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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①

뛰는 물가엔 ‘짧은 한숨’ 가족과 선물엔 ‘긴 웃음’

동아일보 기사로 본 추석 풍속 변천사

  • 글 | 김진경 동아일보 2020위원 kjk9@donga.com

뛰는 물가엔 ‘짧은 한숨’ 가족과 선물엔 ‘긴 웃음’

뛰는 물가엔 ‘짧은 한숨’ 가족과 선물엔 ‘긴 웃음’

1 1937년 9월 20일. 추석에 새 옷을 입은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섰다. 2 1983년 9월 21일. 경부고속도로는 차량의 행렬로 ‘거북 도로’가 됐다. 3 1988년 9월 24일. 서울역에 이른 아침부터 많은 귀성객이 몰려 혼잡을 빚었다.

서정주는 시 ‘팔월이라 한가윗날 달 뜨걸랑’에서 패자, 곧 루저(loser)를 위로하면서 “한가윗날 달빛은 더 너희들 편이어니”라고 노래했다. 서정주는 이 시를 쓸 때 ‘길쌈 경기’라는 추석의 유래가 담긴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참고했다고 전한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인의 상상력을 감히 따라잡을 수 없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추석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왔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 시기 ‘동아일보’ 전체 기사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코퍼스(말뭉치)에서 ‘추석’이 어떤 단어와 함께 나타나는지 분석했다. 이 결과를 가지고 1920년 창간 이후부터 추석과 관련한 기사 흐름을 더듬어봤다. 2000~2011년 12년치 1억2000어절 코퍼스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물결 21’팀이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고, 1920~99년 기사는 기자가 직접 ‘검색’했다. 다음이 바로 ‘동아일보를 통해 본 추석의 변화사’다.

● 연휴+명절+고향=민족대이동

21세기 들어서도 추석 기사에선 ‘연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조사 단어 3645개 중 1위라는 얘기다. 추석이 지금처럼 사흘 연휴가 된 것은 1989년부터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9월 27일자 기사에는 “농민의 공휴일은 설날과 추석날이오 그 박게는 지방별로 단오날이 잇슬뿐”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해방 후 미군정 때도 추석은 하루만 공휴일이었다(1946년 9월 6일자).

‘연휴’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명절’이다. “추석은 태음 중심의 명절로 생식 찬양 풍요 감사 부족적 국민적 사회적 최고 최대의 전례를 이룬 점에서 조선 독특의 명절같이 되었다”는 것이 ‘동아일보’ 촉탁기자 육당 최남선의 진단이다(1925년 11월 1일자). 추석 유래도 전한다. 국어학자 이윤재 선생은 “팔월 십오일에는 그 량편의 성적을 상고하야 진편에서는 술과 음식으로써 이긴 편에 사례하고 이어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이를 다하야 즐겁게 지내어”라고 설명하면서 “더욱이 경상도에서 이 가온 날 놀이가 다른 도에 비하야 성행”했다고 소개했다(1930년 10월 7일자).



‘추석’도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조선과 같이 명절 없는 나라는 없다”며 ‘추석 명절을 부흥하라’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이십 년 내로 점점 쇠퇴하는 명절이 인제 와서는 거의 형해(形骸)만 남고 말앗다. (중략) 특히 사계 중의 조흔 시절을 택하야 한바탕씩 모든 실생활의 노고와 우려와 모든 슬픔을 잇고 인리(隣里)와 친척이 타아(他我)와 이해의 염(念)을 바리고 에덴 낙원의 석일(昔日)을 회상하는 것이다”(1923년 9월 26일자).

추석 기사에서 ‘고향’과 ‘가족’은 변함없이 10위 안에 들었으나, 이와 관련한 ‘귀성’ ‘귀성길’ ‘귀향’ ‘귀향길’은 2000년대 중반 이후 20위 안에도 드물었다.

기사로 보면 추석 이동인원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추석 이동인원은 2930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2011년 9월 5일자).

도시 직장인이 선물꾸러미를 싸들고 귀향하면서 만들어내는 명절 풍속도는 20세기 현상으로 여겨졌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옮아간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추석을 앞두고 “첫 줄은 떡방앗간, 둘째가 목욕탕, 셋째가 서울역 가는 줄이요”란 신문 만평(1959년 9월 16일자)을 시작으로, 귀성객 붐비는 서울역(1966년 9월 28일자)을 거쳐 ‘민족의 대이동’이란 말(1980년 9월 20일자)까지 등장했다.

