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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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아네모네가 너였구나

꿩의바람꽃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4-15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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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백의 아네모네가 너였구나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온 대지가 촉촉하게 충분히 젖었습니다. 주말에 한식이 있어 성묘를 계획했던 분은 다소 낭패스러웠겠지만, 주말에 내린 비로 얼마나 많은 초록 생명이 힘을 얻었을까요! 사실 이때가 산불 염려도 가장 큰 시기여서 애써 가꾼 숲이 한순간에 타버릴까 조마조마했던 산림 관계자들이 한숨 돌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봄꽃은 활짝활짝, 새싹은 쑥쑥 자라 올라 연둣빛 싱그러운 봄 숲을 만들겠지요.

    복수초, 제비꽃, 노루귀처럼 부지런한 봄꽃이 봄소식을 알린 지도 여러 날 지났지만 사실 숲에서는 봄이 더디 오지요. 깊고 높은 산에서는 더더욱 늦는답니다. 이제 봄비도 충분히 내렸으니 따사로운 봄햇살이 며칠 지속되고 나면 깊은 산에서도 이런저런 꽃소식을 기다려볼 만합니다. 특히 눈처럼 깨끗한 흰 꽃이 가지가지 피는 바람꽃이 가장 기다려지는 주인공이지요. 꽃대가 하나씩 올라오는 홀아비바람꽃, 똑같이 올라오는 두 개의 꽃자루 끝에 피는 쌍둥이바람꽃, 옆에서 서로서로 외치듯 피어나는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변산바람꽃 등 숱한 바람꽃 형제가 대부분 봄에 피지만 정작 그냥 바람꽃은 한여름에 핀답니다.

    꿩의바람꽃은 그중에서 비교적 흔하고, 꽃도 큼직하며, 잎도 귀여워 눈에 잘 띄는 종류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볕이 드는 낙엽수 밑을 눈여겨보세요(아직 나뭇가지엔 잎이 트기 전입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제법 산이 높고 좋은 숲의 구성을 갖춘 곳이어야 한답니다.

    꿩의바람꽃은 바람꽃속, 정확한 학명으로는 아네모네(Anemone)속입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니 우리말 이름인 바람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실바람에도 살랑일 만큼 가녀립니다. 어떻게 저리 가녀린 줄기에 꽃이 달릴까 싶지만 그래도 언 땅을 뚫고 나와 씩씩하게 꽃을 피웁니다. 화피(花被·꽃잎과 꽃받침이 구분되지 않아 그리 부릅니다)가 8장에서 13장까지 달리는데 참으로 깨끗한 흰색으로 곱답니다. 꽃 밑에 잎처럼 달리는 것은 잎이 아니라 총포라고 하지요.

    잎은 꽃이 질 즈음 세 갈래씩 두 번 갈라지지만 그 끝이 둥글둥글해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이 잎이 양분을 열심히 만들어 땅속줄기에 저장하는데, 다른 식물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다투어 나올 즈음 지상에서 사라지지요. 한방에선 죽절향부(竹節香附)라는 생약 이름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른 봄 숲에 피어나는 모습만으로도 꿩의바람꽃은 아름답습니다. 혼자 자라지 않고, 키가 고만고만한 작은 꽃들과 무리지어 피어나 고산에 봄 꽃밭을 만들지요. 빨리 보고 싶네요.

    순백의 아네모네가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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