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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의 은퇴이야기

지갑 닫기보다 똑똑하게 쓰자

고령화·저성장시대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지갑 닫기보다 똑똑하게 쓰자

지갑 닫기보다 똑똑하게 쓰자
풍요롭게 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돈을 많이 벌면 된다. 이는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실천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사람이 돈을 벌려고 갖은 노력을 하지만, 만족할 만큼 성공을 거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달이 봉급을 받아 생활하는 샐러리맨이라면 더더욱 어려운 얘기다. 풍요롭게 사는 두 번째 방법은 버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이다. 많이 버는 게 힘들면 애당초 마음을 고쳐먹고 적게 쓰는 데서 기쁨을 찾으면 된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응답자 연령이나 경제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통상 경기가 좋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보다 많이 벌어 부자가 되려고 안달한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1970~90년대만 하더라도 노력에 따라 성장 과실을 향유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능력이나 노력 정도와 무관하게 소득이 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줄기도 한다. 아예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첫 번째 방법으로 부자가 될 확률이 줄어든 셈이다. 많이 버는 게 어렵다면 지출관리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재건축 단지에 부는 ‘다운사이징’ 바람

은퇴를 기점으로 자산관리 방법이 바뀌기도 한다. 한창 일할 때는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아등바등하지만, 퇴직한 다음 돈 벌 재간이 별달리 없는 상황에선 지갑을 단속하는 수밖엔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7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진행 중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선 삶의 규모와 생활 전반의 씀씀이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하나둘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다운사이징 (downsizing)’이다. 다운사이징이란 말은 IBM 왓슨연구소 직원인 헨리 다운사이징(H. Downsizing)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1980년대 초 대형 컴퓨터에서만 운영하던 응용 프로그램을 개인용 컴퓨터(PC)와 근거리통신망(LAN)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보다 작고 빠르며 유연하고 값싼 컴퓨팅 환경을 구현한 것이다. 이후 다운사이징은 ‘조직 슬림화를 통해 능률 증진을 추진한다’는 의미로 기업경영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은 개인생활이나 자산관리 분야에서도 쓴다.



최근 다운사이징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은 재건축 아파트단지다. 얼마 전만 해도 재건축 투자자들은 작은 집을 허물고 어떻게든 큰 집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 짓는 집 크기를 줄이려는 재건축 단지가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호1차아파트 조합은 전 가구의 아파트 넓이를 20~30% 줄인 재건축 변경안을 8월 15일 통과시켰다. 종전 계획안으론 총 800가구를 지을 수 있지만, 바뀐 계획안을 적용하면 907가구가 들어선다.

지갑 닫기보다 똑똑하게 쓰자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동구 고덕동 주공아파트 단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삼익아파트 조합도 재건축안을 새로 만들고 있다. 대형 아파트(141㎡형)에 사는 주민 60여 명이 재건축 이후 입주할 집을 지금 아파트 넓이보다 줄여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 재건축 단지도 조합원들이 소형 아파트로 분양받기를 원하면서 설계를 변경했다. 변경안에 따르면 전용넓이 85㎡ 초과 대형 아파트는 579가구 줄어드는 대신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992가구 늘어난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작은 집을 찾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 드는 추가 분담금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재건축 후 입주할 아파트 넓이를 줄이면, 분담금을 한 푼도 내지 않거나 오히려 돈을 받고 입주할 수 있다. 집을 작게 만들수록 같은 넓이의 대지 위에 지을 수 있는 주택 수가 늘고, 늘어난 주택만큼 일반분양 물량이 증가한다. 건축회사는 이를 매각해 건축비용을 충당할 수 있으니 조합원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예를 들어 도곡동 삼익아파트 141㎡형에 사는 주민이 재건축 후 110㎡형 아파트에 입주하면 추가 분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현재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상당수가 은퇴했거나 정년을 앞둔 중·장년층이라는 점도 작은 집 선호 현상의 배경이다. 자녀가 결혼해 분가하면 노부부만 덩그러니 남으므로 굳이 집을 넓혀갈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가구 70% 이상이 1~2인 가구다.

저렴하지만 만족도 높은 ‘가치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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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행수입에 뛰어든 대형 할인마트들이 해외 명품 브랜드를 시중의 절반 가격에 내놓으며 ‘알뜰 명품족’ 잡기에 나섰다.

다운사이징 바람은 주택 규모 축소뿐 아니라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성장과 퇴직으로 당장 소득을 늘리기 힘들다면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른 수건 짜듯 무조건 아끼고 안 쓰는 건 아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무분별한 과시 소비나 충동구매는 삼가면서도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제품에는 과감히 지갑을 연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가격 거품이 빠지면서 국산보다 오히려 저렴해진 수입제품이나, 해외 명품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하는 국산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용케 알아보고 ‘완판’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광고나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고 상품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살핀 다음 종합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두고 ‘가치소비’라고 한다. 가치소비를 하는 사람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감각은 고급스러운 제품을 주로 구매한다.

요즘은 동일 제품을 다른 소비자에 비해 저렴하게 구매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컨슈머’다. 스마트컨슈머는 같은 물건도 다른 소비자에 비해 적게는 20%, 많게는 60~70%까지 저렴하게 구매하기 때문에 연봉이 자신보다 2~3배 많은 사람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

이들이 일반 소비자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반 소비자는 필요한 제품이 있으면 국내 백화점, 할인매장에서 현금이나 카드를 이용해 바로 구매한다. 반면 스마트컨슈머는 한층 장기적 관점에서 구매할 제품의 가격 변동을 파악한 다음 연중 가장 저렴한 시기에 구매한다. 한 예로 탑승일보다 3~12개월 전에 판매하는 얼리버드 항공권의 경우 일반 항공권보다 통상 20~50% 저렴하다.

스마트컨슈머는 국내뿐 아니라 각종 인터넷 해외쇼핑몰까지 섭렵하며 가격을 비교한 후 현금과 카드뿐 아니라 각종 포인트, 마일리지 같은 가상 화폐까지 동원해 결제한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사려면 다소 번거롭지만, 잘만 활용하면 저성장시대에 삶을 풍요롭게 사는 지혜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고령화·저성장시대에서 부자로 살아가려면 단순히 아껴 쓰는 ‘절약’보다 현명하게 소비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주간동아 855호 (p32~33)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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