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8

2013.03.11

이 바보야, 삶을 즐겨봐!

독일 쾰른 카니발 200년 역사 자랑…겨울 100일간 축제 통해 에너지 충전

  • 박성윤 브레멘 통신원 bijoumay@hanmail.net

    입력2013-03-11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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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바보야, 삶을 즐겨봐!

    쾰른 카니발의 대미를 장식한 ‘로젠몬타크 시가행진’.

    전 세계 카니발의 양대 산맥인 ‘쾰른 카니발’이 올해도 성황리에 끝났다. 특히 ‘로젠몬타크(장미의 월요일) 시가행진’은 100만여 명에게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카니발 대미를 장식했다. 200년 역사를 가진 이 시가행진은 2월 11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30분(현지시간)까지 7시간 동안 7.5km 구간을 통과하며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이날 행사에는 카니발 단체 150여 개와 1만여 명, 차량 100여 대도 참가했다. 구경꾼들, 아니 카니발 용어로는 예케(Jecke)라고 부르는 ‘바보’ 백성에게 던져줄 선물로 사탕과 캐러멜 150t, 사각 초콜릿 70만 개, 프랄린 초콜릿 20만 상자, 장미꽃 30만 송이가 준비돼 100만여 명의 주머니를 풍성하게 했다.

    100만 명 몰린 장미의 월요일 시가행진

    이날 시가행진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어미돼지로 변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연방총리였다. 메르켈은 이미 몇 년 전 발가벗은 모습으로 묘사돼 수난을 당한 바 있다. 올해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옷을 입은 새끼돼지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어미돼지 모습으로 등장했다. 메르켈 이름 첫 글자만 살짝 바꿔 ‘새끼돼지’라는 뜻의 ‘페르켈’이라고 제목을 단 것도 기발했다. 쾰른, 뒤셀도르프, 마인츠로 대표되는 독일 라인 강 지역 카니발에서는 사회문제와 지도자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즐기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다. 하지만 자국 총리를 심하게 비하한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는 관람객에게 물었더니 “우리는 바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웃음)!”라고 대답했다. 그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시가행진을 시작했어도 쾰른 상징인 쾰른대성당 앞까지 행렬이 도착하기까지는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초보 참가자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거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독일식 뽕짝 노래에 가볍게 몸을 흔들며 즐기는 반면, 이미 몇 번 참가해본 사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 중앙을 활보하면서 축제를 온몸으로 만끽한다. 영화 ‘스타워즈’ 속 등장인물로 변신한 남자는 원래 직업이 뭘까. 은행원? 우체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10대 소녀 몇몇은 얇은 타이즈 위에 야한 레이스 팬티를 맞춰 입고 춤을 춰 보는 사람 눈을 즐겁게 했다.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모두 긴장을 풀고 서로에게 관대해진다. 이도 저도 다 귀찮은 사람은 맥주를 원 없이 마신다. 그러나 맥주 나라 독일에서 월요일 아침부터 취해 있는 평범한 독인 사람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다. 술을 마시되 친한 친구나 가족 외에 타인에게 취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곳이 독일이기 때문이다.



    시가행진에서 선두는 카니발을 위해 결성돼 지금까지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근위병이다. 그 뒤로 다양한 단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몸을 흔든다. 사람들이 밑에서 “카멜레! 카멜레!”라고 외치면 마차나 차량에서 초콜릿과 사탕, 장미꽃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주우려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다. 공짜 초콜릿이나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아 재미있지만, 영하 날씨에 하루 종일 길가에 서 있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래서 맥줏집과 클럽 안이 꽉 차기 전 미리 자리를 잡으려고 장소를 옮기는 사람도 많다. 구경은 잠깐이면 충분한 듯했다. 카니발이 고작 이런 것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쾰른 시민들, 재미난 행사는 자기네끼리 벌써 다 마치고 이날 월요일 시가행진은 외부 방문객을 위한 행사였다. 11월 11일 11시 11분 시작해 약 100일간 이어지는 지역의 역사, 전통, 문화 잔치를 통틀어 카니발이라고 하는데, 쾰른 시민에게는 실내에서 열리는 오락공연 프로그램이 제일 중요하다. 쾰른 토박이가 즐기는 진짜 행사는 외부 방문객이 오기 전 모두 끝난다. 실내 카니발 프로그램으로는 캉캉과 합창단 공연, 밴드음악, 만담, 정치풍자 개그, 곡예쇼 등이 포함되는데, 대부분 쾰른 사투리로 진행돼 외부인은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이 바보야, 삶을 즐겨봐!

    ‘로젠몬타크 시가행진’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광대 복장을 한 시가행진팀, 어미돼지로 변한 메르켈 총리 조형물,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관광객(왼쪽부터).

    매년 ‘카니발 왕자’ 선발 축제 주도

    카니발이 열리는 100여 일 동안 쾰른 시민의 정신적 지주는 ‘카니발 왕자’다. 매해 초가을 쾰른카니발운영위원회는 카니발 단체 정회원 가운데 한 명을 카니발 왕자로 선발한다. 카니발 왕자는 함께 선발된 농민 및 여성 대표와 ‘3인위원회’를 꾸려 공식 활동을 벌인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카니발 기간에 열리는 400여 실내 행사에 참가해 자리를 빛내는 것이다. 400여 행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장애인, 노인, 고아를 위한 복지시설 후원이 목적이다. 쾰른 근교에 사는 50대 남성은 “가톨릭 교황, 독일연방 총리, 쾰른 카니발 왕자 이 셋 가운데 우리한테 최고 중요한 인물은 카니발 왕자”라고 말한다. 카니발 발전은 행사 질에 달렸다고 보는 카니발운영위원회는 연예인을 양성하는 3년제 교육과정까지 두고 있다.

    카니발은 라틴어로 ‘고기여 안녕!’, 이탈리아어로 ‘수레에 배를 싣고 육지를 돌아다니는 미친 축제’라는 뜻이다. 11이라는 숫자는 쾰른이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하고 혁명정신이 유입되면서 1과 1의 평등한 만남이라는 평등사상을 상징한다. 혹은 기독교 10계명과 12사도 사이에 끼어 있는 이교도적 일탈의 숫자라고도 한다.

    ‘로젠몬타크’이라는 말에서 로젠이 장미라는 뜻의 ‘로젠(Rosen)’이 아니라 광란이라는 뜻의 ‘라젠(Rasen)’을 쾰른식으로 발음한 것이든 아니든, 카니발의 무질서와 예외 상태야말로 억압된 독일인에게 심리적 분출구 구실을 한다는 분석을 믿든 말든, 카니발에 대한 도취 심리 밑에 모든 것은 끝이 있으니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우울감이 깔려 있든 말든, 카니발이 끝나고 사람들이 정말로 고기를 먹든 안 먹든 다 상관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카니발이 독일의 모든 정치체제에서 꿋꿋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2000년 쾰른 굴곡의 역사, 쾰른 고유의 언어, 이웃과 웃고 즐길 줄 아는 낙천적 바보 ‘예케’ 정신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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