● 차례상+백화점=상품권+선물세트

뛰는 물가엔 ‘짧은 한숨’ 가족과 선물엔 ‘긴 웃음’

1997년 9월 8일.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경기 파주시 용미리묘지공원에 성묘객이 줄을 이었다.

2000년 이후 전체 추석 기사에서 ‘차례상’(20위), ‘과일’(19위), ‘송편’(33위), ‘음식’(37위)은 변함없이 40위 안에 들었다. 특히 ‘선물’은 ‘선물세트’(7위), ‘백화점’(14위), ‘상품권’(24위)과 함께 매년 2~3위를 달렸다.

추석 기사는 매년 물가기사로 시작된다. 창간된 해(1920년)의 추석 기사는 당시 정간 중이어서 찾아볼 수 없다. 1921년 추석 기사는 식산은행 조사를 인용해 포목류(베와 무명) 가격이 전년 같은 달의 4~5배이며 추석경기가 “점차 양호하게 됨은 사실이라 운(云)하겟더라”고 전했다(1921년 9월 10일자). 당시엔 “각각 디방의 풍속과 그 집안 가풍을 따라서 혹은 집 안에서 혹은 산소에 가서 다례를 지내는 일이 잇는대 이른 해에는 햇쌀로 오려송편을 맨드러 먹는 곳도 잇다”고 했다(1921년 9월 16일자). ‘오려송편’은 ‘오례송편’이 바른 말인데 철 이르게 익은 벼, 즉 올벼 쌀로 빚은 송편을 말한다.

해방 후 1947년엔 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올라 백미 소두 한 말에 550원부터 600원까지라고 나왔다(1947년 9월 28일자).

1950년대 중반까지도 추석 선물과 관련한 기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공무원 상하 간, 일반국민과 공무원 간 추석 선물을 엄금한다”는 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추석선물 풍습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1961년 9월 21일자).

추석 선물 첫 신문광고는 ‘신세기 와이샤쓰’였다(1957년 8월 24일자). 1960년대엔 간장, 통조림, 술, 맥주, 조미료, 구두상품권, 와이셔츠, 설탕, 시계, 비누, 과자 광고가 실렸고 1970년대엔 여기에 양복점상품권, 핸드백, 식기, 식용유, 녹차 광고가 추가됐다. 1980년대엔 백화점상품권, 영양제, 건강식품, 수건, 제기, 호텔케이크, 양말, 화장품이 광고에 많이 등장하고 1990년대엔 백화점상품권, 구두상품권, 도서상품권을 비롯해 참치, 굴비, 주스, 산삼, 술, 쇠고기, 샴푸, 치약, 도자기그릇, 영양식품 등 건강식품이 주류를 이룬다. 2000년에 들어서는 배, 사과, 쇠고기, 한우, 조기 등 ‘제수용품’(49위)이 연도별로 다르게 등장한다.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면서 ‘한우’(72위)가 전년(129위)에 비해 많이 등장했다. 2009년에도 ‘한우’(30위)가 ‘와인’(50위)이란 단어와 함께 많이 사용됐다.

● 대선+추석=민심(?)

2002년과 2007년 추석 기사는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단어가 도드라졌다. 2002년에는 ‘민심’(118위)이란 단어 위에 ‘신당’(44위) ,’선대위’(69위), ‘창당’(105위)이 있었고, 2007년에는 ‘민심’(19위) 아래 ‘경선’(20위) ,‘후보’(31위), ‘지지율’(55위)이 있었다.

후보별로 보면 2002년엔 ‘정(몽준)’과 ‘정몽준’이란 단어가 77위와 142위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 ‘노(무현)’라는 단어는 321위였으나 ‘노무현’(628위)은 ‘반노’(325위)나‘친노’(333위)보다 적게 사용됐다. ‘이(회창)’는 599위였다. 2007년에는 ‘이명박’(58위), ‘권영길’(206위), ‘정동영’(323위) 순이었다.

지난해 추석에는 ‘박근혜’(112위)보다 ‘안철수’(70위)가 더 많이 등장했다. ‘문재인’은 아예 없었다. 당시 ‘문재인’의 활동이 궁금하지만 이 글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검색’을 그만둔다.



주간동아 856호 (p90~91)

글 | 김진경 동아일보 2020위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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