에 걸쳐 전달받은 뒤 낙태했다. 이후 태도가 돌변한 남자는 50억 원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며 “임신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여자를 고소했고, 검찰이 공갈죄로 여성을 기소하면서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협박, 공갈이라는 말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형법상 협박죄는 사람을 협박하는 행위만으로 성립하는 범죄이고, 공갈죄는 협박을 수단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할 때 성립하는 재산범죄다. 공갈죄의 수단인 협박이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로 심하면 강도죄가 성립한다.

보통 공갈죄 재판에서는 협박 정도를 다툰다. 공갈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이 의사결정 자유를 제한 또는 방해받을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큼 협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의 쟁점은 특이하게도 협박 정도가 아니라 협박 내용이었다. 여자가 전달한 해악의 내용이 “낙태하겠다”는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하지 않고 애를 낳겠다”는 합법적인 내용인데, 이것이 공갈죄의 협박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재판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공갈죄 수단으로서 해악은 그 자체가 위법할 것을 요하는 게 아니다. 거래를 해지하겠다거나 형사고소를 하겠다는 내용은 합법적인 일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면 공갈죄의 협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례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유를 낙태를 하지 않겠다는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에 근거를 둔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했을 뿐, 낙태를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또 여자가 원하는 것이 낙태불가라는 합법적 상황인 데 반해, 오히려 남자는 이러한 합법적 행위를 두려워하면서 불법적 행위를 요구했다는 것인데, 불법을 바라던 남자의 의사를 공갈죄의 보호객체로 보호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사 내용 가운데 유무죄의 판단을 두고 세대차이가 반영됐다는 취지의 내용이 이채롭다. 젊은 배석판사들은 여자의 무죄를 주장한 데 반해, 부장판사를 비롯한 장년층 판사들은 남자가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서 혼외정사로 인한 임신 사실을 통보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무죄 선고에 신중했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 세대차이가 반영됐는지 선뜻 이해되지는 않지만, 낙태를 거부하는 행위를 옹호하고 혼외정사로 임신한 자식을 낙태하려는 태도를 탓하는 정도가 젊은 세대일수록 강하다는 의미라면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주간동아 2013.07.22 897호 (p76~76)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1

제 1241호

2020.05.29

정대협 박물관 개관 당시 5억 원 행방 묘연, 윤미향은 그 무렵 아파트 현찰 매입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