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조심해, 당신도 감시당하고 있어

조의석·김병서 감독의 ‘감시자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07-08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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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해, 당신도 감시당하고 있어
    만일 누군가가 당신의 오늘 행적을 조사한다고 해보자. 교통카드는 출근길에서부터 시작해 퇴근을 거쳐 잠자리에 들기까지 당신의 오늘 동선을 낱낱이 알려줄 것이다. 신용카드 거래명세는 오늘 점심 메뉴와 대형마트 구매물품까지 한눈에 보여준다. 컴퓨터 로그인 기록과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는 당신 근무지와 업무 내용, 개인적 관심사까지 고스란히 노출할 것이다.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 만난 사람도 숨길 수 없다. 당신 동선을 따라 해당 지역 지하철역 혹은 건물, 거리의 폐쇄회로(CC)TV와 근처 차량의 블랙박스를 조사하면 당신과 동반인의 얼굴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 말이다.

    개인을 감시하는 ‘천 개의 눈’, 바야흐로 패놉티콘(panopticon) 세상이다. 패놉티콘은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이다. 높이 솟은 가운데 감시탑 주위로 둥그렇게 죄수들 방을 배치한 구조의 감금시설이다. 감시자는 피감시자를 볼 수 있지만, 피감시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벤담이 고안한 건축설계를 권력 그물망과 정보기술로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현대 사회에 비유했다. 신용카드와 CCTV, 휴대전화, 컴퓨터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 사회의 개인은 각종 첨단기기가 이루는 거대 네트워크에서 한 교차점에 불과하다. 네트워크를 관할하는 ‘빅브라더’에게 존재를 숨길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도 거리에만 나가도 수십 수만 개 눈이 있지 않은가. 곳곳에 자리한 CCTV와 블랙박스, 그리고 각 개인의 휴대전화 카메라 말이다.

    ‘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세상

    이러한 패놉티콘 시대는 첩보 액션스릴러 영화에 상상력을 더하고 장르 자체를 진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영화가 국가로부터 버려진 첩보요원 제이슨 본이 주인공인 ‘본 시리즈’다.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진 시리즈는 수십 수백 개 모니터로 둘러싸인 정보국 지휘본부와 빼곡히 들어찬 컴퓨터 앞에 앉은 요원들을 첩보영화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만들어냈다. 감시당하는 자는 세계 어디에 있든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영상과 기록으로 포착된다. 지휘본부 컴퓨터가 위성을 통해 세계 각지 CCTV에 접속하고, 이를 통해 피감시자의 모습을 현장중계하듯 지켜보는 것은 이제 액션영화 장르에선 상식에 가까운 장면이 됐다.

    ‘본 시리즈’는 전직 특수요원이 국가 비밀 정보조직 감시망을 뚫고 도피한 후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활약을 담았다. 이 작품이 감시당하는 자의 도주극이라면, 한국 영화 ‘감시자들’(감독 조의석, 김병서)은 이를 뒤집은 작품일 것이다. ‘감시자들’은 감시하는 자들, 곧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추적극이다. 량자후이(梁家輝)와 런더화(任達華) 주연의 2007년 작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했다. 물론 원작보다 한층 화려해지고 규모도 커졌다.



    동물적인 직감과 본능으로 범죄를 쫓는 감시 전문가 황 반장(설경구 분)이 이끄는 감시반에 신참 여경 하윤주(한효주 분)가 합류한다. 잠복현장에선 승합차에 몸을 숨긴 황 반장이 지휘본부와 수시로 연락하며 마치 장기판의 말을 다루듯 네댓 명으로 이뤄진 현장 팀원의 배치와 동선을 통제하고 지시한다. 현장 팀원들은 잠복 지역에서 행인이나 택시운전사, 가게 주인 등으로 위장해 ‘사냥감’을 쫓는다. 지휘본부엔 늘 그렇듯 각 지역 CCTV를 볼 수 있는 모니터 수십 대와 각종 정보 및 기록을 검색, 조회할 수 있는 컴퓨터 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감시반의 철칙은 ‘모든 임무는 감시에서 시작해 감시로 끝난다’ ‘허가된 임무 외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노출된 요원은 즉시 임무에서 제외된다’로 이뤄졌다. 하윤주는 아직 감시반이 아닌 경찰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하고, 곧잘 연민이나 정의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에 빠지는 신참이지만 기억력이 뛰어나고 작전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하다.

    조심해, 당신도 감시당하고 있어
    ‘불법사찰’과 ‘감시’의 차이

    그런데 이들의 감시를 무력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복면을 한 무장강도가 한 저축은행을 3분 만에 감쪽같이 턴 것. 경찰에 비상이 걸리고, 황 반장은 CCTV에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확인해 감시를 시작한다. 용의자는 한 조직의 끄나풀로, 감시반은 그를 이용해 범죄단 배후 인물을 쫓지만 쉽지 않다. 감시 와중에 이를 비웃듯 범죄단은 증거거래소에 침투해 정보를 조작하는 대담한 범행까지 저지른다.

    영화는 ‘진범’ 정체를 두고 관객과 수 싸움을 벌이는 스릴러물이 아니다. 영화 전면에서 범인을 공개하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대결에 초점을 맞췄다. 감시반이 상대하는 범죄단은 리더인 제임스(정우성 분)에 의해 한 치 오차도 없이 주도면밀하게 강도, 절취, 살인 등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종의 청부조직이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감시망을 뚫고 어떻게 범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경찰 감시반에 황 반장이 있다면, 범죄단에는 제임스가 있다. 제임스는 작전이 실행되면 범행 장소 주변을 완벽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빌딩 옥상에 진을 치고, 부하들과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범행을 지휘한다. 결국 ‘천 개의 눈’으로 둘러싸인 패놉티콘에서 완벽하게 모습을 숨겨야 하는 두 개의 그림자가 대결을 벌이는 영화가 ‘감시자들’이라 할 것이다.

    감시반과 제임스 조직이 서로를 감시하며 작전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비교적 치밀하게 연출돼 긴장감을 자아내고, 두 ‘그림자’가 결국 모습을 드러내 추적극을 펼치는 후반부의 호흡도 좋다. 배우로서도, 극중 배역에서도 베테랑인 설경구와 ‘제이슨 본’의 악역 버전처럼 용의주도하고 냉철한 캐릭터를 연기한 정우성은 여전히 멋지다. 그사이에서 영화는 한 신참 여경의 성장드라마로 중심을 잡는다. 젊은 배우임에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톤을 잡아가는 한효주는 매력적이다. 액션영화로서 상당한 쾌감을 가진 영화다.

    다만 뒤끝이 아주 개운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극중 황 반장의 대사에서도 드러나듯, 감시반 임무가 ‘불법사찰’과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 당신이 감시반의 잘못된 타깃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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