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8

2013.03.11

새 술은 새 부대에 中, 시리주허 시대 막 올랐다

정치 축제 ‘양회’ 통해 지도부 교체

  •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입력2013-03-11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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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대 정치 축제인 양회(兩會)가 3월 3일 개막해 보름 동안 열전에 돌입했다. 양회는 우리나라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정책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일컫는다. 매년 3월 개최하지만 올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필두로 하는 향후 10년간의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크다.

    시진핑, 리커창은 지난해 11월 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8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당이 정부에 앞서는 중국에서 총서기는 국가 원수다. 따라서 그때 이미 시진핑 체제는 돛을 올렸다. 하지만 당이 아닌 정부, 즉 국가직에 대한 정리가 아직 남았다. 이번 양회에서는 국가주석과 총리를 비롯한 각급 정부기관의 수장(首長)을 정한다. ‘시리주허’(習李組合·시진핑과 리커창 조합)라고 부르는 5세대 국가 지도부가 공식 출범하는 것이다.

    10년 중국 이끌 5세대 지도부

    정협은 3월 3일 시작해 12일 끝난다. 핵심인 전인대는 5일 열렸다. 17일까지 4개 섹션, 16개 항목 일정을 소화한다. 8일에는 정부공작(업무) 보고 및 심의가 있었다. 11일까지 진행한 둘째 섹션에서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와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 업무보고가 있었다. 이날 한국 행정부 격인 국무원의 기구 개편방안도 심의한다. 12일 하루 휴회한 뒤 13~16일 셋째 섹션에서는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자체 집행부를 선출하는 것은 물론, 전인대 핵심인 국가주석(14일)과 총리(15일)도 결정한다.

    주석은 한 명을 후보로 내세운 뒤 무기명으로 투표하는 등액선거(후보와 선출자가 동일)다. 총리는 선거가 아닌 ‘결정’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국가주석이 제청하면 전인대 전체회의에서 형식적으로 ‘결정을 위한 표결’을 한다. 둘 다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인선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그 나름의 정치적 행위다. 이때 시진핑과 리커창이 각각 주석과 총리에 오른다.



    3월 17일 오전 열리는 넷째 섹션에서는 각 의제를 심의하고 표결한 뒤 폐막한다. 이때 리커창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정권 2인자인 총리로 공식 데뷔한다.

    시리주허가 전면에 나서면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공식적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로써 18차 당대회 이후 과도기적으로 운영되던 신구권력의 동거체제가 끝난다.

    3월 8일 원 총리는 정부공작보고 발표를 통해 시리주허 원년인 올해 중국의 정책기조를 공개했다. 떠날 총리가 차기 정부 정책을 소개하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일당체제인 중국은 지도부 교체를 서방이나 한국식 정권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베이징(北京)의 한 정치 분석가는 이를 “전임 지도부가 후임 지도부를 잉태해 낳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작보고에서 중국은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2년 연속 7.5%로 제시했다. 이번 목표치는 경제 구조조정 필요성과 악화된 대외환경이라는 다소 상반된 현실을 반영한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9.9%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7.8%)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8%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목표치 하향 조정으로 보여준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과 유럽발(發) 재정위기로 인한 수출 둔화, 경기침체 같은 영향이 적지 않다.

    이번 성장률 목표치는 정부가 감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대규모 적자예산 편성으로 성장을 지탱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 총리는 “재정적자 규모를 지난해 8000억 위안(약 140조 원)에서 올해 1조2000억 위안(약 210조 원)으로 4000억 위안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목표치를 성장에 따른 후유증을 치유하려는 정책적 판단으로 볼 수도 있다. 중국 수출 전초기지이자 ‘세계 공장’ 원조 격인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는 시 자체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값싼 노동력에 의지하던 전통 제조업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생한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사채시장발 연쇄 부도도 마찬가지다. 고성장보다 ‘중속(中速) 성장’에 방점을 두는 이유도 구조조정을 겨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리커창 부총리가 3월 7일 정협에서 “앞으로 6.8%씩 성장하면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수준) 사회 건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한국으로선 중국이 2년 연속 7% 성장을 할 개연성이 높은 만큼 수출입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3.5%로 지난해(2.6%)보다 올려 잡았다. 농산물과 서비스 가격, 임금 등이 상승 압력을 받는 데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공작보고에서 눈여겨볼 다른 포인트는 국방예산이다. 원 총리는 “군사투쟁 준비를 계속 심화해 새로운 세기에서 일련의 긴박하고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강한 군대’ 건설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해 국방예산을 7201억6800만 위안(약 125조7000억 원, 1156억9100만 달러)으로 작년보다 10.7% 늘렸다.

