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3

..

또 해킹… 머독 미디어 왕국 ‘흔들’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 피의자 이메일 열람 파문 확산

  • 글래스코= 김보경 통신원 plyooul@hotmail.com

    입력2012-04-16 10: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루퍼트 머독(81) 미디어 공화국이 해킹 스캔들로 또다시 홍역을 앓고 있다. 휴대전화 음성사서함 해킹 사건으로 일요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를 자진 폐간한 지 1년여 만이다. 해킹을 주도한 언론사는 머독 소유의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그룹에 속한 영국 법인, 즉 뉴스인터내셔널(NI) 계열사인 스카이뉴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독의 차남 제임스 머독(40)이 회장직을 지냈던 B 스카이 B사의 자회사다.

    스카이뉴스 소속 기자가 사건을 취재하려고 피의자의 이메일 계정을 두 차례나 불법으로 열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4월 3일 제임스 머독 회장은 사임을 표명했다. 이틀 뒤 존 라일리 스카이뉴스 대표는 해킹 사실을 시인하고 해명 글을 게재했다.

    라일리 대표는 “이메일 해킹 스캔들에 오르내리는 용의자의 유죄가 의심되는 경우였기 때문에 공공의 선을 위해 윗선에서 평기자의 해킹을 용인했다”고 밝혔다. 스카이뉴스 편집국장단이 내린 결정이 결코 가벼운 판단은 아니었으나,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언론이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탐사보도의 공적 가치 추구와 준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를 충분히 인지했다곤 했지만, 파문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하직원 불법 용인을 정당화?

    공공의 선을 위해 부하직원의 불법 행위를 용인했다는 스카이뉴스 측 주장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스카이뉴스 북잉글랜드 담당 제라드 터브 기자는 일명 ‘카누맨’ 사건으로 알려진 보험사기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메일을 해킹했다. 카누맨 사건은 2002년 벌어졌다. 존 다윈이라는 사람이 카누를 타다 사고사를 당한 것처럼 꾸민 뒤 아내 앤 다윈을 시켜 보험금을 타냈다. 존 다윈은 이후 몰래 파나마로 피신했다 2007년 겨울 영국으로 돌아와 “내가 실종자 신고 목록에 오른 것 같다”며 런던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그러나 그는 보험 사기죄 및 여권 사기죄 등 7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터브 기자는 존 다윈의 사고사를 의심하던 중 그가 친구 존 존스의 이메일 계정으로 아내와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알아냈고, 그 후 존 존스라는 실명을 쓰는 야후 이메일 계정을 검색해 비밀번호를 해킹했다. 그리고 다윈 부부 사이에 오간 이메일을 염탐하면서 부부가 카누 사고사를 조작해 은폐하려 했음을 밝혀냈다. 다윈 부부는 사기죄로 각각 6여 년 형을 선고받았다.

    스카이뉴스는 클리블랜드 경찰을 만나 관련 자료를 넘겼다고 주장하지만,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를 법정에 기소 증거자료로 제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클리블랜드 경찰과 스카이뉴스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스카이뉴스는 검찰 기소 후 “경찰에서 이메일 자료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고 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클리블랜드 경찰은 “이메일 출처와 관련해 자료 제공자에게 끊임없이 심문을 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터브 기자가 스카이뉴스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스카이뉴스가 결정적 서류 증거물을 찾았다”고 밝혔으나 그 증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터브 기자가 다윈 부부가 온라인상에서 주고받은 음성메시지를 추출해 공개했을 때는 이미 모든 자료가 존 다윈의 이메일에 근거하고 있었다. 클리블랜드 경찰도 사전에 이 자료를 충분히 인지했다고 전해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적 영역은 철저히 보호받아야

    터브 기자는 이후에도 소아성애 범죄 관련 취재를 하던 중 또다시 이메일을 해킹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가 수사 중이던 소아성애로 추정되는 용의자와 그 아내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했으나 관련 자료를 유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를 법적으로 처벌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듯하다.

    영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메일을 훔쳐보는 행위는 컴퓨터 오남용법 위반이다. 하지만 공공의 선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메일을 불법으로 열람했을 경우, 즉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공공의 선이 상충되는 경우에는 둘 중 무엇을 우선시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이런 경우 이론적으로는 경찰이나 검찰 측에서 공공의 선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참작해 위법행위를 정당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유사 사례가 거의 없어 검찰이 스카이뉴스의 해킹을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불법 도청, 이메일 열람 등 해킹 스캔들이 끊이지 않자 검찰의 공소 최고책임자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공공의 선과 안녕을 위한다고 해도 사적 영역은 보호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컴퓨터 오남용법은 온라인상 개인의 신상정보를 보호하려고 제정했다. ‘가디언’은 인터넷 범죄 전문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 용의자로 의심된다고 해서 집을 뒤지는 것이 합법적인가. 컴퓨터 범죄의 문제점은 회사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다른 어떤 침입, 침해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도했다.

    4월 7일 제임스 머독이 이메일 해킹 사실을 꽤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OFCOM)이 스카이뉴스의 모회사 B 스카이 B의 방송면허 적격성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나 ‘더 선’의 도청 및 휴대전화 음성사서함 해킹 사건의 후폭풍을 OFCOM이 밀착 조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래프’는 “일부 주주가 이번 해킹 스캔들의 여파가 모회사 B 스카이 B에 그치지 않고 뉴스인터내셔널 그룹 전체로 번질까 우려한다”고 전했다.

    1년 여 전 머독 회장이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자진 폐간할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해킹 스캔들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운 미디어 규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머독 회장이 소환되고 168년 역사를 가진 신문을 자체 폐간하는 등 언론사에 남을 떠들썩한 스캔들을 겪고 나서도 변한 것은 거의 없다. 특종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특종을 압박하는 언론사 고위층은 암묵적으로 해킹을 용인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또 증명됐다.

    라일리 대표는 해킹 스캔들에 대한 회사 측의 공식 처지를 밝히며 그동안 스카이뉴스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탐사보도를 언급했다. 2003년 히드로국제공항의 보안 취약점을 보도한 내용, 그리고 2004년 영국에서 불법 총기 소지와 관련해 기관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내용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탐사보도의 사회적 정의를 합법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공공의 선을 위해 사적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희생해야 할까. 이번 이메일 해킹 스캔들 당사자를 처리하는 데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