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3

2012.06.25

스펙에 울고 매춘에 속고…

멀고 먼 커리어우먼의 길

  • 입력2012-06-25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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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펙에 울고 매춘에 속고…

    ‘가을91’, 레이, 1992년, 혼합재료, 244×96, 개인 소장.

    여학생의 로망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다. 자신의 능력을 사장하지 않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족만을 위해 사는 어머니와 달리 자아실현을 하며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커리어우먼이 되면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고급 자동차를 타며 고급 와인을 즐겨 마시는 등 직종과 상관없이 우아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V 드라마 영향 탓이다.

    여학생의 로망, 커리어우먼을 그린 작품이 찰스 레이(1953∼)의 ‘가을91’이다. 검은색 스커트와 블라우스에 흰색 재킷을 입은 여자가 우아하게 서 있다. 검은색 스커트와 블라우스는 커리어우먼의 전형적 의상이며, 단추를 채운 흰색 재킷은 여자가 완벽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황금 브로치와 귀걸이, 목걸이, 팔찌는 성공한 여자임을 나타낸다. 잘 정돈한 머리와 화장, 그리고 붉은색 매니큐어가 여자의 단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성공 지향적인 여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레이는 이 작품에서 성공한 현대 여성을 나타내려고 마네킹을 실물보다 크게 제작했다. 마네킹의 거대함에 감상자가 위축되면서 성공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느낀다.



    레이는 1990년대부터 사람들의 모습을 본뜬 마네킹을 제작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레이의 마네킹은 백화점이나 사무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임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마네킹이 불편한 이유는 크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네킹 크기를 부풀리거나 축소해 정상적인 사물의 질서에 도전한다.

    누구나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비열하다.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과도한 능력을 요구한다. 사회는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그저 예쁘게 웃는다고 커리어우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기업 대표면 웃고만 있어도 커리어우먼이 될지 모르지만 평범한 여자는 스펙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발라야 한다. 돈이 없어 스펙을 쌓지 못하면 사회는 그를 가차 없이 폐기 처분한다.

    스펙 쌓을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어 사회에서 폐기 처분당한 가난한 젊은 여자일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다. 찌질하게 인생을 마감하기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우아하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욕망이 크면 죄를 낳는 법.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일부 가난한 젊은 여자가 매춘에 뛰어드는 이유다.

    스펙에 울고 매춘에 속고…

    (왼쪽)‘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여자’, 퐁텐블로화파, 1579년, 캔버스에 유채, 111×117, 렌 보자르 미술관 소장. (오른쪽)‘나는 부자의 노리개였다’, 파올로치, 1947년, 혼합재료, 36×23,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돈 때문에 매춘하는 젊은 여자를 그린 작품이 퐁텐블로화파의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여자’다. 젊은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두 사람 옆에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이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벌리고 서 있다. 매춘부는 젊은 남자에게 몸을 맡긴 채 동그랗게 말아 쥔 손을 노인에게 보여준다.

    여자의 하늘하늘한 옷이 매춘부임을 암시하며, 젊은 남자의 깃털 달린 모자와 황금색 옷은 그가 부유한 귀족임을 나타낸다. 노인을 향해 동그랗게 말아 쥔 매춘부의 손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며, 노인이 고개를 숙인 모습은 경제력이 없다는 의미다.

    퐁텐블로화파의 무명 화가가 제작한 이 작품에서 매춘부 손은 남자의 성적 능력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노인의 검은색 겉옷 안쪽의 붉은색은 여성 바기나를 상징하는 것으로 노인의 성욕을 나타낸다.

    매춘부의 인생 목표는 늙은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하지만 늙은 부자의 순정은 로또 당첨보다 가능성이 희박하다. 부자에게 매춘부는 일회용 소모품일 뿐이다. 일회용품에 애정을 갖는 사람은 없다.

    매춘부를 소모품으로 그린 작품이 에두아르도 파올로치(1924∼2005)의 ‘나는 부자의 노리개였다’다. 붉은색 슬립과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몸을 드러낸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앉아 있다. 몸이 드러난 옷차림이 매춘부임을 암시한다. 손만 보이는 남자는 ‘팝(POP)’이라는 글자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며 그 아래쪽으로 적힌 글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앞서 팝은 팝아트를 의미한다. 하단에는 코카콜라 병과 폭격기가 그려져 있다. 커다란 체리는 여자의 성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파올로치는 미국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1940년대 여성 잡지 ‘인티미트 컨페션’ 표지 삽화를 콜라주 기법으로 작품에 활용했다. 그는 미국을 상징하기 위해 코카콜라, 비행기, 총 등 광고에 사용된 여러 이미지를 콜라주했다.

    요즘 빚에 허덕이는 매춘부 사이에서 원정 성매매가 유행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에서 한국 여성의 성매매가 문제로 떠올랐다.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고아 수출국에서 섹스산업 수출대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생겼다.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은 없다. 매춘이 쉽게 돈을 벌어줄 것 같지만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구두상품권 한 장 값 정도의 매춘 비용에 비해 중개인이 챙기는 수수료가 너무 비싼 탓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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