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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베의 불온한 야심 동북아 갈등 증폭 먹구름

돌아온 극우파 차기 일본 총리 예약… 전후체제 청산해 강한 일본 만들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아베의 불온한 야심 동북아 갈등 증폭 먹구름

# 2006년 12월 31일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라는 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았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본토를 사수하려고 전략요충지였던 이오지마(硫黃島)라는 작은 섬을 지키려던 일본군의 36일에 걸친 사투를 그렸다. 당시 이곳에선 미군 공격에 맞서 결사항전하던 일본군 2만여 명이 전사했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무모한 전쟁에 동원된 일본군 병사들의 희생에 초점을 맞췄지만, 아베는 일본을 지키려고 수많은 젊은이가 숨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을 지휘한 사령관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육군 대장이었다. 쿠리바야시는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항복하지 않겠다며 옥쇄작전을 펴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8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려고 울릉도 방문을 시도하다 우리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한 신도 요시타카 자민당 의원이 쿠리바야시 사령관의 외손자다. 그리고 신도 의원을 정계에 입문하게 한 사람이 아베다.

#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A급 전범을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다. 일본이 패전하자 기시는 A급 전범으로 형무소에 수감됐지만, 미군정 지시로 도쿄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기적적으로 풀려났다. 이후 정치적으로 재기해 총리(제56·57대)를 지내는 등 전후 일본 정계를 이끌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사토 노부스케였다. 어릴 적 부유한 기시 가문에 입양돼 성(姓)이 기시로 바뀌었다. 제61~63대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가 그의 친동생이며, 아베는 그의 외손자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 정치인인 아베 전 총리가 제1 야당인 자민당 총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954년생인 아베는 2006년 9월 전후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제90대)가 됐지만,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건강까지 악화하자 두 달 후 사임했다. 와신상담하던 아베 전 총리는 9월 26일 실시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 시게루 전 정무조사회(이하 정조회) 회장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다. 자민당이 총재 결선투표를 치른 것은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와 후쿠다 다케오 간 대결 이후 40년 만이다. 사임했던 총재가 복귀한 것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베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기 바로 전날 중국이 사상 최초로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실전배치했다. 3년 임기의 아베 총재는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시된다.

취임 일성 “평화헌법 뜯어고치겠다”



아베는 취임 일성으로 차기 총선에서 평화헌법 개정 발의 요건을 규정한 96조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개헌 요건을 쉽게 해 전쟁과 군대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 내용을 바꾸려는 의도다. 평화헌법 9조는 전쟁을 일으킨 바 있는 일본의 무력 보유와 교전권에 대한 영구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일본 헌법을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조항을 개정하지 않고는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재편할 수 없다는 게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파의 일관된 주장이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위해서도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 등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일본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해 제3국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아베는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는다”면서 “국회의원 3분의 1만 반대해도 헌법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평화헌법 96조에 명시된 개헌 발의 요건을 따를 경우 중·참의원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이를 중·참의원 의원 2분의 1 이상 찬성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 아베의 생각이다.

일본의 현역 정치인 가운데 평화헌법 개정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온 인물이 아베고, 일본 역대 총리 중 평화헌법 개정을 가장 먼저 주장한 인물은 기시 전 총리다. 기시의 평소 신념은 미군정이 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다시 군사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베는 기시의 정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아베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총리 2명(기시와 사토)을 배출한 외가뿐 아니라 친가도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의 부친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고, 조부는 아베 간 전 중의원 의원이다. 그는 1977년 세이케이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철강회사를 다니다 82년 아버지 비서관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91년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2년 뒤 아버지 지역구였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에서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한 이후 지금까지 6선을 이어왔다.

그는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밑에서 자민당 간사장, 관방부장관, 관방장관을 지내는 등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관방부장관이던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북·일 정상회담에 참여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인정과 사과를 받아낸 대북 강경파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 왜곡의 배후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1830~1859).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다. 요시다는 아베와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제자 중엔 초대 조선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막부 타도의 선봉 다카스기 신사쿠, 일본 군국주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암살 배후인 이노우에 가오루,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있다. 요시다의 “조선을 취할 것이냐, 중국을 취할 것이냐”라는 ‘외정(外征)’사상은 이토 등 제자들이 계승해 조선정벌론으로 발전했다. 아베 신조와 그의 아버지 신타로의 이름에 들어간 ‘신(晋)’은 다카스기 신사쿠(군대를 현대화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의 서막을 여는 데 기여한 청년 사무라이)의 ‘신’에서 따온 것이다. 아베의 피와 머릿속에는 ‘군국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는 그동안 극우파 선봉장이자 지도자로서 정치행보를 이어왔다. 1997년 2월 자신과 신념, 사상이 같은 의원을 규합해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의 초대 사무국장은 아베였고, 초대 회장은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었다. 이후 이 단체는 ‘젊은’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들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아베가 정치 초년병 시절 이 단체를 만든 이유는 역사교과서 때문이다. 아베는 일본이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를 후세들이 배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학사관’으로 기술한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과거 잘못만 들춰낼 뿐 국가 발전이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아베와 이 단체는 그동안 역사교과서를 개정하는 운동을 계속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문부과학성 과장과 교과서 회사 사장, 교과서 집필자 등을 불러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추궁했다.

