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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한 줄의 詩 읊조리면 우리말이 춤춘다

저질언어 퇴치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한 줄의 詩 읊조리면 우리말이 춤춘다

한 줄의 詩 읊조리면 우리말이 춤춘다
말이 비틀거린다. 빛나는 한국어가 조롱, 저주, 독선을 펼치는 하급수단으로 전락하는 요즘, 민심의 본류와 엇박자나는 얼치기 정치꾼이 천박하게 구사하는 저질언어가 앞장서 한국어를 오염시킨다. 말이 휘청거릴 때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오는 문학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촉촉한 언어가 메마른 가슴을 어떻게 적시는지를 보여주는 ‘일 포스티노’(1994). 시골총각 마리오가 ‘시심의 화신’인 시인을 만나 운명적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동화 같은 스토리다.

칠레의 위대한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73). 저항시와 연애시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천재 시인 네루다가 우리 한국인에게 가깝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덕분이다. 정치적 탄압 대상이 된 네루다가 1952년 이탈리아로 망명길에 오른다. 이탈리아 정부는 나폴리 근처의 작은 섬에 거처를 알선한다. 2년간 섬마을에 머물면서 네루다는 마리오 루폴로라는 시골 청년과 깊은 우정을 나눈다. 시가 낳은 아름다운 인연이다.

30대 노총각 마리오는 가난한 어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이 작은 섬마을에 오자 전 세계 네루다 팬이 편지를 보내온다. 마을 우체국장은 (산꼭대기 집에 거처를 마련한) 네루다 부부의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임시 직원을 모집하는데, 겨우 글만 읽을 줄 아는 마리오는 자전거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했고 운 좋게 채용된다. 마리오는 마을 우체국과 시인의 집을 오가며 시인이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살핀다. 어느 날 더듬거리는 어눌한 목소리로 시인에게 고백한다.

“선생님, 어떻게 시인이 되셨나요?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선생님, 은유란 무엇인가요?”

순진 청년 마리오는 두 눈을 껌벅거리며 시의 문을 두드린다. 네루다는 청년의 진실한 마음을 읽었는지 ‘은유’에 대해 설명해준다.



“마리오, 시란 은유야. 마음을 실어 다른 것에 비유해보는 거야.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말이지?”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그게 바로 은유야.”

“선생님의 시 구절 가운데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가슴에 다가와요. 그게 무슨 뜻이죠?”

“난 내가 쓴 시 외의 말로는 시를 설명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지.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야.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살펴보게. 그럼 은유를 알게 될 거야.”

그날 이후 마리오는 해변을 걸으며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인다. 자나 깨나 네루다의 시집을 손에 끼고 중얼거려본다. 네루다와 마리오의 시 창작 교실은 지중해 해변을 거닐면서 계속된다.

칠레로 돌아간 네루다에게서 아무런 기별이 없어도 마리오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남기고 간 짐을 부쳐주면서 그의 녹음기에 자신의 시심을 담는다. 섬마을 풍광 소리를 담는 정경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눈물겹다.

“선생님, 우리 섬의 아름다움을 이 테이프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제가 시를 한 편 지었습니다. 시 제목은 ‘파블로 네루다님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도 시인이다. 시를 가슴에다 가꾸는 사람도 시인이다. 시는 시인에게서 태어나 시심의 바다로 떠나간다. 시가 닿는 포구마다 시심이 피어난다. 시가 다가오는 계절. 시가 태어나고 시가 자라고 시가 죽어가는 시간이다. 한 줄기의 시를 읊조리는 순간, 우리는 마리오가 되고 지중해 파란 파도가 된다.



주간동아 835호 (p51~51)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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