    가닥 잡힌 외교라인

    중국은 2010년(7.5% 증액)을 빼고는 1989년 이후 매년 10% 이상 국방예산을 늘려왔다. 서방에서는 실제 집행액이 이보다 배 이상 많을 것으로 본다. 반면 미국 국방예산은 2011년 7110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910억 달러로 줄었으며, 올해는 정부예산 자동감축(시퀘스터)에 따라 427억 달러 삭감해야 한다. 일본이 올해 방위비(약 503억 달러)를 늘렸다곤 하지만 중국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방비 증액은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그리고 필리핀, 베트남 등과의 남중국해 갈등에 대비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태평양 회귀 전략에 맞서 반접근(anti-access) 및 지역거부(area denial) 전략을 유지하려는 차원이다. 중국의 핵심 이익인 영토문제에 미국이 처음부터 관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강군 건설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지역 내 긴장 고조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일본에서는 “중국의 군비 증강은 국방비 삭감 압박을 받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안보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3월 5일자 요미우리신문)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는 일본 재무장을 촉발하는 요인이다.

    한국으로서도 중국이 첫 항모 랴오닝(遼寧)을 서해를 관할하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배치하고, 중국 해군이 한국군 작전 수역을 매주 정기적으로 순찰한다는 점에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베이징 한 군사전문가는 “중국이 완전한 항모 전단을 구성해 서해에서 활동하면 다른 국가 해군이 이곳에서 활동할 공간 자체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서해는 수역 자체가 좁기 때문에 작전 반경이 넓은 항모 전단이 뜨면 다른 국가는 예기치 않은 충돌을 우려해 일상적인 군사훈련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양회에서는 고위 국가직 인선도 구체화한다. 2월 말 열린 제18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18기 2중전회)에서 이미 결정됐다. 형식적 추인과 공표 절차만 남았다.

    먼저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진핑과 리커창을 뺀 나머지 5명의 안분 작업이 있을 예정이다. 장더장(張德江)이 전인대 상무위원장, 위정성(兪正聲)이 정협 주석, 류윈산(劉雲山)이 사상 및 선전 담당 상무위원, 장가오리(張高麗)가 상무부총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왕치산(王岐山)은 이미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로 정해졌다.

    국가주석 유고 시 정부를 대표할 부주석이 관건이다. 그동안 후 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대표주자인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중앙조직부장이 후보로 거론됐다. 리 전 부장은 당초 상무위원으로도 물망에 올랐으나 리펑(李鵬) 전 총리의 반대로 물을 먹었다. 이번에 공청단에 대한 배려 조치로 그를 부주석에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전인대 과정에서 기류가 바뀌었다. 전인대 상무주석단 6명 명단에서 리 전 부장이 빠지면서 류윈산 유력설이 급부상한 것. 류 위원은 장더장에 이어 주석단 명단에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중국 킹메이커 그룹에 속하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 후 주석의 정치적 지지를 받는 등 의외로 인맥이 탄탄하다.

    당 중앙정치국 위원 25명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 류옌둥(劉延東)은 제2부총리로 과학기술과 교육·문화·체육 등을, 정치국원인 왕양(汪洋) 전 광둥성 서기는 제3부총리로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국토자원부, 주택건설부, 상무부 등을 맡으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역시 정치국원인 마카이(馬凱)는 제4부총리로 1차 산업과 민족, 종교 문제를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목해야 할 ‘후진타오 키드’

    >외교라인은 양제츠(楊潔 ) 외교담당 국무위원(현 외교부장), 왕이(王毅) 외교부장(현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 장즈쥔(張志軍) 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으로 진용이 짜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양제츠는 미국통, 왕이는 일본통이다. 왕이의 외교부장 기용설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교수는 “중·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일본 측에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으로선 ‘친북파’만 아니라면 누가 외교라인을 담당하든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중국에 첫 특사를 파견하는 등 대중 외교관계 복원에 힘을 쏟고 있고, 중국도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한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 양회를 끝으로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는 막을 내린다. 그들 역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다. 중화권 언론은 후 주석 퇴진을 ‘뤄투이’(裸退·벌거벗은 퇴진)라고 표현한다. 전임 장쩌민 주석과는 달리 군권(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한꺼번에 시진핑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사에 순조로운 권력 이양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이 지난달 선보인 ‘커넥티드 차이나’(connectedchina. reuters.com)라는 중국 권력 지도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지도에 따르면, 로이터가 선정한 차기 지도부 후보군 20명 가운데 장 전 주석이 미는 인물은 장춘셴(張春賢)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서기 한 명뿐이다. 반면, 후 주석은 장 서기를 포함해 9명과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왕양 전 광둥성 서기,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 리위안차오 전 중앙조직부장, 류치바오 선전부장, 저우창(周强) 후난성 서기,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등 내로라하는 파워엘리트 9명이 ‘후진타오 키드’로 성장하는 것. 따라서 후 주석은 이번 상무위원 구성에서는 자기 세력을 심는 데 실패했지만 5년 뒤 중국 정치계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 할아버지’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원자바오 총리는 뒤끝이 다소 안 좋다. 그는 10년 임기 중 마지막으로 발표한 이번 정부공작보고에서 정치개혁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개혁은 그가 계속 주장해온 화두다.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일 수 있다. 하지만 당내 권력투쟁에서 패해 발언권을 잃은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원 총리는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축재 의혹을 폭로해 ‘청렴 이미지’에 상당 부분 타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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