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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은 골로 말한다

돌아온 킬러 이동국, 브라질월드컵 기대감 높여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라이언 킹’은 골로 말한다

‘라이언 킹’은 골로 말한다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최종 예선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는 이동국.

이동국(33·전북 현대)은 올해 축구계 최고 이슈다. 대표팀 재발탁 여부에서 비롯한 그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최종 예선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통해 더 높아졌다.

그는 귀중한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 이후에는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인간 이동국’의 솔직한 모습에 팬들은 감동했다. 게다가 3월 개막한 K리그에선 연일 골을 터뜨리며 K리그 역대 최다 골, 역대 최다 공격포인트 신기록을 수립했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많은 시련과 아픔이 함께했다. 그래서 지금 그의 모습이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

이동국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다. 각급 청소년대표를 거치면서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만 19세에 프랑스월드컵 대표선수로 발탁된 그는 패색이 짙던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경기 후반에 교체 출전해 강력한 발리슛 한 방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동국의 등장에 팬들은 흥분했다. “한국에도 대형 스트라이커 재목이 나왔다”며 황선홍에 이어 한국 축구를 책임질 공격수라는 평가를 했다. 허벅지 굵기가 유럽에서 최고 선수로 각광받은 대선배 차범근에 버금간다는 등 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곱상한 외모로 여성 팬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으며 안정환, 고종수와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축구 기대주에 찾아온 시련과 아픔

하지만 어린 선수에게 너무 큰 관심은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프로에 데뷔한 1998년 11골 2도움의 좋은 기록을 남겼지만 이듬해부터 그의 골 세리머니는 자주 나오지 않았다. 1999년 8골, 2000년 4골, 2001년 3골에 머물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준비로 대표팀 차출이 잦았던 탓도 있지만 이동국은 자신도 모르게 정체돼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계속 월드컵대표팀에 뽑혔다. 출전 기회도 잦았다. 한일월드컵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발표된 최종엔트리 23명. 이동국을 제외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동국을 명단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게으른 천재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 ‘잘나가던’ 이동국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큰 시련이었다.

이 일로 이동국은 충격에 빠졌다. 스스로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빠진 최종엔트리에 이천수, 차두리, 현영민 등 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가 포함됐다.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동국은 그 당시에 대해 “술만 마셨다. 축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일월드컵에서의 한국 경기를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보지도 않았다”고 회상한다.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이동국은 그해 가을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워낙 운동량이 부족했던 탓에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목표했던 금메달을 따지 못해 병역혜택 기회도 날렸다. 그는 2002년 K리그 시즌 종료 직후 입대를 결정했다.

이동국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입대가 늦었다. 상무 입대를 지원한 선수들이 합격 통보를 받은 뒤에야 이동국은 입대를 결정했다. 규정대로라면 그가 상무에 입대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상무는 이동국을 일반 병사로 입대시킨 뒤 상무로 전출시키기로 결정했다. 그가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군복을 입은 이동국은 달랐다. 비록 상무에 몸담았지만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상무에서 생활하면서 지금의 멘토 김상식(36)과 만났다. 김상식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동국의 재기를 도왔다. 이동국도 세 살 많은 김상식을 잘 따랐다. 상무에서 활약하면서 이동국은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 덕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 축구팀의 일등공신이었다. 상무에서 제대해 포항으로 복귀해서도 그의 득점포는 불을 뿜었다.

K리그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

‘라이언 킹’은 골로 말한다
이동국은 독일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또다시 눈물을 삼켰다. 이번엔 부상이었다. 2006년 4월 5일 K리그 인천과의 홈경기 도중 혼자 볼을 잡으려고 뛰다 갑자기 쓰러졌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 선수생활을 위협하는 큰 부상이었다. 그는 월드컵에 출전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관중석에서 월드컵을 바라봐야 했다.

힘겨운 재활을 거쳐 그해 11월 K리그에 복귀한 이동국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해외 진출이었다. 어린 시절 독일 무대에서 한 차례 좌절을 맛봤던 이동국은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테스트를 거친 끝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에 이어 네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잉글랜드 축구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1년 만에 귀국했다. 경기에서 뛰는 시간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던 탓에 그는 좋았던 페이스마저 잃었다.

K리그로 복귀해 성남 유니폼을 입었지만 선발보다 주로 조커로 뛰며 2골을 넣는 데 그쳤다. 결국 성남에서 방출되다시피 나온 그는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최강희 감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동국은 김상식과 전북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에겐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에게 계속 기회를 주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의 모습을 되찾도록 도왔다. 그 덕에 이동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사자왕’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북 유니폼을 입은 첫해 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22골을 작렬했고, 팀 창단 이후 첫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이동국이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자 최 감독은 언론을 통해 대표팀에 압력을 가했다. “K리그 득점왕을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자주 말했다. 이동국이 대표팀에 한 차례 선발됐다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자 최 감독은 “이동국을 활용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며 제자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최 감독의 응원을 등에 업은 이동국은 결국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출전 기회를 잡았다.

그토록 기다렸던 월드컵 무대. 이동국은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16강 우루과이전 등 2경기에 조커로 나섰지만 플레이는 썩 좋지 않았다. 특히 우루과이전에서는 1대 2로 뒤진 후반 종료 직전 천금의 동점 기회를 잡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인지 제대로 슈팅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동국은 또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곁엔 최 감독이 있었고, 이동국은 빠른 시일 안에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 방’ 이미지가 강했던 이동국은 지난해 자신의 플레이가 달라지고 있음을 팬들에게 보여줬다. 골뿐 아니라 어시스트로 동료의 플레이까지 살필 줄 아는 선수가 됐음을 증명했다. 그는 지난해 16골 15도움을 기록했다. 공격포인트는 31개. 그가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이 올린 공격포인트였다. 그럼에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전북 지휘봉을 잡고 있던 최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든 시선이 이동국에게 쏠렸다. 최 감독은 고민 끝에 그를 불러들였다. 그는 자신을 선택해준 최 감독에게 골로 보답했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

대표팀을 통해 기분 좋게 올해를 시작한 이동국은 K리그 개막과 더불어 역대 K리그 개인 최다 골 신기록을 작성한 데 이어, K리그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최 감독은 “지금이 전성기”라며 이동국에게 찬사를 보냈다. 2009년부터 이동국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 감독의 평가에 아무도 이견을 보이지 못했다.

이동국은 역경을 딛고 ‘사자왕’으로 거듭났다. 한 서린 월드컵 무대에서도 갈기를 휘날리며 멋진 세리머니를 펼칠 날을 꿈꾸는 그는 2년 후에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려 연일 구슬땀을 흘린다.



주간동아 833호 (p60~61)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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