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바보야, 부모님도 사랑을 나누거든

왜곡된 성윤리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입력2013-04-29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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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야, 부모님도 사랑을 나누거든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상담실 안에서 디지털 탁상시계의 숫자만이 고양이 눈처럼 빛을 냈다. 오후 1시 30분이었다. 30분 뒤면 앞머리를 길게 내려 눈을 가리고, 손가락 마디를 신경질적으로 꺾는 이씨가 올 터였다. 상담이 중반을 넘어섰지만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비가 더 퍼부으면 이씨와 나 사이를 단단히 가로막은 벽이 깨져 무너지지 않을까.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라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이씨에게 말했다. 정작 그 말이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자 쓴웃음이 났다.

    37세 미혼남성인 이성근 씨(가명)는 5개월 전 갑자기 발기불능을 경험했다. 복용하는 약도 없었고, 신체적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3년간 사귄 약혼녀와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이씨는 고민 끝에 상담을 받기로 했다. 은행원인 이씨는 내가 묻지 않으면 스스로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다. 5개월 전 무슨 사건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이씨는 천천히 도리질을 칠 뿐이었다. 약혼녀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는 사이가 좋다고 대답하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이씨는 5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일찍 결혼해 잘산다고 했다. 이씨는 결혼하면 분가할 계획이었다. 딱히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한 번은 이씨에게 약혼녀와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아담한 체구의 약혼녀는 가슴이 깊이 파이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왔다. 이씨를 내보내자마자 그녀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빠르게 말했다.

    “선생님, 이유가 뭐예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잘하다가 갑자기 왜? 오빠가 성욕이 얼마나 왕성했는데요. 저를 만족시켜줄 줄도 알았고요.”

    약혼녀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상담시간이 끝날 무렵 이씨가 곧 나을 수 있는지, 자기가 도울 일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잘하고 있으니 계속 지켜봐달라고, 그 문제를 너무 도드라지게 느끼지 않게 조심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대 男, 어머니 꿈꾸고 발기불능

    이씨가 문을 열고 눅눅한 비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이씨는 인사를 건네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의자 위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입술은 꿈틀대는데, 말은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몸을 의자에 깊숙이 파묻었다. 간간이 이씨의 손가락 꺾는 소리가 들릴 뿐 둘 사이엔 침묵만 흘렀다. 그렇게 아무 말이 없는 동안 이씨는 점점 빠르게 손가락을 꺾어댔다. 침묵한 지 30분이 돼갈 쯤, 이씨와 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우리는 말을 하다 말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씨가 소리를 내어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웃음이 그치자 이씨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어머니는 말이 없으신 분이었어요. 지난 며칠 동안 어머니가 꿈에 자꾸 나와요. 아무 말씀도 없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의자에 앉아 계세요. 저도 옆에 앉아 있고요. 그러다 가끔씩 방 쪽을 바라다보셨어요. 저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 안절부절못했고요. 한 번은 이사를 간 듯해요. 저는 다시 꼬마가 돼 어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집 안에 풀지 않은 짐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고요. 저는 짐 박스 위에 낙서를 하고 있어요. 갑자기 탕탕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어머니가 방문에 널빤지를 대고 못질을 하는 거예요.”

    이씨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지친 얼굴이었다.

    “전에도 어머니 꿈을 꾼 적이 있나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어머니가 어느 문에 못질을 하고 계셨나요?”

    “안방인 것 같았어요.”

    “박스 위에 무슨 낙서를 했는지 기억나나요?”

    “음, 기억했는데 지금은 떠오르지 않네요. 참, 숫자였어요.”

    “어머님과 아버님은 사이가 어떠셨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옛날 분들이시니까.”

    이씨가 돌아가고 난 후 생각에 잠겼다. 문득 안방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쓰고 있다고 했다.

    ‘아, 아버지!’

    그때까지 왜 아버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까. 이씨의 아버지는 건장하고 나이보다 젊은 외모였다. 평생 목수 일을 해왔다는 그는 아들의 섬세한 손과는 대조적으로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베트남전쟁 참전 등 산전수전을 겪는 통에 늦게 결혼했다는 이씨 아버지는 72세라는 연세에도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겼다. 말도 거침없었다.

    “긍께 시방 그놈아 거시기가 안 선다는 거시여잉. 아배 안 닮고 뉘 닮아 그런당가?!”

    사귀는 분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쑥스러운 얼굴로 집에도 종종 놀러온다고 했다. 그러곤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시방이 봄인게, 그 일이 늦가을쯤일겨. 하루는 그 아짐이랑 내랑 방에 있을랑게 그놈아가 벌건 대낮에 들어온 거지라잉. 우리는 쪼매 거시기에 바빴고, 아짐이가 징하게 소리를 내질러싸서 암 소리도 못 들었당게요. 그 싸가지 없는 놈이 인기척도 없이 쨍그랑 땡그랑 접시소리 깡통소리를 막 내서 알아부렀어. 워쩌것소? 옷도 안 입었겠다 나 죽었네 숨죽이고 있는데, 문 쾅 닫히는 소리가 났어잉. 그 싸가지 없는 놈이.”

    가차 없고 건장한 아버지가 아들을 욕하는 그 말이 왜 그리 쓸쓸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때가 몇 시쯤인지 기억하세요?”

    문득 짚이는 데가 있어 쓸쓸한 느낌을 털어내듯 물었다.

    “아짐이 하두 소리를 질러싸부러서 나가 시계를 봤는디 딱 2시 반이었어. 흐흐흐.”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섹스를 한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은 어머니에게도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아버지의 정사가 이뤄지는 안방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린 이씨를 대신해 못질하는 꿈을 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는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정사가 아들의 발기불능을 초래한 듯했다. 아버지의 정사를 우연히 목도한 충격은 무의식중에 ‘아버지 페니스=권위’를 이씨의 내면에 부활시켰고, 이것이 이씨의 심리적 남성을 위축해 신체적으로 발기불능을 일으킨 것으로 보였다.

    노인의 성 공론화 필요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그들은 섹스와 무관한 중성적 인격체로 인식된다. 어렸을 때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자식들은 부모의 성욕과 섹스를 부정하려 한다. 성에 대한 왜곡된 윤리의식과 잘못된 가치관이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성을 인정하고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 한국 사회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이씨의 발기불능에 대한 상담은 그때부터 진척을 보였음에도 처음 예상했던 기간을 넘겨 연장 상담을 해야 했다. 특히 이씨는 남성성이 강한 아버지를 둬 심리적 극복에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마지막 상담에 이르렀을 때 이씨의 발기불능은 정상으로 회복됐다. 약혼녀와 함께 온, 부쩍 밝아진 표정의 이씨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 싸가지 없는 놈’이라며 말끝을 흐리던 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상담을 마감할 시간이 돼서야 나는 맘에 담았던 말을 꺼냈다.

    “이번 상담을 통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섹스에서 쾌락을 누리는 보통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식으로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게 용돈 드리는 것보다 훨씬 큰 효도가 아닐까 해요.”

    이씨가 빙그레 웃고는 약혼녀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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