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9

2012.03.19

‘내조의 여왕’은 아무나 하나

프랑스 정계 남편보다 더 인기 얻는 ‘4인 4색’ 내조법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입력2012-03-19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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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길을 선택한 동반자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주는 여성의 존재감이 나날이 커져가는 요즘, 프랑스에서도 정치계 ‘내조의 여왕’이 주목받고 있다. 누구의 아내라는 호칭을 넘어서 인물 자체로 관심을 끄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 부러운 퍼스트레이디 ‘부르니’

    ‘내조의 여왕’은 아무나 하나

    카를라 브루니.

    조각 같은 외모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1980년대 패션계를 장악한 이후 작사·작곡 실력까지 인정받은 만능 엔터네이너 카를라 브루니. 배우 뱅상 페레즈,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가수 에릭 클랩튼 등 세계적인 스타와 염문을 뿌린 그가 지금 정착한 곳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품이다. 2007년 대통령에 당선한 사르코지는 세실리아와 서둘러 이혼하고 이듬해 7월 브루니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은 사르코지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극히 우파적인 사르코지를 못마땅해하던 일부 국민도 미모의 브루니를 보며 분노를 가라앉혔고, 고지식해 보이는 사르코지가 아내를 지극히 챙기는 모습은 국민이 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줬다.

    브루니도 남편 덕을 보기는 마찬가지. 사르코지 대통령과 결혼한 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5위, ‘베니티 페어’가 선정한 ‘가장 옷 잘 입는 정치인의 아내’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델로서의 전성기 때보다 더 유명해졌다. 브루니는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적은 없고, 정치 밖에서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소아 에이즈 예방 재단의 명예대사로서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와 베냉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2008년 달라이 라마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을 대신해 환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브루니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관심은 대단하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전략적으로 결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만약 사르코지가 재선에 실패해 엘리제궁을 떠난다면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크게 만족했던 브루니의 반응이 어떨지도 관심 대상이다.



    # 프랑스판 힐러리 ‘생클레르’

    ‘내조의 여왕’은 아무나 하나

    안 생클레르.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안 생클레르는 프랑스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TF1에서 10여 년간 기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도미니크 스트로스칸과 결혼하면서 그의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변했다. 칸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일 당시 프랑스 대선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여론이 칸을 비난하는 와중에도 생클레르는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며 곁을 지켰다.

    이 사건으로 칸은 엘리제궁 입성을 코앞에 두고 추락했지만, 생클레르는 최악의 불행을 최고의 기회로 변화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한동안 언론에서 사라졌던 그가 1월 23일, 연극 연출가 니콜라 베도, 여성 정치인 라시다 다티, 패션디자이너 에마뉘엘 웅가로 같은 저명 인사를 칼럼니스트로 영입한 인터넷 신문 ‘허핑턴 포스트’ 창간을 알리며 귀환한 것이다. 더불어 ‘보에티 거리 21번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홍보에도 열심이다. 정계를 주름잡던 남편의 그림자에 묻히지 않고, 6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되찾아가는 그에게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여성 잡지 ‘테라페미나’는 2011년 최고의 프랑스 여성인사로 생클레르를 선정해 그가 제2 전성기를 맞았음을 확인해줬다.

    # 국민 MC의 변신 ‘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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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레 퓔바르.

    오드레 퓔바르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방송인 중 한 명이다. 프랑스 주요 방송사에서 간판 뉴스를 진행하고, 정치인 인터뷰도 하는 등 앵커, 기자, MC 다방면에서 자질을 인정받았다. 2010년 퓔바르가 사회당 소속 정치인 아르노 몽트부르와 교제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저명한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해 프랑스 좌파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은 몽트부르와 국민 MC 퓔바르의 교제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퓔바르가 치러야 할 대가도 컸다.

    몽트부르가 2012년 사회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결정하자, 퓔바르의 방송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정치 관련 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는 중립성 논란에 휘말려 퇴출당했다.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하는데, 정치인이 초대 손님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이라 그것마저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퓔바르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상황에 개의치 않음을 밝혔다.

    “다들 나를 피해자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연애하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다. 내 남자친구가 정치하는 사람이라서 유달리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느 커플과 같은 상황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그의 말에 화답하듯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을 성공적으로 마친 몽트부르는 요즘 퓔바르의 자유로운 방송생활을 위해 TV와 라디오 출연을 자제한다. 몽트부르는 “몽트부르의 연인이 아닌 방송인 오드레 퓔바르로 그를 봐 달라”며 “그가 나를 위해 해준 만큼 나도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 국무총리 뛰어넘는 인기 ‘카트린’

    ‘내조의 여왕’은 아무나 하나

    페넬로프 카트린(왼쪽)과 프랑수아 피용 국무총리 부부.

    프랑스 최고의 내조 여왕은 파리 7구 마티뇽에 있다. 마티뇽은 프랑스 국무총리가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장소다. 현재 프랑스 국무총리는 프랑수아 피용. 2007년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무총리에 오른 피용에게는 ‘사르코지의 앞잡이’라는 불명예 딱지가 붙었지만, 아내 페넬로프 카트린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5남매를 키우며 정치인 남편을 내조한 그는 “아직도 남편이 국무총리에 임명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카트린은 격무에 시달리는 남편의 기분 전환을 위해 콘서트 티켓을 몰래 예매하고, 연극 관람과 오케스트라 연주회 참석을 일정에 끼워 넣는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와 교감할 기회를 만드는 센스를 발휘한다. 평소 승마를 좋아하는 그는 자연스럽게 자란 흰머리와 눈가의 주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다. 멋이 몸에 배어 꾸미지 않아도 시선을 끄는 그에게 자기 옷을 입히고 싶어 안달하는 디자이너가 한둘이 아니다. 카트린 역시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자주 참석하지만, 눈으로만 구경할 뿐 고가의 의상을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아내와 달리 프랑수아 피용은 패션 감각이 떨어져 종종 검은색 정장에 빨간색 양말을 신고 국회에 등장하거나 연분홍 셔츠에 지나치게 넓은 넥타이를 매고 엘리제궁에서 나와 놀림감이 되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깔끔한 슈트에 컬러 셔츠를 세련되게 매치하는 등 눈에 띄게 바뀐 모습을 보였다. 이에 프랑스 언론은 “감각 있는 아내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내를 ‘페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프랑수아 피용. 헌신적이고 영리한 페니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정치의 중심에 선 동반자와 한 배를 탄 여성 네 명. 강력한 권력을 쥔 인생 파트너 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맞서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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