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김민경의 미식세계

스르르 눈이 감기는 육향이 일품

다양하게 즐기는 말고기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6-09 18: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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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다. 소소하게 볼일도 있고 제주로 이주한 친구 몇몇이 보고 싶어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낮에는 볼일을 보고 밤에는 섬의 동쪽과 서쪽을 오가며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맛본 가장 특별한 음식이 바로 말고기다. 오름에 오르거나 올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긴 다리와 미끈한 몸매, 풍성한 갈기를 가진 아름다운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늘 저녁에 먹을 고기라 유심히 봤는데 잘못 짚었다. 식용 말은 한라말, 제주말로 불리는 조랑말이다. 몸집이 작고 다리가 짧으며 통통하되 다부져 보이는 말이다.

    말고기는 질기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는 평도 있다. 간혹 늙은 경주마를 식용으로 속여 파는 사람들 때문에 얻게 된 오명이 아닐까 싶다. 소, 돼지와 마찬가지로 말도 고기를 얻으려는 용도는 따로 키운다. 고기 부위도 소, 돼지와 비슷하게 나뉘며 먹는 방법도 유사하다.

    말고기의 제맛을 보려면 회를 빠뜨릴 수 없다. 살살 녹는 육질뿐 아니라 풋풋하고 신선한 육향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쇠고기의 구수한 향과 다른, 은은한 풀내음이 난다. 생선회처럼 얇게 떠서 나오는 ‘육사시미’는 고깃결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 씹을 새도 없이 목으로 술술 넘어간다. 양념육회는 쇠고기 요리법과 같다. 채 썬 고기에 간장, 다진 마늘과 파, 설탕, 참기름, 배, 잣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먹는다. 한 움큼을 먹어도 두부처럼 뭉글뭉글 부드럽게 씹힌다. 생으로 먹는 부위는 주로 안심이나 뒷다리다.

    날로 먹는 것 가운데 독특한 맛을 꼽자면 차돌박이를 얹은 초밥이다. 얼린 상태로 얇게 썬 고기를 밥 위에 얹어주는데, 녹기 전에 먹어야 아삭하고 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구이로는 뱃살, 삼겹살, 등심을 즐겨 먹는다. 말고기는 육질이 부드럽지만 기름기가 적어 구워 먹을 때 무엇보다 스피드가 중요하다. 잘 달군 불판에 고기를 올려 재빠르게 앞뒤로 뒤집어 겉만 살짝 익혀야 연하고 촉촉한 맛을 볼 수 있다. 자칫 불판에 고기를 내버려뒀다가는 질겨지기 일쑤다. 구운 고기는 소금이나 참기름, 초간장에 살짝 찍어 풍미를 즐긴다.

    국물 요리는 곰탕이 으뜸이다. 고기와 뼈를 넣고 푹 끓여 뽀얀 국물을 먼저 우린다. 나박나박 썬 무와 송송 썬 대파를 넣고 다시 한 번 끓이는데, 이때 메밀가루를 넣는다. 구수한 고깃국물에 심심하고 고소한 메밀의 맛과 향이 깃들어 제대로 입맛을 돋운다. 육수라기보다 구수한 메밀 면수를 먹는 기분이다. 뜨거운 국물에 국수사리와 밥을 말아 한 그릇 비우면 등줄기에 기분 좋게 땀이 배어 개운하다.

    이 밖에도 달콤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밴 갈비찜, 삶은 고기를 얇게 썰어 겨자 양념에 무쳐 먹는 냉채, 빵가루로 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말가스’, 한약재와 뼈를 넣고 푹 고아 만든 엑기스, 신선한 내장을 삶아 내는 수육, 찹쌀에 다진 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죽 등 어느 고기 못지않게 다양한 말고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말고기는 단백질 함량은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은 저칼로리 식품이다. 말뼈에는 칼슘과 구리가 많이 함유돼 푹 우려먹으면 여러모로 사람 몸에 이롭다. 몸과 마음이 허할 때 찾아 먹어볼만한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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