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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전방위 압박 필리핀 힘겨운 버티기

스카버러 섬 영유권 다툼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중국 전방위 압박 필리핀 힘겨운 버티기

중국 전방위 압박 필리핀 힘겨운 버티기

스카버러 섬에 나부끼는 필리핀 국기.

중국이 남중국해 스카버러 섬(Scar- borough Shoal)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필리핀을 경제·군사적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스카버러 섬은 필리핀 루손 섬에서 서쪽으로 230km, 중국 본토에서 동쪽으로 1200km 떨어졌다.

스카버러는 영어명이고 필리핀어로는 파나탁(Panatag), 중국어로는 황옌다오(黃巖島)다. 스카버러 섬은 깊이 15m, 너비 130km2의 석호, 그리고 석호를 둘러싼 산호초와 암초로 구성돼 있다. 이 섬의 둘레는 55km나 되며 남쪽 끝에 있는 암초(높이 3m)가 가장 높다. 남동쪽에는 바다와 석호를 연결하는 너비 400m의 통로가 있어 태풍이 불 때 어선과 소형 군함이 피신하곤 한다.

중국은 원나라 때 작성한 지도에서 이 섬이 자국 영토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필리핀은 이 섬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있으며, 자국 어선들이 예전부터 이 섬 인근에서 조업해왔다고 강조한다.

이 섬에 대한 양국의 영유권 다툼이 크게 불거진 직접적 원인은 4월 8일 발생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때문이다. 당시 필리핀 해군 함정이 이 섬 인근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 8척을 나포하려 하자, 중국 해양감시선이 이를 저지했다. 이후 양국 함정은 이 섬 인근 해역에서 경계활동을 벌이며 대치해왔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섬 인근 해저에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中, 자국민 필리핀 여행 금지



특히 중국은 필리핀과의 영유권 분쟁을 통해 남중국해를 자국 바다로 만들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난하이(南海)’라고 부르며 자국의 내해(內海)라 주장해왔다. 중국이 필리핀에 꺼내든 무기는 경제제재다. 중국 정부는 5월 16일부터 자국민의 필리핀 여행 금지조치를 내렸다. 중국의 주요 여행사들은 관광 담당부처인 국가여유국의 지시로 필리핀 관광 상품을 팔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앞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필리핀은 ‘관광의 나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광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필리핀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 300만 명이고, 그중 중국인이 20%를 차지한다. 필리핀여행사협회(PTTA)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인 관광객은 9만6455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4위를 차지했다. 중국 남방항공은 “5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중국과 필리핀 간 항공 운항편수를 하루 한 편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또 5월 9일 필리핀산 바나나에서 유해 미생물을 발견했다며 검역 강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 1500대 분량의 필리핀산 바나나가 중국 세관의 통관 거부로 상하이와 다롄 등 항구에서 썩어버렸다. 필리핀 바나나재배농가수출협회는 중국 정부의 검역 기준 강화 조치 이후 자국 바나나 농가가 입은 손실이 현재까지 14억4000만 페소(약 368억 원)를 넘었다고 밝혔다.

필리핀산 바나나는 중국의 전체 바나나 수입량에서 85%를 차지한다. 중국은 지난해 30만t 규모의 필리핀산 바나나를 수입했다. 중국 정부의 조치가 이어질 경우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농민 20만 명이 자칫하면 생계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5월 16일부터 필리핀산 과일 중 통관 거부 대상 품목을 파파야와 파인애플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의 필리핀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는 과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때 일본에 취했던 조치와 닮은꼴이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은 2010년 7월 센카쿠 열도 인근 해상에서 영해를 침범해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어선의 선장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정부에 선장 석방을 요구하면서 첨단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 수출과 자국 관광객의 일본 여행을 중단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중국 정부의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 선장을 석방해 사실상 외교적으로 패배했다. 이번에도 경제를 무기로 약소국인 필리핀 목조르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필리핀을 군사적으로도 압박 중이다. 중국 난하이 함대 소속 구축함 2척과 프리깃함 2척, 대형 상륙함 1척은 5월 8일 루손 섬 북부 해상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홍콩 언론은 필리핀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광저우군구와 난하이 함대가 제2급 전비태세에 돌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인민해방군의 전투대비태세 등급은 4단계로 나뉘며, 2급은 두 번째로 높은 단계다. 물론 중국 국방부는 보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필리핀에 군사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나왔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사설(5월 10일자)에서 “인민해방군은 다른 나라에 한 치의 영토도 내줄 수 없다”며 “인민해방군은 황옌다오의 주권 탈취 기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이어 군부 2인자인 궈보슝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도 “인민해방군은 국가 주권과 안전,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력 행사 강경 주장도 나와

중국 정부는 또 어족보호 명목으로 황옌다오를 포함한 북위 12도 이상의 남중국해에서 조업금지기간(휴어기)을 설정하고 모든 선박의 조업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이 조치는 7월 말까지 계속되며 조업을 강행하다 적발되는 자국 어선은 어업면허 박탈과 함께 벌금 5만 위안(약 920만 원)을 부과하고 외국 선박은 나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조업금지 조치는 자국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행정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가 필리핀에 취하는 일련의 조치는 바로 힘의 논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리핀에 대한 강경 조치를 통해 자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국가들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중국 외교 수장인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5월 15일 “필리핀 같은 소국이 대국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이 위원의 발언은 매우 오만방자한 것으로 ‘중국식 일방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패권을 추구할 의도가 없으며 일부 국가 중심의 지배구도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주변국을 비롯해 다른 국가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철저하게 자국 이익만 주장해왔다. 특히 상대가 약소국인 경우 결코 합리적 타협이나 협상이 아닌, 우격다짐에 가까울 정도로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

중국 전방위 압박 필리핀 힘겨운 버티기

필리핀 해군 함정이 스카버러 섬 인근 해역을 초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국의 핵심 이익인 만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들의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른 EEZ의 200해리(320km)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이처럼 패권을 추구할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최대 위협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필리핀 국민 대다수는 강대국인 중국이 억지논리를 내세워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자국을 압박하는 것에 분노한다. 필리핀 정부도 중국의 압박을 견디며 일단 버티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중국과 필리핀이 전쟁을 벌인다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필리핀 군사력은 중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의 해군 전력만 보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낡은 군함 몇 척만 있을 뿐이다.

외교적 해결노력 과연 통할까

필리핀 정부는 미국이 적극 지원해주길 바란다. 필리핀 정부는 4월 30일 미국과의 외교·국방부 장관 회담에서 1951년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의 의무와 공약을 재확인하고 해상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볼타이레 가스민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필리핀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지켜주기로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국방부는 또 미국의 최신예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5월 13일부터 19일까지 수비크 만에 정박 중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은 과거 수비크 만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태평양군 사령관은 “미국은 태평양에서 항해의 자유, 평화와 안정, 국제법 준수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은근히 필리핀 편을 들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필리핀에 군사지원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지원을 확대할 만한 여유는 없다.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공세가 계속될 경우 필리핀 정부는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감안할 때 다윗이 골리앗에 승리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는 스카버러 섬 영유권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특히 필리핀 정부는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중재를 통해 스카버러 섬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르면 특정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려면 자국의 영해이거나 EEZ 범위인 200해리에 속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중재를 거부한다. 필리핀 정부가 중국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839호 (p50~52)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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