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4

2013.02.04

동유럽 보헤미안 정신을 엿보라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 :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2-04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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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 보헤미안 정신을 엿보라

    1 ‘아침’, 에밀 필라, 1911, 129×113.5. 캔버스에 유채. 2 ‘가을 태양에 관한 연구’, 프란티셰크 쿠프카, 1906, 46.5×47, 판지에 유채. 3 ‘쿠프카 부부의 초상’, 프란티셰크 쿠프카, 1908, 100×110, 캔버스에 유채. 4 ‘적도의 밤’, 에밀 필라, 1938, 114×146, 캔버스에 유채.

    ‘프라하’라는 단어를 들으면 쿤데라와 카프카,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같은 예술가 이름이 함께 떠오른다. 이들은 모두 19~20세기 체코에서 태어났고, ‘조국’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며 작품 활동을 했다. 당대 이들을 휩쓸었던 체코의 민족주의 열기와 독립운동, 제1·2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대두 등은 쿤데라의 소설과 스메타나의 음악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면 체코 화가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4월 21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 :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은 이 호기심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자리다. 1905년부터 43년 사이 완성한 체코 작가 28명의 회화 107점이 한국 관객을 맞는다. 헬레나 무실로바 프라하국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당대 작가 카프카를 거론하면서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상황의 불합리함과 모호함, 그리고 비판독성(非判讀性)은 프라하 환경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묘사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체코 미술의 특성, 즉 괴기스러우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면과 통한다”고 설명했다. 체코 전위미술의 기수로 꼽히는 에밀 필라(1882~1953)의 ‘적도의 밤’(1938)을 보면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휘영청 보름달이 솟은 어느 밤. 밀림 속에 사자와 황소가 뒤엉켜 있다. 자세히 보니 사자가 거대한 황소를 막 타고 올라온 참이다. 목을 물어뜯자 황소 입에서 피가 솟구친다. 평화로운 하늘과 잔혹한 지상, 정면을 응시하는 사자와 무력한 황소의 대비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1930년대 ‘붉은 태양 아래의 황소와 싸우는 사자’(1936) ‘백야’(1938) 등 연작을 통해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지를 드러낸 작가는 나치가 체코를 점령한 뒤 체포돼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한 명 눈여겨봐야 할 작가는 프란티셰크 쿠프카(1871~1957)다. 미국 뉴욕에서 명성을 얻고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등에서도 활동한 쿠프카는 체코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비구상부터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경향을 선보인 그의 대표작 가운데 11점이 한국에 왔다.

    벌거벗은 세 여인이 가을 사과밭에 서서 태양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가을 태양에 관한 연구’(1906), 파리 거주 당시 본인과 아내를 모델 삼아 그린 ‘쿠프카 부부의 초상’(1908) 등이 눈길을 끈다. ‘쿠프카 부부의 초상’ 속에서 작가는 붉은색 허리띠를 두른 체코 민속의상 차림이다. 해외에 살면서도 체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음이 읽힌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체코 화가들은 슬라브와 보헤미아 등 고유한 민족문화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유럽 미술계와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서유럽과 닮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체코만의 미술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서유럽에만 쏠렸던 미술에 대한 우리 관심을 동유럽권으로 넓히는 첫걸음으로 삼을 만하다. 문의 02-2188-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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