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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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디 @오메가

제6화 시리우스 좌의 노인

  • 입력2013-07-08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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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늘 그렇듯 주판수는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카페 외형은 마치 클래식 자동차 같았다. 들어서자 노신사가 고객을 맞았다. 흰머리에 하얀 구레나룻. 그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어서 오십시오.”

    판수는 출입구가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흰머리의 노신사와는 대조적으로 카페 안은 자유분방한 젊은 남녀가 대부분이었다. 판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정확하게 여섯 시 반. 티셔츠 차림의 사내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판수는 그를 살폈다. 티셔츠 가슴에 산악자전거 선수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판수는 그가 그 괴짜임을 직감했지만 아는 척하는 대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판수 앞에서 뚝 그쳤다.

    “오토바이맨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판수는 그를 바라보았다.

    “주판숩니다.”

    일어서서 마주 보니 그는 처음 본 얼굴이 아니었다. 눈빛이 마주쳤다. 둘의 뇌파 회로는 동시에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너 철방이 아냐?”

    “어, 판수 형?”

    밤늦은 귀갓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으슥한 곳, 한 아이가 또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아이는 철방이었다. 그때도 똑같은 말이 오갔었다.

    “너 철방이 아냐?”

    “어, 판수 형?”

    철방은 PC방에서 만난 동네 후배로 게임 마니아였다. 어른들 눈에는 게임 중독자였지만 아이들 사이에선 날리던 게이머였다. 게임에서 딴 사이버머니 때문에 벌어진 기철방 습격 사건. 판수도 그날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하는 일이 고민해결사라고?”

    “형도 고민 있으면 말해봐! 꿈 한 방이면 해결이야!”

    다림은 철방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전화했어? 기다릴게’라고 최대한 짧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턱을 괸 채 맞은편 선반을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산 자전거 안전모 두 개가 보였다. 맹연습을 하면 될까. 다림은 철방과 나란히 산등성이 위에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철방과 함께라면 산등성이 질주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다림은 일어나 철방의 안전모를 쓰다듬어보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철방이니?”

    “아냐, 언니. 보라예요. 철방 오빠 생각하고 있었구나?”

    “웬일이야?”

    “남남북녀가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남남북녀의 사랑? 그게 무슨 말이야?”

    “개성공단 입주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물어봐서요. 한동안 연락도 없던 놈이 느닷없이 그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

    다림의 기자 본능이 꿈틀거렸다. 전화기를 고쳐 잡고 펜을 집어 들었다.

    “그 회사 이름이 뭔데?”

    “회사 이름? 그런 건 몰라요. 그 친구 개성공단 가동이 장기간 중단되면 중국에 가서 일할 건가 봐요. 가기 전에 보기로 했어요.”

    다림은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사실이라면 특종이다. 다림은 스마트폰을 켜고 그 속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철방이 다림을 향해 웃고 있었다. 다림은 눈을 감고 기를 모아 스마트폰을 향해 쏘았다.

    “철방한테서 전화가 와라, 뚝딱!”

    주문이 통했는지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철방한테서.

    철방은 이어폰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우스를 조작하여 병실이 보이는 작은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병실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는 흰머리칼의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전화를 기다리는 듯 한 손에 스마트폰을 꼭 잡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창백한 손이 부르르 떨렸다.

    “여보세요.”

    “….”

    “아, 네. 준비됐습니다. 알겠습니다.”

    환자는 스마트폰을 머리 위에 놓은 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전화를 끊은 철방은 모니터를 보며 환자가 잠들기를 기다린다. 시연을 끝낸 다림의 말이 철방의 귓전을 스친다.

    “사람 하나 나면 별 하나 나고… 사람 하나 잠들면 별 하나 잠들고…. 그렇구나.”

