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2

2012.04.09

사람에 통 큰 투자 경영과 스포츠 두 토끼 잡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공정 경쟁과 협력 리더십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04-0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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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 통 큰 투자 경영과 스포츠 두 토끼 잡기
    “대한항공 배구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한 사람의 스타플레이어 때문이 아니라 팀워크 덕분이다. 대한항공 역시 어느 한 사람, 한 부서가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내, 운송, 예약 등 전 부서가 조화를 이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팀워크를 통해 서로가 책임지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월 30일 ‘위기 대응력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한 대한항공 임원 세미나에서 조양호(63) 한진그룹 회장은 팀워크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한항공 배구팀을 본보기로 들었다. 이날 조 회장은 언제든 사내 정보망에 접속해 소통하고, 어디에서나 업무를 모니터링하라며 임원 전원에게 갤럭시탭을 지급했다.

    비즈니스와 스포츠를 적절히 접목한 조양호 회장의 리더십이 화제다. 지난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운 그가 3월 말엔 ‘2012년 아시안 비즈니스 리더’상을 수상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아시안 소사이어티가 주는 이 상은 한진그룹 주력사인 대한항공이 미국 내 최대 아시아 항공사로서 로스앤젤레스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결과다. 지난해 대한항공이 의욕적으로 도입한 차세대 항공기 A380 또한 탑승객의 만족도를 크게 높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재계는 조 회장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로서 축적한 서비스 정신에 공정 경쟁 및 협력을 중시하는 스포츠 정신을 결합해 경영과 스포츠 외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한다.

    “상황이 어려울 때 더 도와야”

    스포츠에 대한 조 회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1969년 대한항공 배구팀을 창단한 데 이어 73년 탁구팀을 창단했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만들었다. 대한항공을 통해 김연아, 박태환, 손연재 등 스포츠 스타의 항공권을 후원해온 건 이미 오래전 시작한 일이다.



    조 회장은 필요하면 선수들에게도 ‘통 큰’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하대 배구코트를 빌려 쓰는 대한항공 배구팀을 위해 경기 용인시 신갈에 전용체육관을 지었는가 하면,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해서는 탁구 과학화를 위한 장비 도입을 지시했다.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도울 라켓과 탁구대를 구입하고, 고속카메라를 이용해 세계 최강인 중국 선수들의 구질을 연구하라고 주문한 것.

    그는 또 대한탁구협회 관계자에게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선수들이 영어를 공부하게 시간을 확보하고 지원하라”며 “국제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에겐 영어가 필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도 어학 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직원에게 “가만히 앉아 보고받으려고만 해선 안 된다”며 “현장에서 위기와 변화 조짐을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어학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연초 대한항공 임직원 세미나에서도 “해외 지점장들은 고객을 설득하고 문제가 있으면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기본적인 영어 능력 외에 현지 언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스포츠에서 다 자란 나무를 사들여 열매를 따먹기보다 척박한 땅을 일궈 싹을 틔우는 데 더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듯하다. 그가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을 당시 탁구계는 파벌 갈등으로 내분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어려울 때 더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협회장을 맡아 물심양면 선수들을 지원한 그는 지난해 11월 카타르 ‘피스 앤드 스포츠’컵에서 남자복식팀 유승민·김혁복 조의 우승을 지켜봤다. 20년 만에 결성된 남북한 탁구 단일팀이 이룬 쾌거였다. 조 회장은 스포츠로 국제 평화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이 대회 만찬에서 카타르 체육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2003년과 2007년 두 번이나 쓴잔을 마신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나서줄 것을 권유받았을 때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발로 뛰었다. 2년간 지구 16바퀴에 해당하는 64만km를 돌며 총 34건의 해외 행사를 소화했다. 한진그룹이 2대 주주인 에쓰오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동지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접촉하는 등 조 회장 개인과 한진그룹의 해외 인맥을 동원해 IOC 위원과의 친밀도를 높였다.

    IOC 평가단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서비스가 생명인 항공사 CEO로서의 진가가 발휘됐다.

    “저는 오늘 평창까지 가는 버스의 수석사무장입니다. 가시는 동안 편히 모시겠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선수 출신 외교 인력 키워야”

    실사를 위해 IOC 평가단이 입국했을 당시 직접 보딩게이트로 나가 평가단을 맞이한 그는 평창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IOC와 국제 스포츠단체 관계자들에게 손수 음료를 서비스하는 등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 IOC 위원들도 그를 “프렌드”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했다. 조 회장은 당시 “나는 항공사 CEO로서 서비스가 무엇인지 안다”면서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려면 유연성 있는 마인드가 중요하듯, 전 세계 스포츠 관계자를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평창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평소 “우리나라 체육계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 같은 선수 출신의 스포츠 외교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카타리나 비트는 IOC 위원이 아니면서도 IOC 위원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조 회장은 또한 “국제 스포츠계에서 활동할 스포츠 전문인 육성을 위해 장기 프로젝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론도 편다. 젊은 선수를 육성하고, 선수와 코치의 글로벌 교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며, 스포츠 전문기자와 코치 등 스포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국 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항공이 스포츠 선수의 항공권을 후원하는 것 역시 스포츠 인력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그는 얼마 전 2014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됐다. 대한항공은 인천아시안게임의 최고 후원 등급인 프레스티지 파트너로서 항공권, 수하물 등 항공과 관련된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2월에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선임된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 위상을 높이기 위해 뛰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스포츠가 국가 경제 발전은 물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또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하고 스포츠 정신을 아시아에 확산시키려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한국 스포츠가 비상하도록 날개를 달아주려는 그에게 ‘통 큰 스포츠 외교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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