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2012.06.18

숭어알의 변신 ‘감칠맛 핵폭발 ’

어란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6-18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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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어알의 변신 ‘감칠맛 핵폭발 ’

    전남 영암의 명인이 만든 잘생긴 어란이다. 어란은 4~6월 만들기에 지금부터 햇어란 맛을 볼 수 있다.

    흔히 싱싱하면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싱싱해서 좋은 것은 몇몇 채소나 과일 정도다. 음식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숙성해야 맛이 산다. 특히 동물성 먹을거리는 숙성 과정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그 아미노산의 맛, 즉 감칠맛을 인간이 특히 좋아한다. 자연계의 감칠맛으로 부족해 인공으로 제조해 그 감칠맛을 즐길 정도다.

    동물성 먹을거리 가운데 특히 숙성을 많이 하는 것은 해산물이다. 육상의 동물성 먹을거리에 비해 해산물은 한 번에 많이 잡히고 쉽게 상한다. 해산물을 장기간 보관하려고 숙성한 것이 젓갈이다. 해산물에 소금을 적당히 더하기만 하면 되니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장기 저장법이다. 또 젓갈은 인간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감칠맛을 낸다. 새우젓과 멸치젓국을 주요 양념으로 쓰는 것은 이 감칠맛을 음식에 더하기 위해서다.

    ‘어란’이라는 음식이 있다. 숭어알이나 민어알을 소금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다시 간장에 담근 후 꺼내 말린 것이다. 숭어와 민어가 많이 잡히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이 음식을 만든다. 제조 과정이 번잡해 귀한 음식에 든다. 예전에는 조기알로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를 본 적은 없다. 요즘은 민어알도 귀해 숭어알을 주로 사용한다.

    어란은 겉이 말라 있어 건어물로 여기지만, 젓갈로 봐야 한다. 생선알을 소금물과 간장에 담갔다가 꺼내 말리는 과정에서 젓갈처럼 숙성한다. 그런데 어란 숙성은 일반 젓갈과는 그 질이 다르다. 물기가 없는 건조숙성이기에 여느 젓갈보다 감칠맛 농도가 높다.

    건조숙성에 더해 어란의 감칠맛을 절정으로 이끄는 또 하나가 간장이다. 어란은 간장에 담갔다가 꺼내 숙성을 하는데, 어란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간장은 콩 단백질을 숙성해 얻는 양념으로 그 자체로 감칠맛이다. 여기에 생선알을 담갔다가 숙성시키니 감칠맛이 크게 증폭된다. 그러니까 어란은 바다와 땅의 감칠맛이 결합한, ‘감칠맛의 핵폭발’을 일으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바다와 땅의 감칠맛이 결합한 음식, 이제는 정말 귀한 음식이 바로 젓국된장이다. 된장은 메주에 소금물을 더하는 것이 전부인 듯 보이지만, 옛날 바닷가 일부 지방에서는 소금물 대신 젓국을 메주에 넣어 된장을 담갔다. 젓국은 멸치젓국, 까나리젓국, 새우젓국 등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바다의 감칠맛이 가득한 젓국에 땅의 감칠맛을 증폭시킨 것이 젓국된장이다. 젓국고추장도 있다. 전국에서 똑같은 통일 전통된장을 만들어 파느라 고생하는 분들을 만나면 이 젓국된장 이야기를 꼭 한다. 특화해보라고. 그러나 아직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 가운데 어란만큼 강렬한 감칠맛을 내는 것은 없다. 그래서 어란은 얇게 썬 뒤 앞니로 잘게 조금씩 씹어서 맛을 즐겨야 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입안에 넣으면 감칠맛이 너무 강해 오히려 맛을 느끼지 못한다. 어란 가격이 비싸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최근 새로운 한국 음식을 시도하는 이태원의 모 음식점에서 어란을 맛봤다. 주방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 했다. 작은 크기의 알이었으나 맛은 깊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 맛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젊은 요리사 덕에 그 맛이 더 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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