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4

2013.07.01

아홉 마디 @오메가

제5화 해커들의 전쟁

  • 입력2013-07-01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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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 스포츠카가 거리를 질주한다. 주판수는 호기심 반, 적개심 반으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전화 속 인물은 괴짜였다. 성함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걸작이었다.

    “오토바이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다시 물었으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판수는 고객 분석 작업 중이었다. 생각은 6·25전쟁 관련 사진을 구해달라는 한 고객에게 머물러 있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참전군인이라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늘 함께한 그 사람이 보고 싶다고 했다.

    고객 명단에 방미의 이름도 보였다. 한방미, 불현듯 추억 하나가 비집고 나오려는데 컴퓨터 모니터에 자막이 떴다.

    ‘인터넷을 차단하세요. 컴퓨터에 외부인이 침투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귀하의 정보가 상대에게 다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판수는 그제야 인터넷을 차단했다. 상대가 판수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뵙고 싶습니다.’

    ‘혹시, 사이버 경찰인가요?’

    ‘아닙니다. 오토바이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철방의 당초 각본은 그게 아니었다. 다림과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거였다. 그러나 고객의 문자메시지 때문에 멈춰야 했다.

    ‘삶은 죽음으로 완성될 수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슬퍼하나요? 기쁨으로 맞아야 할 일인데….’

    철방은 벌써 여러 차례 수정을 했다. 꿈을 보내려 하면 불쑥 이런 문자메시지가 와 제작한 꿈의 스토리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손질을 위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자 센서가 철방의 표정을 살핀 후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표정 좋지만 안색에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습니다.”

    “좋은데 왜?”

    “행복지수는 90점입니다.”

    “하긴 네 말이 맞네.”

    철방은 안전모를 로봇에게 내민다. 로봇이 선반 위에 안전모를 놓고 돌아온다. 철방은 소파에 몸을 기댄다. 다림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번돌, 벽에다 다림이 얼굴 쏴봐!”

    번돌은 로봇 이름이다. 괘씸해서 평생 종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 옛날 그 녀석의 이름을 땄다.

    “다림의 사진은 서른두 장이 있습니다. 어떤 사진을 쏠까요?”

    “다 쏴봐! 칠 초 간격으로!”

    벽면에 다림의 얼굴이 뜬다. 웃는 얼굴, 토라진 얼굴, 그리고 요염한 얼굴이 지나간다.

    “멈춰!”

    사진 속 다림은 턱을 괴고 있다. 눈은 누군가를 응시한다. 철방은 일어선다. 벽면으로 다가가 사진 속 다림의 볼을 어루만진다.

    “다림아, 우린 삶을 말하는데 그 고객은 삶의 끝자락을 말해달라네.”

    철방은 작업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죽음이란 단어 위에 삶을 덧칠하며 수정을 가한다.

    멋진 녀석! 오토바이를 탄 철방의 뒷모습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과 몇 시간 전이다. 다림은 철방이 건넨 리모컨을 눌렀다. 스크린에 산등성이마다 촘촘히 들어선 산악자전거 선수들의 행렬이 보였다.

    “저기에서 자전거를 타?”

    철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신호와 함께 한 선수가 산등성이를 타고 질주한다. 절벽 위 바위 길을 나는 듯이 지난다. 방향을 틀어 산등성이 사이를 건넌다. 다시 하강하며 전력 질주. 이어 공중으로 한 바퀴 돌아 건너편 산등성이에 착지한다. 다시 속도를 낸 후 착지해 자전거를 멈춘다. 출발선에서 선수 한 명이 출발신호를 기다린다. 그도 나는 듯이 하강한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쥔다.

    “선수들에게 물어봤어, 무섭지 않느냐고?”

