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9

2012.05.29

젊고 예쁜 ‘트로피 아내’로 말년이 험난

남자에게 돈이 생기면

  • 입력2012-05-29 10: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젊고 예쁜 ‘트로피 아내’로 말년이 험난

    ‘쫓겨나는 하갈’, 엥겔브레히트, 연도 미상, 목판에 유채,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어떤 사람은 거액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쥐면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홍보용 멘트다. 실제로는 복권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자동차를 바꾸고, 그다음에는 배우자를 바꾸고 싶어 한다. 자동차는 시도 때도 없이 부(富)를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며, 배우자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시대를 막론하고 배우자에게 100% 만족하는 부부는 없다. 부부는 사랑을 전제로 한 관계지만 그 사랑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관계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부부관계 개선 프로젝트에서 ‘부부는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주며, 사랑으로 배우자의 허물을 감싸 안으며’라고 사랑을 강조하겠는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을 강조해야만 살 수 있는 관계가 부부라는 얘기다. 그러니 거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원수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거액의 돈이 생겨 배우자와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배우자를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집을 나가면 이혼 사유가 돼 위자료 액수가 커진다.

    아내를 집에서 내쫓는 남편을 그린 작품이 루카스 엥겔브레히트(1495~1552)의 ‘쫓겨나는 하갈’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은 이집트 하녀 하갈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지만 이후 아내 사라가 임신해 적자 이삭을 낳는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내쫓으라며 압력을 넣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아브라함이 하느님에게 답을 구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조언대로 다음 날 아침 얼마간의 식량과 물을 주며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쫓는다.



    식량이 담긴 바구니와 물병을 하갈이 들고, 이스마엘은 하갈의 치마를 붙잡고 걸어가면서 애처롭게 아브라함을 바라본다. 붉은색 구두를 신은 아브라함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킨다. 그들 뒤에서 사라와 이삭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맨발은 집에서 쫓겨난 상황을 나타내며, 아브라함의 구두와 칼은 가장의 권력을 상징한다. 아브라함이 하갈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모습은 무책임함을 드러낸다. 뒤에 있는 사라와 이삭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는 하갈이 쫓겨나자 좋아하는 사라의 속내를 표현한 것이다. 하갈 발밑의 풀 한 포기 없는 땅은 잎이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웅장한 집과 대조되면서 앞으로 펼쳐질 하갈의 험난한 인생을 강조한다.

    남자는 돈이 생기는 순간부터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돈 많은 남자가 젊은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을 ‘트로피 아내’라고 한다. 1989년 미국 경제지 ‘포춘’이 커버스토리로 다룬 부유하고 능력 있는 늙은 남자와 젊고 아름다운 두 번째 부인에 관한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

    트로피 아내를 맞이하는 돈 많은 남자를 그린 작품이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의 ‘어울리지 않는 결혼’이다.

    젊고 예쁜 ‘트로피 아내’로 말년이 험난

    (왼쪽)‘어울리지 않는 결혼’, 푸키레프, 1862년, 캔버스에 유채, 173×134,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오른쪽)‘너무 늦었어요’, 윈더스, 1858년, 캔버스에 유채, 95×76,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교회에서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신부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고 있다. 촛대를 잡은 늙은 신랑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지만 신부의 얼굴은 창백하다. 뒤에 서 있는 하객들은 신랑신부를 외면한다. 신랑 가슴에 달린 훈장은 남자의 지위를 상징하며 신부의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은 신랑의 부를 나타낸다. 신랑이 촛대를 반듯하게 들고 있는 모습은 안정된 결혼생활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반면, 신부의 내려진 촛대는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신랑의 붉은 뺨은 기쁨을, 신부의 창백한 얼굴은 정략결혼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하객들이 결혼식을 외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혼식을 주관하는 신부의 구부정한 몸이 신랑의 나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푸키레프는 이 작품에서 19세기 러시아의 현실을 고발했다. 당시 젊은 여자들은 가난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인생에서 행운은 지속되지 않는다. 행운은 언제나 불행과 친구다. 미국에서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요트를 사는 순간 금융회사는 그의 파산에 대비한다고 한다. 요트는 졸부의 마지막 과시 품목이며, 요트를 구입하면 수중에 돈이 거의 남지 않아서다. 돈이 떨어지는 순간 트로피 아내는 이별을 통보한다. 볼 것이라곤 돈밖에 없는 남자였으니 그럴 수밖에.

    돈이 떨어진 남자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 윌리엄 윈더스(1822~1907)의 ‘너무 늦었어요’다. 이 작품은 1859년 테니슨의 시 ‘내가 죽거든 오지 마세요’와 함께 처음 전시됐다.

    남편은 얼굴을 가리고 있고 낫을 들고 선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본다. 큰딸은 어머니를 감싸 안고 있지만 어린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의 표시이며,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있는 것은 집을 나갔다가 방금 돌아왔음을 나타낸다. 남자의 허름한 옷과 짝이 맞지 않는 구두는 타지에서 고생했음을 암시한다. 여자의 초췌한 얼굴과 낫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큰딸이 어머니를 안고 있는 것은 위로의 표시이며, 어린 딸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모습은 남자가 그 딸을 낳자마자 집을 나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윈더스의 이 작품에서 인물 뒤로 보이는 황폐한 배경은 애정 없는 부부관계를 상징한다. 인물과 배경이 조화롭지 못해 공개 당시 혹평을 받았다.

    돈 벌기는 힘들어도 사랑 주기는 쉽다. 조강지처는 사랑만 있어도 되지만 트로피 아내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개고생해야 얻을 수 있다. 인생은 짧다. 개고생보다 립서비스가 쉬운 법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밝히면 개고생하는 지름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