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선거의 여왕’ 놀라운 3대 변신

박근혜, 좌클릭·삼고초려·쇼맨십 강화

  • 허신열 내일신문 정치부 기자 syheo@naeil.com

    입력2012-07-16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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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의 여왕’ 놀라운 3대 변신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세금과 정부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와 사회제도를 바로 세워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확실히 살려놓겠습니다.”(2007년 6월 11일 대선 출마 선언)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입니다.”(2012년 7월 10일 대선 출마 선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뀌었다. 그것도 확 바뀌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경선 패배 이후 5년 동안 박 전 위원장은 용인술과 정책,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변했다.

    먼저 세금 문제.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2월 “더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 더는 새로운 세금은 없다, 세금을 낮추겠다(No More Tax! No New Tax! Yes Tax Cut!)”고 선언했다. 이른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의 첫 번째 선언이었다.

    그랬던 그가 7월 10일 출마 선언에서는 “복지 수준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를 늘리려면 증세가 불가피한 만큼 어느 정도 증세할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빨간색 옷 입고 출마 선언

    다음은 기업의 시장자율에 대한 견해. 7월 10일 출마 선언문에는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논리로 재벌에 관대했던 한국 사회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반면 5년 전 그는 “모든 초점을 성장과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철학으로 우리 경제를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개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규제 철폐를 외쳤다.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의 부활을 위해 정부의 모든 정책은 기업 중심이 돼야 하고, 잘하는 기업에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도 말했다. 재벌 처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변신이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5년 전에는 “저성장열차에서 내려 고성장열차로 바꿔 타야 한다. 경제무기력증을 완전히 치유하고 성장잠재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5+2’라는 연간 7% 성장목표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국가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의 고리가 끊어졌다”면서 성장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종합하자면 조세정책과 정부의 시장 개입, 성장 패러다임의 핸들을 왼쪽으로 크게 꺾은 셈이다. 이런 그의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993년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2007년 캠프에서 정책메시지를 총괄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출마 선언문은 박 전 위원장이 직접 쓴 흔적이 역력하다”면서 “2007년에는 보수 성향이 짙었지만 이번에 제안한 경제민주화에는 진정성이 깃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캠프 핵심 관계자도 “박 전 위원장이 출마 선언 당일 새벽까지 직접 선언문을 손볼 정도로 공을 들였다”며 “지난 3~4년간 그가 보여준 변화를 집약한 연설문”이라고 설명했다.

    용인술 변화도 뚜렷하다. 2007년 박 전 위원장은 기존의 당내 인사들과 알아서 ‘찾아오는’ 인물을 중심으로 매머드급 캠프를 구성했다. 권력에 ‘줄’을 대려는 인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사람을 선별하기보다 캠프 규모를 키우는 쪽을 선택한 것. 더구나 박 전 위원장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당대표를 지내며 탄탄한 당조직을 자기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밀리며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실제 대선 경선에서 ‘당심(黨心)’은 박 전 위원장이 앞섰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외부에서 사람을 영입하기보다 충성도 높은 당내 인사를 중심으로 꾸렸다”며 “이 때문에 일종의 비장함 같은 것이 묻어나는 조직이었다”고 회상했다.

    반면 지금 캠프는 5년 전과 확연히 구별된다. ‘경제민주화의 상징’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영입한 것을 필두로 외부 인사들이 중추적 구실을 담당한다. 캠프 몸집도 실무진 중심의 소규모로 줄었다.

    플러스알파가 필요한데…

    ‘선거의 여왕’ 놀라운 3대 변신
    이상일 박근혜 캠프 대변인은 “캠프에서 공식직함을 가진 분이 31명”이라면서 “캠프 조직을 원칙적으로 확장하지 않기로 했다. 확장이 불가피하다면 그 분야에 한해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확장할 수 있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안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의 ‘삼고초려’는 캠프 주변을 놀라게 했다. 김 전 수석의 경우 여러 차례 전화통화와 실제 만남에서 캠프 합류를 권유한 끝에 영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권한의 요청과 과감한 수용’이 이뤄지면서 캠프의 기존 멤버들이 반발했지만 박 전 위원장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시퍼렇게 날선 비판을 해온 이상돈 전 비대위원을 정치발전위원으로 ‘모신’ 것을 비롯해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방송인 자니 윤, 변추석 국민대 학장 등 ‘외부인’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물론 2007년 캠프에서 중심 구실을 했던 유승민 의원 등 몇몇 의원이 빠진 것도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박 전 위원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은 그가 ‘쇼’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진정성이 통하면 된다’는 그의 지론은 2007년 캠프에서 일종의 ‘골칫거리’였다. 보여주기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연출이 필요하다는 참모들의 건의를 번번이 묵살했기 때문이다.

    2007년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7월 10일 출마 선언을 ‘엄청난’ 발전으로 여긴다.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에 맞춰 드레스코드를 맞춘 것은 물론,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와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소매를 걷어올린 모습을 선보였기 때문. 연설 중간 중간 제스처도 다양해졌다. 물론 다른 대선후보라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됐을 부분이다. 박 전 위원장이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라는 것이다. 출마 선언을 계기로 “박 전 위원장에게 ‘쇼맨십’이 생겼다”는 얘기가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계 모 인사는 “2007년 경선 초반에는 반드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권력의지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금의 권력의지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부조화’ 혹은 ‘화장발’ 지적도 없지 않다. 근본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비판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에서 주로 나오는 얘기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보수 쪽에서는 ‘좌클릭’이 불만이고, 개혁 성향의 의원 사이에서는 ‘한발만 더’라며 아쉬움을 표시한다.

    친박계 모 의원은 “몇 가지 변화로 총선에서 보수세력 결집에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보수세력 결집만으로 대통령이 되기 힘든 만큼 ‘플러스알파’가 필요한데, 변화의 흐름이 총선 직전에서 멈춘 것이 아쉽다”고 진단했다.

    ‘선거의 여왕’ 놀라운 3대 변신

    2007년 6월 11일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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