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협상 결렬 땐 어떡하지?

배트나(BATNA) 활용

  •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hskim@hsg.or.kr

    입력2012-07-16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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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 결렬 땐 어떡하지?
    “언제까지 잠만 잘 거야?”

    날벼락 같은 호통 소리에 깜짝 놀라 낮잠에서 깬 방 과장. 눈을 떠보니 아내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옷장을 뒤지고 있다.

    “당신 내일부터 출장이랬지? 양복이 이거밖에 없어?”

    “응. 그래서 내가 오늘까지 꼭 세탁소에서 옷 찾아달라고 했잖아.”

    “짜증 나서 정말. 몰라, 당신이 세탁소 주인한테 따져서 옷을 찾아오든지 알아서 해.”



    자초지종은 이랬다. 아내는 사흘 전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세탁소에 방 과장의 양복을 맡겼고, 오늘 찾으러 갔다. 그런데 세탁소 주인이 세탁물을 뒤져보더니 “아직 안 됐다”며 미안하단 말도 없이 퉁명스럽게 “내일까지 가져다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세탁소, 서비스가 엉망이라면서 왜 계속 거기만 가? 다른 데 가면 되잖아.”

    덩달아 짜증이 난 방 과장이 한마디 하자 아내가 더 강하게 쏘아붙인다.

    “그럼 당신이 다른 세탁소까지 30분 걸어가서 맡기든지.”

    말을 덧붙였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방 과장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방 과장 부부의 짜증, 원인이 뭘까.

    협상 결렬 땐 어떡하지?
    로저 피셔 하버드대 교수는 어느 날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싼값에 차를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중고차 딜러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 것.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원하는 도요타 코롤라를 얼마에 파실 수 있는지 가격을 적어서 이 봉투에 넣어 보내주세요.”

    핵심은 그다음에 있었다.

    “저는 당신 말고도 7명의 중고차 딜러에게 똑같은 편지를 보낼 겁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딜러에게 차를 살 생각입니다.”

    결과는? 그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차를 살 수 있었다.

    피셔 교수가 중고차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협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배트나(BATNA)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배트나란 ‘협상이 결렬됐을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말한다. 피셔 교수는 ‘많은 수의 중고차 딜러’를 배트나 삼은 덕에 원하는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대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만큼 협상력은 강해진다.

    배트나 개념을 생각하면 방 과장 부부가 짜증이 난 이유도 알 수 있다. 아파트 상가 안 세탁소 말고 다른 곳을 이용하려면 30분을 가야 한다. 그래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상가 안 세탁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세탁소 이용에 대해선 방 과장 부부에게 마땅한 배트나가 없는 셈. 그래서 세탁소 주인의 횡포에도 별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이 점이 짜증의 발단이다.

    배트나가 없으면 무조건 끌려다녀야 할까. 아니다. 배트나는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방 과장 부부가 자신들 말고도 세탁소 주인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의 모임을 만든 뒤 순번을 정해 한두 사람이 대표로 멀리 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찾아오면 어떨까. 다른 세탁소에 배달 서비스를 제안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움직임을 알면 떵떵거리던 아파트 상가 안 세탁소 주인의 행동도 바뀔 것이다.

    배트나는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꼭 필요하다. 그래서 프로 협상가들은 말한다. 배트나가 없는 협상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얼마 뒤에 있을 협상, 당신이 가진 배트나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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