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유랑

  • 김성규

    입력2013-04-29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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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랑
    나, 걸었지

    모래 우에 발자국 남기며

    길은 멀고도 먼 바다

    목말라 퍼먹을게 없어 기억을 퍼먹으며

    뒤를 돌아보았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 부를까

    이미 지워진 발자국

    되돌아갈 수 없었지

    길 끝에는 새로운 길이 있다고

    부스러기처럼 씨앗처럼 모래 흩날리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

    이제 혼자 걷고 있었지

    깨어보니

    무언가 집에 놓고 왔을까

    이미 지워진 발자국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으며

    목말라 퍼먹을게 없어 기억을 퍼먹으며

    길 끝에 또다른 길이 있을까

    바다 위에 며칠 떠 있으면 기억밖에 먹을 게 없다. 모래사막에 있어도 그러하리라. 인생 길은 포장도로가 아니라, 걸어가야만 만들어지는 발자국이다. 시는 사막 위에 찍어놓은 발자국이다. 그 순간 뒤돌아보면 보이는 절대고독. 사는 게 그런 것인가 싶다. ─ 원재훈 시인



    詩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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