    다림이 철방을 바라본다. 바로 그때다. 아슬아슬 질주하던 한 선수가 계곡으로 떨어진다. 모두 호흡을 멈춘다. 선수는 바위 끝에 매달렸고, 자전거는 바닥으로 하강한다. 철방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대답이 뭔지 알아? 삶과 죽음은 하나다. 순간의 벽을 넘으면 죽음이고, 버티면 삶이라고. 경계가 없다나….”

    경기를 끝낸 마니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형으로 둘러서서 맥주를 들고 다 함께 치얼스! 그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돼 퍼져나간다. 그 원형 가운데 다림의 얼굴이 나타난다. 철방이 마주 선다. 모니터 속 철방이 다림에게 말한다.

    “다림아, 함께 가지 않을래? 시월 미국에서 열리는 산악자전거대회에.”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모두 시선을 다림에게 돌린다. 철방이 일어나 다림을 향해 양팔을 내민다. 다림도 일어서 철방에게로 걸어간다. 다림은 철방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춘다.

    “그래, 그렇게 하자.”

    철방이 다림을 안고 한 바퀴 돌자 수일, 보라, 그리고 친구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수일은 철방 앞에선 늘 기가 죽는다. 넌 사수고 난 조수야. 그게 철방의 말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은 게 수일이다. 철방과 다림이 잘되는 것 같아 좋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수일은 철방의 사무실을 나와 춘천으로 길을 잡았다. 철방의 볼에 입을 맞추던 다림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이른 오후라 올림픽대로가 한산했다. 수일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붕, 하고 자동차가 속도를 내려는 순간 스마트폰에 적색불이 켜졌다.

    ‘해커 침투!’

    수일은 운전을 멈춘 뒤 스마트폰으로 사무실 컴퓨터에 연결했다. 해커가 방화벽을 뚫고 있다. 수일은 고급 정보가 있는 것처럼 꾸민 방으로 해커를 유인했으나 걸려들지 않았다. 상대는 은밀한 곳에 숨겨둔 비밀 정보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프로였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수일은 한편에서는 맞장을 뜨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 정보망에 역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녀석의 신원을 파악해두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철방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철방은 꿈을 수정한 후 검토를 마쳤다. 죽음 위에 삶을 덧칠하니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꿈 시연을 위해 다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철방의 모니터에 적색불이 나타났다. 모니터 한쪽 귀퉁이에 수일의 얼굴이 보였다.

    “철방아, 지원 부탁해.”

    “알았어.”

    철방이 수일의 컴퓨터에 연결하자 결투 장면이 보였다. 상대는 공격, 수일은 방어였다. 2차 방어선도 유인책이었다. 비밀해제를 미끼로 던져 상대가 물면 사로잡는 방식이었다. 수일이 미끼를 던지자 상대는 공격을 멈췄다. 수일이 공격을 시도하자 상대는 후퇴를 택했다.

    “2차 방어선이 뚫린 것과 마찬가지야.”

    철방은 역해킹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해킹 경유지에 닿았다. 소규모 홈쇼핑회사의 컴퓨터였다. 알파투오메가? 중얼거리며 철방은 수일에게 문자메시지를 전했다.

    ‘경유지는 홈쇼핑회사야.’

    철방은 알파투오메가에도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알았다. 이 녀석 누군지 역추적해서 잡아 봐!’

    철방은 경유지 컴퓨터에 접속 중인 IP 주소로 상대를 검색했다. 드디어 녀석을 잡아 역해킹하려는 순간 철방의 모니터와 수일의 스마트폰에 동시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잠깐 장난을 쳐봤습니다. 너무 아까운 아이템이더군요. 지하철에서 시연한 ‘좀비 잡는 좀비’ 저작권을 우리 게임회사에 판매하십시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해커는 연락처를 남기고 빠져나갔다. 수일과 철방은 동시에 전화를 들었다. 철방아, 수일아,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야, 장난 놀다 대박 났네!”

    뜻밖의 횡재에 즐거워하는데 알람이 울렸다. 알파투오메가? 참, 그랬었지. 철방은 현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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