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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vitamin 詩

죽어서도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죽어서도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죽어서도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아프리카

그리고는 검다

발톱을 세우고 풀숲에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

얼룩말이 지나가자 번개처럼 덮친다

그러나 달려온다



성깔이 사납고 갈기가 무성한 그러나

말을 강탈해 말의 심장과 내장을 먹는다

그리고는 나무 위로 달아나

사라지는 말의 얼룩과 살점들을 바라본다

핏속에서 드러나는 말의 흰 뼈

그런데 난다

검은 날개를 펴고 빙빙 하늘을 돌다 내려와

말의 주검의 잔해들을 쪼아 먹는다

그러자 빗속을 달려온다

하이에나 소리를 내며

말의 뼈를 부수어 깨끗이 먹어치운다

―함기석 ‘아프리카’(‘오렌지 기하학’ 문학동네, 2012 중에서)

죽어서도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아프리카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막막했다.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할 것처럼 아득했다. 가만히 눈 감고 머릿속으로 아프리카를 그려보았다. 먼저, 초원이 있었다. 드넓은 초원 위에 야생동물이 있었다. 마구 뛰어다녔다. 새들은 힘차게 날아다녔다. 건강한 기운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꽃은 활짝 피고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 누구도 아프지 않았고 그 무엇도 시들지 않았다.

얼마 후 거실에 들어서다 나도 모르게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를 압도하는 어떤 수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저기가 어디야? 아프리카래. 되게 넓다. 나무도 크고 이상하게 생겼어. 카메라는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비추느라 정신없었다. 갑자기 성우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풀숲에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하이에나”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하이에나는 질주하다 저보다 체구가 큰 다른 동물을 “번개처럼 덮”쳤다. 습격당한 동물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바라만 보아도 송곳니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핏속에서 드러나는” 희디흰 뼈는 흡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배부른 하이에나가 어슬렁어슬렁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이에나가 남긴 고기에 파리가 끓기 시작했다. 그 틈을 비집고 “빙빙 하늘을 돌”던 새 한 마리가 혜성처럼 날아들었다. 성우는 그 새가 대머리독수리라고 말했다. 사체 속에 머리를 넣고 먹기 때문에 머리털이 없게 진화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머리독수리는 머리를 집어넣고 채굴하듯 상하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검의 잔해들을 쪼아 먹”으려고 쉼 없이 부리를 놀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한참 후, 사체의 몸통에서 머리가 다시 빠져나왔다. 검붉은 대머리였다. 그야말로 모든 게 다 야생이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쟨 죽어서도 아프겠다. 형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프니까 아프리카지.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간 적이 있다. 일정을 마친 뒤 운 좋게 시간이 남았다. 사파리를 하기로 마음먹고 지프에 올랐다. 옛날에 TV를 통해 처음 접했던 동물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험상궂은 개코원숭이는 지프를 향해 사정없이 돌멩이를 던져댔다. “그리고는 나무 위로 달아나” 따라 하기도 힘든 괴상한 소리를 냈다. 타조는 날렵하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았다. 나는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고 확인해야만 했다. 펭귄이 해변을 뒤뚱대며 걸어가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왠지 이상했다. 빙판이 아니라 해변에 있는 펭귄이라니!

그해 8월, 아프리카는 겨울이었지만 별로 춥지 않았다. 해변에 있는 펭귄처럼, 죽어서도 아픈 야생처럼, 한없이 어색했다. 그래서 여태 꾸역꾸역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2012.07.16 846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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