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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소년, 마녀와 사랑에 빠지다

리처드 라그라브네스 감독의 ‘뷰티풀 크리처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소년, 마녀와 사랑에 빠지다

소년, 마녀와 사랑에 빠지다
영화와 드라마가 괴물과 사랑에 빠졌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이팔청춘 연인들은 인간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 소녀가 흡혈귀를 연모하고, 좀비와 연애하며, 늑대 인간의 순정을 받는다. 소년은 외계인과 사귀고, 마녀와의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할리우드 영화부터 미국과 영국 TV 드라마, 그리고 국내 대중문화까지 인간과 이종(異種) 간 사랑을 다룬 연애담이 차고 넘친다. 전 세계적 현상이다. 국내에선 외로운 소녀와 변종 늑대 소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 ‘늑대소년’이 지난해 개봉해 타이틀롤을 맡은 송중기를 스타덤에 올리더니, 4월 8일엔 지리산 수호신 아들인 반인반수 청년과 소녀의 사랑을 다룬 MBC 드라마 ‘구가의 서’가 방송을 시작했다. 외화로는 뱀파이어 청년과 늑대 인간, 인간 여성의 삼각관계를 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흥행 이후 최근엔 좀비와의 사랑을 그린 ‘웜바디스’가 뜻밖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좀비, 뱀파이어, 외계인, 늑대 인간, 반인반수는 인간 처지에서 보면 이종이자, 타자(他者)이며, 괴물이다. 이들과의 연애담은 전에 없던 새로운 타자를 극에 끌어들임으로써 기존의 가족, 멜로, 로맨스 등의 장르를 혁신하고자 하는 대중문화의 서사 전략이다. 또 경제불황과 환경재난, 세대 갈등, 탈지역화 등 사회 변화로 인한 현대인의 불안과 위기 의식, 무의식적 소망의 반영으로도 해석된다.

‘트와일라잇’ 인기에 무임승차

영생 능력을 가진 강력하고 섹시한 뱀파이어와 힘없고 추악한 외모로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 실패한 과학실험이나 잘못된 이종교배의 결과물로서의 돌연변이 반인반수 등 괴물들은 때로는 단절과 소외의 골이 깊어지는 계급, 인종, 세대를 비유하기도 하고 위험 사회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기력한 현실에 대한 절망, 오염 및 재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도 보여준다. 이를 비튼 가볍고 낭만적이며 환상적인 연애담은 대중문화가 취하는 자가 치유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새 영화 ‘뷰티풀 크리처스’는 전 세계적 신드롬을 낳았던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인기에 ‘무임승차’한 낌새가 역력한 작품이지만, ‘트와일라잇’과는 전혀 다른 정서를 보여주는 하이틴 로맨스물이다. ‘트와일라잇’에선 소녀가 뱀파이어 청년을 사랑했지만, ‘뷰티풀 크리처스’에선 소년이 초월적 능력을 소유한 ‘마녀’와 열애에 빠진다.

여고생 리나(앨리스 잉글러르트 분)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개틀린에 있는 한 학교로 전학을 온다. 고교졸업반인 에단(올든 이렌리치 분)은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전학생 리나에게 첫눈에 빠진다. 평소 꿈에서 느꼈던 운명이 리나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리나는 남북전쟁 당시 개틀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대를 이어 저주의 피를 갖고 있는 몸. 곧 돌아올 16세 생일에 최강의 힘을 지닌 어둠의 마녀가 될 운명이다. 베일에 휩싸인 괴팍한 삼촌 메이컨(제러미 아이언스 분)과 비밀을 안고 사라진 에단의 어머니, 악마의 혼령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리나의 어머니(에마 톰슨 분) 사이에서 리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비밀을 깨닫는다. 에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마녀의 운명을 깰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이었다. 과연 에단을 죽이고 ‘착한 마녀’가 될 것인가, 운명의 연인인 에단을 살리고 어둠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소년, 마녀와 사랑에 빠지다
사랑의 완성에 걸림돌은 없어

여고생의 전학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트와일라잇’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졌지만, ‘뷰티풀 크리처스’는 ‘트와일라잇’과는 달리 성적 금기에 대한 강박증을 벗어던졌으며, 여성을 괴력의 소유자이자 이야기의 주체이고 능동적 존재로 묘사한다. ‘트와일라잇’이 갖지 못한 유머와 인용도 넘쳐난다.

극중 무대인 개틀린은 ‘금서목록으로 가득한 종교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에단은 미국의 냉소적인 유머리스트이자 탁월한 사회파 소설가인 ‘제5도살장’의 커트 보니것의 작품을 끼고 살고, 여주인공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괴짜이자 악동이며 신랄한 시인이자 독일계 소설가인 찰스 부코프스키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외에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와 J.D. 샐린저, 잭 캐루악 등 수많은 작가와 작품이 인용된다. 영화 ‘타이타닉’을 언급하는 장면이나 “마녀들이 원래 워싱턴 D.C에 모여 있다가 가장 무서워하는 인간, 낸시 레이건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왔다”는 대사도 웃음을 자아낸다(한글 자막에는 낸시 레이건 대신 ‘대통령 영부인’으로 번역됐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귀족(영생 능력을 가진 특출한 뱀파이어 가문) 후손과 결혼함으로써 선민의 일원이 되는 평민 여성, 즉 ‘신데렐라’ 유형의 하이틴 로맨스물의 원형적 이야기를 답습했다. 그뿐 아니라 주인공 남녀에게 결혼 전까지 잠자리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혼전순결의 가치를 강조했고, 여성을 수동적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반여성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말하자면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보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하이틴 로맨스라면, ‘뷰티풀 크리처스’는 미국적 의미에서 상당히 리버럴한(자유주의적인) 정서의 청춘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유가 허용된다면 ‘트와일라잇’이 미국 보수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다면, ‘뷰티풀 크리처스’는 자유주의적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대중문화 인용과 패러디로 각광받았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슈렉’이 대표작)과 견줄 만하다.

그래도 역시 서구 모든 연애담의 원형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트와일라잇’도 ‘뷰티풀 크리처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 사랑을 이루는 데 신분, 가문, 인종, 민족, 종교는 웬만한 사회에서 대중이 납득할 만한 강력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의 장벽조차 무너져 일부 국가와 지역에선 동성결혼까지 허용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고안한 것이 ‘괴물’과의 사랑 아닐까.



주간동아 2013.04.29 885호 (p68~69)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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