    어디선가 잠으로 이끄는 아주 낮은 음성이 환자에게로 흘러간다. 이어 그 음성은 꿈을 꿀 수 있는 수면 상태가 됐음을 철방에게 알린다. 철방은 조심스레 환자의 상상으로 꿈을 실어 보낸다.

    환자는 암흑의 한가운데에 선다. 아득히 먼 곳에서 별 하나가 반짝인다. 노인은 밤하늘을 날아 별과 하나가 된다. 작은 점에서 시작한 별은 6등성에서 1등성으로 밝기를 더한다. 수많은 별 가운데 시리우스(Sirius·천랑성)가 돼 빛을 뿜는다.

    “내 별이 천랑성이었구나.” 별이 된 노인은 중얼거린다.

    암흑의 공간에 또 다른 별이 시리우스와 같은 궤도로 공전한다. 노인은 그 희미한 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디선가 장엄한 소리가 들린다.

    보이는 건 너와 쌍둥이별이다. 사람은 늘 자신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지. 뿌리치려 해도 뿌리칠 수 없는 숙명. 그게 삶에 담긴 네 죽음의 모습이란다.

    시리우스가 밝기를 더하더니 백색의 발광체로 변한다. 어떤 사물이라도 꿰뚫을 수 있는 밝기로 밀도를 더한다. 드디어 밝음이 극한으로 치달아 수억 개 파편을 만들며 밤하늘에 수를 놓는다. 하늘에 별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땅 위의 사람들은 별을 보고 환호한다. 한 소년의 모습도 보인다. 노인의 어릴 적 모습이다.

    철방은 모니터로 환자의 수면 상태를 관찰한다. 환자는 깊이 잠들어 있다. 철방은 다시 꿈을 실어 보낸다.

    소년은 도화지에 엎드려 별을 그린다. 한참을 그린 후 일어나 도화지를 살핀다. 만족스러운 듯 박수치며 친구를 향해 소리친다.

    “별 그림 다 그렸어. 네가 말한 대로 하면 별이 된댔지?”

    소년은 신발을 벗고 도화지의 별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소년은 그 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별은 형형색색 꽃궁전에 소년을 내려놓는다.

    환자는 몸을 뒤척인다.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깊은 숨을 쉬며 꿈속을 달린다. 달려보니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 모래바람이 거세다. 바람을 지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소년은 청년이 된다.

    청년은 사막을 지나 숲길에 접어든다. 길은 꽃길이고 숲에는 맛있는 열매가 즐비하지만 맹수도 우글거린다. 청년은 때로는 맹수와 사투를 벌이고, 때로는 아름다움에 취한 채 숲길을 지난다. 청년은 장년이 되고, 노년에 이른다.

    노인은 숲길 끝자락에 선다. 걸어온 길은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앞은 수억 길 낭떠러지다. 노인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보니 별이 되어 있다. 노인이 별이고 별이 노인이다. 그 느낌이 전해진 바로 그 순간 별이 불타오른다. 노인도 별과 함께 산화한다.

    한여름 밤하늘의 별을 헤는 단란한 세 식구가 보인다. 꼬마아이가 별똥별이 되어 또 다른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별 노인을 지켜본다.

    “엄마, 별은 왜 떨어지는 거야?”

    “응, 옛날에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어. 사람 하나 나면 별 하나 나고, 사람 하나 가면 별 하나 떨어지고…. 한 사람이 가나봐.”

    “어디로?”

    “하늘나라로. 저 별 보이지? 저 별에 서면 또 다른 별이 보여. 한 사람이 가면 별이 되어 저렇게 다른 별로 날아가는 거란다.”

    철방은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 보니 딴 세상 같다. 창문을 열고 동쪽 하늘을 본다. 샛별이 반짝이고 있다. 문자메시지 도착 신호가 요란하다. 살펴보니 스마트폰을 타고 유령들이 와글거린다.

    “난 아직 그날을 잊지 않았다. 많이 연마했거든. 결투를 신청한다. 20년 만의 대결,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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