전후세대의 ‘일본 제일주의’

아베의 불온한 야심 동북아 갈등 증폭 먹구름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 평양을 방문할 당시 관방장관으로 수행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왼쪽에서 세 번째).

이 모임은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에게 이른바 ‘고노 담화’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고노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군의 강제연행을 인정한 내용이다. 아베가 8월 28일 자민당 총재경선 운동을 하면서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베는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자신이 총리가 되면 고노 담화를 비롯해 미야자와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을 모두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미야자와 담화는 1982년 8월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관방장관이 “교과서 기술 때 한국, 중국 등 근린제국의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힌 것을 말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총체적인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 그간 일본 정부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이 담화를 과거사 문제의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던 것을 감안하면, 아베의 발언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전부 부정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아베는 이미 망언제조기로 악명이 높다. 1997년 “한국에는 기생집이 있어 위안부 활동이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아니라, 상당히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07년엔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문서로 된 증거와 일본군의 증언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도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은 극히 무례하다” 등 우리나라와 중국을 자극하는 망언을 남발했다.

아베의 야심은 평화헌법이 강제해온 전후체제를 청산하고 일본을 군사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베는 그동안 전후세대 정치인들을 세력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아베를 비롯한 전후세대 정치인들은 ‘일본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대부분 아베와 비슷한 연령대다. 1945년 이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일본 인구 1억2000만 명에서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들이 정계에 입문할 당시에는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출간될 정도로 일본의 국가적 자부심이 드높았다.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과 가난 등 일본 군국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체험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과 신칸센 개통 등 일본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경제력이 쇠퇴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도 퇴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이나 한국은 갈수록 국력이 커지고 있다. 아베 등 일본 극우세력이 침략전쟁을 비롯한 과거사를 미화하고 독도와 센카쿠 열도 등 영토 분쟁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위기감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 취임기자회견에서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아베는 총리 재임 시절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 제정 등 전후체제 청산을 위한 발판 만들기에 주력했다. 교육기본법은 평화헌법과 함께 전후체제를 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1947년 제정된 종전 교육기본법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주의 이념 실현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 반면 개정 교육기본법은 애국심과 전통 등 국가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개정 교육기본법에 따라 학교에서 기미가요(국가) 제창과 히노마루(국기) 게양 시 기립 등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아베의 바람대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면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로서 전쟁도 할 수 있다.

동북아 군비 경쟁체제 돌입?

아베는 총리로 재직하던 2007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4월 29일)을 국경일 ‘쇼와의 날’로 지정했다. 쇼와는 히로히토의 연호다. 자민당은 이미 일왕을 일본 ‘국가원수’로 규정하고, 자위권과 국방군 보유를 명시하는 헌법개정안을 마련했다. 일본을 다시 ‘일왕과 일왕의 군대를 보유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차기 총선을 실시할 경우 자민당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베는 다시 총리가 될 수 있다. 일본 교도통신 여론조사(10월 2일자)를 보면, 정당별 지지율이 자민당 30.4%로 9월보다 11.1% 포인트 치솟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12.3%를 기록했다. 자민당 지지율이 30%를 넘은 것은 아소 다로 전 총리 시절인 2008년 11월 이후 3년 11개월 만이다. 자민당 지지율이 급상승한 이유는 영토 분쟁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감 때문이다. 차기 총리로 바람직한 인물로는 아베 총재가 노다 총리를 훨씬 앞섰다.

일본 사회의 우향우 움직임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9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일부 관중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했다. 욱일승천기는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과 비슷한 군국주의 아이콘이다. 이에 앞서 8월에는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일본 대표선수들을 환영하는 카퍼레이드 행사가 도쿄 중심가인 긴자에서 열렸는데, 50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 나가는 군인을 환송하는 대규모 집회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다. 영토 문제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 계속되는 경제난과 지난해 3월 대지진 등으로 일본 사회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아베는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해 자민당 2인자 자리에 경쟁자였던 이시바 전 정조회장을 기용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이시바 전 정조회장도 아베 못지않은 극우파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해왔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극우파의 쌍두마차가 자민당을 이끌게 된 것이다. 아베가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본 최대 재계단체인 게이단렌도 집권당인 민주당을 제치고 자민당과 먼저 정책대화를 가졌다.

아베가 차기 일본 총리가 될 경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개연성이 높다. 아베가 집권 후 평화헌법 개정, 야스쿠니신사 참배, 자위대의 국방군화, 집단 자위권 도입, 과거사 반성 담화 폐기 등을 밀어붙인다면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한·일, 중·일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나아가 동북아가 군비경쟁에 돌입할 우려도 높다.



주간동아 858호 (p52~55)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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